얼마 전 “국회의원이 공무원 몇 급이냐”는 민원전화 한 통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국회의원은 일반직 공무원이 아니라 비교 할 수 없다고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새삼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껴져 관련 공무원으로서 입맛이 텁텁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살면서 국회의원과 도지사 또는 군수를 견주어 둘 중 누가 높은 분(?)인지를 두고 논쟁하는 대화를 종종 듣곤 한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논쟁거리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사람들이 선출직 공무원인 도지사나 군수에 뜬금없이 국회의원을 견주어 그 신분의 높낮이를 따지려는 무망한 시도는 왜 우리의 일상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일까?

선관위 소속 공무원이라는 직업인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것이 지방자치단체장 출마 후보자와 구분되지 않는 국회의원 출마 후보자들의 선거 공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나의 경험을 되짚어 보더라도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가 자신의 본업인 입법 권한에 기대어 어떤 법을 제정 하겠다는 식의 선거 공략을 내세우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늘 이를 대신하여 보게 되는 공약은 ‘지역 발전 예산을 확보하겠다’ 내지는 ‘지역 발전용 국책 사업을 확보하겠다.’ 식의 공약이었다. 
염불과 잿밥의 자리가 뒤바뀐 풍경이 일상화되어 이제는 도리어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로서 ‘지역 사업과 예산따오기’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으면 그것이 어색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름 붙이자면 ‘공약의 그레샴 법칙’쯤 될 듯싶다.
혼란스러울 때는 언제나 그렇듯 근본으로 돌아가는 게 정답인 법이다.

‘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답을 ‘알고는’ 있다고 믿지만, 누구나 ‘깨닫고’ 있지는 못한 이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내가 뽑은 국회의원은 나를 대리하여 법률을 제정한다. 그리고 나는 그 법률의 구속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것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국회의원이 대리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이지 ‘지역’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이름 아래 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대리인인 국회의원을 뽑을 때는 당연하지만 그가 ‘나’의 성별, 지역, 계급, 세대, 학력 등을 망라하여 ‘대리’하기에 적절한지 검토되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란 결국 대표집단이 얼마만큼 모집단과 동일성을 갖느냐에 따라 그 민주적 정당성이 강화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령 국민의 성비는 5:5인데 국회 성비가 2:8이라면 과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때문에 현재 국회의 평균은 국민의 평균과 얼마나 같은지에 대해 우리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선거란 정치인으로서 ‘나’를 끊임없이 재확인 하는 과정이며, 직업 정치인인 ‘그’를 통하여 ‘나’를 지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예리한 눈초리의 면접관이 되기에 앞서 나의 정치적 자아를 세심히 살펴보는 고요한 수도자가 되어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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