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ㅣ김미숙 국장의 해외탐방 시리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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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신문
  • 승인 2019.05.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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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양 시대를 펼친 포르투갈의 호카곶과 벨랭탑에서
김미숙남해문화원 사무국장
김미숙남해문화원 사무국장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 중앙정부는 국가 경제성장을 위한 각종 정책을 기획하고 발전시켜왔다. 이런 중앙집권체제는 우리나라의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획일적인 정책으로 지방의 특색에 맞는 다양성을 수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991년부터 중앙집권체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226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주민들이 직접 단체장을 선출해 지역의 행정을 스스로 책임지게 하였으며, 누구보다 지역을 잘 아는 지역 출신 자치단체장을 선출하였다. 이에 따라 각 지역의 독특한 지방색, 문화, 역사를 잘 살려 문화.관광 컨텐츠를 개발하고 한국의 내국 관광객 및 외국관광객 유치와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데 전국 지자체들은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이 타의에 의해 평가절하되었거나 소실되었다. 그리고 가난과 혹독한 전쟁을 겪은 우리는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몰두하였으며, 지하자원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노동집약적 경제성장을 해왔다. 우리는 부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개인의 삶보다 국가와 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에 발맞춰왔다. 이런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외신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국은 전 세계 최고의 '일중독(워커홀릭)' 국가"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6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 온 장년층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여권을 내밀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없었을 것이다. 

세계사와 한국사는 흥망성쇠의 역사 속에서 돌고 도는 것이다. 이런 흥망성쇠의 역사 속에서 자국의 정신과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국가는 경제규모와는 상관없이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는 그들의 삶 속에서 오랜 역사와 함께 서서히 꽃을 피우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겪은 아픔의 역사만큼 유럽의 서쪽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는 이베리아족, 타르테시아족, 켈트족, 켈티베리아족, 페니키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수에비족, 서고트족 등이 저마다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서로 다른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이베리아반도는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781년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고 15세기까지 지중해를 통한 동방무역 통로를 오스만투르크족이 장악하고 있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쇠약해지는 15세기말 무렵 스페인의 탐험가 콜롬버스는 대서양 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하였으며,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는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며 대항해 시대를 펼치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남한의 면적과 비슷한 국토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15.16세기까지 대항해 시대를 열면서 포르투갈 상선이 향신료를 독점하게 되었고 이탈리아와 아랍상인에게 막대한 이득을 주었던 향신료 무역의 새로운 정복자가 되었다. 포르투갈은 유럽 최초로 동서양 해양 교역로를 개척하고 브라질, 아프리카, 중국의 마카오, 인도 등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포르투갈은 식민지 개척과 향신료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으며,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은 이탈리아의 베니스만큼 번영과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1755년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 닥친 대지진과 쓰나미로 약 6만 여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엄청난 지진의 충격으로 대형 공공건물과 주택 1만 2천채가 무너지면서 리스본은 황폐화되었다. 대지진 이후 포르투갈의 번영이 쇠퇴해졌으며, 식민지 착취 중심의 경제가 서서히 붕괴됨에 따라 국가의 경제력도 쇠약해져갔다.  

많은 유럽 국가들의 흥망성쇠와 함께 동북시아의 중심에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가 우리의 후손에게 번영된 조국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많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한반도의 남쪽 끝인 아름답고 매력적인 남해바다를 바라보다가 지금 나의 시선을 압도하는 대서양의 거치고 무거운 파도는 이 나라 역사의 무게만큼 나의 마음을 내려앉혔다. 장엄하고 거친 파도와 세상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릴 것 같은 대서양은 포세이돈을 대신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다.  포르투갈의 대문호인 루이스 카몽이스는 “ 이 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대서양 너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인간의 욕망을 담아 호카곶 십자가에 달린 기념비에 새겨 놓은 듯 했다.    

리스본의 서쪽 테주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엔 대항해 시대의 문화유산인 벨렝탑이 있다. 벨렝탑은 마치 여인이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테주강의 귀부인”이라고도 불린다.  먼 바다에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원들과 탐험가들은  마치 테주강 끝에서 남편과 애인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벨렝탑을 바라보며 안도감과 애틋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벨렝탑 지하는 감옥, 1층은 포대, 2층은 왕의 거실이자 망루로 사용되었으며, 스페인 지배 당시에는 정치범과 독립 운동가들을 지하에 가둔 물감옥으로 사용 되었다고 한다.

벨렝탑에서 바라 본 제로니무스수도원은 포르투갈 건축양식인 마누엘양식으로 장식된 대표 건축물이다. 1496년 마누엘 1세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에서 귀환하는 것을 기념해 수도원을 지었으며, 제로니무스수도원은 100여년을 거쳐 완공되었으며, 다행히 리스본 대지진 때 큰 피해를 입지 않아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포르투갈의 로시우 광장과 벨렝탑 광장 바닥과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다양한 문양의 보도블럭 타일이 이색적이었으며, 마치 보도블럭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포르투갈의 보도 블럭은 자그마한 돌을 정사각형으로 잘라 손으로 찍어서 정교하게 만들었는데 이 돌들은 리스본 대지진때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만들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보도블럭은 수 백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이유 없이 바뀌는 생명력 없는 보도블럭을 생각하며, 로시우 광장에 있는 멋스럽고 고풍스런 보도블럭을 남해에 깔고 싶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달콤한 에그타르트와 쌉소롬하고 깔끔한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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