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사여성병원 유광사 원장
유광사여성병원 유광사 원장
  • 윤혜원 기자
  • 승인 2019.05.17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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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사·박경순 부부 50주년 ‘금혼식’
병원도, 자식농사도 성공한 삶- 아들 상욱·딸 상희 모두 의사
손자들도 미국 명문대학 수학“자손에게 재산보다 교육기회”

5월 12일은 유광사여성병원 유광사 원장 부부가 결혼한지 50주년이 되는 ‘금혼식’ 날이다. 금혼식은 말이 쉽지 요즘 같은 세상에 부부가 행복하게 50년간 함께한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 남녀가 50년을 원앙처럼 해로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50년을 함께 살 수 있는 부부도 드물기에 금혼(金婚)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들 유상욱 박사 부부는 “아버님‧어머님의 금혼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부의 연으로 오십 년을 지내시는 동안 두 분의 사랑의 결실인 저희들을 키우시고 세상에 기여하시며 값진 삶을 사셨습니다. 앞으로 이미 이루었던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이루시고 더 행복하게 또 다른 금혼식을 하실 만큼 오래오래 부부의 연을 다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축하했다. 
딸 유상희 박사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면서 큰 행복을 누리며 지내신 결혼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두 분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는 축하의 말을 전했다.

아들딸까지 3명 의사집안
설천면 진목마을이 고향인 유광사 원장과 남해읍이 고향인 박경순 여사의 결혼 50주년을 맞아 아들 유상욱 박사와 딸 유상희 박사가 금혼식을 맞이하여 행복과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요즘처럼 이혼을 밥 먹듯 하는 세태에서 50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인내와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찬사와 축복이 더했다. 부부가 건강하고, 가정에 우환이 없고, 1남1녀의 자녀가 훌륭하게 성장하여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으니 유 원장 부부의 결혼 50년은 가정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성공한 보기 드문 축복이다.

유광사 원장은 1942년 11월 22일 경남 남해군 설천면 진목리에서 아버지 고(故) 유성식씨와 어머니 고(故) 김매남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목초, 남해중, 남해제일고, 고려대 의과대학,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의학박사학위를 받아 1978년 유광사산부인과를 개원했다. 유 원장 부부는 1남1녀를 뒀는데 자손이 가지를 뻗어 4대까지 이어졌다.
딸 유상희 박사는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어바인대학 연수 후 강남에서 ‘쉬즈 애비뉴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는 개원의다. 아들 유상욱 박사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5년간 연수하고 돌아와 유광사여성병원에서 불임의학연구소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유상욱 박사는 김희정씨와 결혼해 유승림(미 버클리대학 재학), 유영하(미 프린스턴대학 재학), 성하(강남학교) 2남1녀를 뒀다. 이 가운데 영하(榮夏)군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의 명문 사학 ‘The Fessenden School’을 수석으로 졸업하며 9학년 전체 수석까지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 ‘필립스아카데미’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전통의 명문대학인 프린스턴대학에 특차로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영하군의 누나 승림양은 국내 국제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에 진학해 재학 중이다.

유 원장은 “후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영하와 승림이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니 정말 내 손자손녀지만 기특하다”라고 말한다. 유 원장은 병원이 번창하고 딸 상희씨와 아들 상욱씨가 그 어렵다는 의대에 진학해 의학박사 학위를 받아 집안에 자신을 포함해 3명의 박사가 탄생하고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모두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부모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다며 부모님 음덕이라 생각하며 아내로써 내조를 잘한 박경순 아내의 큰 덕”이라고 강조한다. 

“모두 아버지와 아내의 음덕”
유 원장의 아버지 고(故) 유성식씨는 일제 말기에 결혼하자마자 부인 김매남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유 원장은 일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어머니와 함께 귀국했다. 아버지는 해방 후 일본에 남아 피혁공장을 경영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근면 성실함으로 신용을 쌓고 사업에 성공해 그 당시 아버지가 자식들의 공부를 위하여 학비는 물론 서울 성북구에 집을 사주셨다. 유 원장네가 서울에 살게 되면서 남해에서 상경한 유학생들과 취직하기 위해 서울에 온 고향 사람들이 유 원장네를 여관처럼 드나들었다. 유 원장 어머니 김매남 여사는 이들을 정성으로 대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지원과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유 원장은 고려대 의대에 진학했다. 일본 동경에서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아들이 의대에 합격했다. 돈을 많이 벌어 아들이 졸업하면 병원을 차려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69년 유 원장이 의대를 졸업하던 해에 아버지는 일본에서 아쉽게도 작고하고 말았다. 유 원장은 졸업과 함께 군의관으로 입대했고 제대 후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1978년 아버지의 유산으로 3층 건물을 지어 병원을 개원했다. 당시 의대 동기생 중 첫 개업이었고, 현재도 동기생 중 가장 큰 병원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유 원장이 자신의 성공을 부모님 덕이라고 할만하다.
개원 후 유 원장은 산부인과 전문의로 이름을 떨치며 승승장구했다. 병원 건물을 두 개나 더 지었고 5번이나 증축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30년 전 신축했기에 피와 땀이 어린 곳을 떠날 수가 없다고 한다. 의사로 자리 잡는 기반을 아버지가 닦아 주셨다면 의사로 성공하는 길은 부인 박경순 여사가 열었다. 박 여사는 남해 초대국회의원인 박윤원 의원의 딸이다. 

박 여사는 병원살림을 알뜰하게 챙겼고, 산모들과 신생아들을 보살폈다. 이 와중에 상희씨와 상욱씨 남매를 공부시켜 아버지 뒤를 이어 의대에 보냈으니 박 여사의 내조가 3명의 의학박사 집안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그래서 유 원장은 “모든 게 다 부모님과 아내 덕”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유 원장 자신의 굳은 의지와 실천이 없었다면 다 불가능했을 일이다. ‘삼심일행 (三心一行 )’,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한다는 이 말을 가훈삼아 유 원장은 자식들을 엄하게 가르치고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아버지 유산으로 세운 병원을 더 키워서 다시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유 원장은 “유광사여성병원에는 나 유광사뿐만 아니라 아버지‧어머니, 아내, 아들 ‧딸 3대의 소망과 노력이 함유되어 있다”고 말한다. 
유 원장은 지금도 예전과 같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진료를 하고, 여전히 아기를 받고 있다. 아직도 그를 찾는 산모들이 많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한 산모들을 돌보겠다는 것이 의사로서 그의 바람이다. 
유광사여성병원은 보건복지부에서 산부인과 전문병원과 의료기관 평가인증 2관왕을 획득했다. 장남 상욱씨는 미국 하버드대 연수경험을 살려 최신 불임시술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 원장은 “구세대와 신세대의 만남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내가 40년간 키운 병원을 아들이 잘 전수받아 자신의 꿈을 맘껏 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50년 동안 아름다운 봉사
유 원장은 2008년 30억원을 고려대 의대에 쾌척해 300석 규모의 대강당인 ‘유광사홀’을 설립해 후학들에게 존경받고 있으며 오래도록 그의 이름을 남겼다. 유 원장은 2006년에 아들이 연수하고 있는 미국 하버드대를 방문했는데 캠퍼스 5층 건물, 20여동이 대부분 독지가의 기부로 지어졌고, 건물 마다 기부자의 이름을 딴 명칭을 눈여겨보고 기부를 일으키는 좋은 전통이라 생각하고 한국에 돌아와 그동안 병원을 운영하며 모은 30억을 기부하기로 결심하고 가족들에게 의논했더니 모두 찬성하여 기부를 실행했다. 

고향 진목마을은 물론 재경설천면향우회 6대 회장으로 1992년부터 2003년 1월까지 11년을 봉사했다. 재경강서구남해향우회 회장 18년, 재경남해군향우회 회장을 2년간 역임했고, 재경남해중‧제일고총동문회 초대회장 2년 역임한 공로로 2016년 제1회 자랑스런 동문상을 수상 했다. 부인 박경순 여사도 재경남해여중동문회 회장으로 6년간 봉사했다.
이뿐 아니다. 유 원장은 1978년 강서구 화곡동에서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출발한 후 41년 간 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밖에서는 지역사회에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그러다 보니 지역사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병원이자 언제나 준비된 병원으로 소문났다. 또한 강서구장학회 회장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 유 원장이 지난 41년간 강서구에 자리 잡고 많은 봉사활동을 해와 강서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처럼 지역사회의 어려운 주민과 생활이 어려운 외국인들, 노동자들의 무료분만, 양로원, 고아원, 강서구장학회 이사장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여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1994년)과 국민훈장 동백장(2001년)을 수훈했고, 2015년에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물 대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서울시장표창, 부총리겸 경제부장관표창 등 다수 수상했다. 대한민국을 빛내고 나아가선 보물섬 남해군을 빛낸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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