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ㅣ정현태 전 남해군수
독자기고ㅣ정현태 전 남해군수
  • 남해신문
  • 승인 2019.05.1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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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택 의장님에 대한 추도
정현태전 남해군수
정현태전 남해군수

오늘 우리는 남해의 큰 어른이시며 바른자치21의 영원한 의장님이시고 한마음회의 상임고문으로 마음 속에 살아 계실 고 임준택 의장님을 떠나 보내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5월 8일 어버이 날인 오늘 따뜻한 밥 한 그릇 차려놓고 싱싱한 생선 한 마리 구워내어 오래 사시라고 만수무강하시라고 큰절 올리고 기원드려야 할 오늘. 
슬프게도 우리는, 임준택 의장님과 영원한 이별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향년 91세.
1929년 11월 27일 이곳 푸른 지구별로 오신 뒤 100세 청춘이 9년이나 남아 있고, 아직도 우리에겐 젊은 열정으로 살아계신 의장님!
영정 앞의 향불 연기(香煙)도 하늘로 떠나기 싫어 자꾸만 자꾸만 아래로 스며드는데, 정녕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셔야만 하십니까? 
임준택 의장님!
당신은 일찍이 남해의 상록수였습니다.
1955년 5월 20일, 가난의 설움보다도 배움의 기회를 잃어 더 서러웠던 아이들과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 평생 한을 품고 살았던 성인들에게 야간 연죽공민학교를 설립해 한글교실, 웅변대회, 연극공연까지 10년 세월 어찌 그리도 알뜰히 ‘주경야독(晝耕夜讀)’‘형설지공(螢雪之功)’. 
이 모든 것이 준걸 준(俊)자에 윤택할 택(澤)자 임준택 의장님의 함자처럼 당신은, 우리들의 메마른 삶에 맑은 물방울처럼 스며들어 뿌리까지 촉촉히 적셔주셨고, 가난하고 척박한 이곳 남해 땅을 갈고 가꾸어서 기름진 옥토로 변화시켜 주신 진정한 스승이요 큰 어르신이십니다.
임준택 의장님!
당신은 우리들 삶의 이정표였고 죽비로 영혼을 일깨우는 입승(立繩)이었습니다.1998년 11월 1일에 결성된 『바른자치21』의 초대 의장님으로 일하실 때는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글귀를 벽에 붙여 두시고, 우리들 젊은 일꾼들이 지역과 나라의 큰 기둥이 되라고 노심초사하시면서 성원하고 기원하셨습니다. 또한 2002년 군수선거 때는 ‘방심필패(放心必敗) 사력필승(死力必勝)’이라는 글귀는 직접 써 오셔서 마지막까지도 최선을 다하도록 독려해 주셨습니다.
그 마음 때문에 김두관 군수는 장관이 되고 도지사가 되었으며,이 정현태는 남해군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임준택 의장님!
당신과 함께 일한 지난 시간은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1999년 8월부터 10월까지 두달 간 진행한 한려대교 유치를 위한 범군민 서명운동에는 무려 2만 2225명의 군민들이 동참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의장님께선 이를 청와대와 민주당 중앙당사, 건설교통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5개 중앙부처에 직접 전달하셨습니다. 
이 때 우리는 의장님과 함께 만들어 가는 행복한 지방자치1번지 남해군을 자랑스러워하며 일등군민으로서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일본의 우경화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터졌을 때는 김정윤 국제추진협의회장님과 함께 일본의 자매도시인 오오구찌시를 직접 방문하여 구마모토 신 시장으로부터 “남해군과의 국제 친선을 해치는 왜곡된 교과서는 채택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직접 받아 오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의장님께서는 지방자치의 힘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세우고안중근 의사처럼 동양평화론을 몸소 실천하는데 앞장 서셨습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의장님께서 계셨습니다. 
지금 의장님께서 마지막으로 머물다가 떠나시는 이곳 추모누리도 임준택 의장님의 혼이 배여 있습니다. 의장님께서는 장묘문화의 개선을 위해 고향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당시에는 혐오시설로 인식되었던 공설공원묘지와 화장장을 유치하셨고, 바른자치21이 주최가 되어 ‘장묘문화개선을 위한 군민대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남해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화장률이 90%가 넘는 대한민국 선진장사행정 1번지가 되었으며, 보건복지부 신규직원과 전국 장사행정 담당자들의 선진견학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선견지명으로 자치행정과 협치의 모범을 보여 주신 임준택 의장님의 훌륭하신 지도력 덕분입니다.
임준택 의장님!
당신은 언제나 큰 산이였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당선되어 비단옷을 두른 남해 금산처럼 존재감이 빛날 때는 뒤에서 조용히 웃고 계셨지만, 우리가 낙선의 고통을 겪고 있을 때는 겨울 찬바람을 온 몸으로 막아주시던 망운산이었습니다.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도지사로 나간 김두관 후보도 남해군수로 나간 이 정현태도 모두 떨어지고 난 뒤, 바른자치21의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하던 어려운 시절. 의장님께선 자녀들이 회고록 출판비용으로 모아 준 사재를 털어 그 어려움을 혼자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김두관은 첫째 아들이고 정현태는 둘째 아들”이라면서  변함없는 애정을 보내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2007년 3월 뜻 있는 분들이 모여 의장님의 그 오래된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었다』는 회고록을 뒤늦게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늘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믿어주시고 길러주셨는데, 이제 의장님의 빈 자리를 누가 메울지 허전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임준택 의장님!
오늘 비록 의장님의 육신은 떠나보내지만 “변화는 될지언정 생사는 아님”을 알기에 의장님의 그 위대한 영혼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심을 믿으면서 이제 의장님을 우리들의 아버지! 지방자치1번지 남해의 아버지로 모시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삶에 이정표가 되어 주시고 험난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는데 나침반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아버님! 편히 가셔서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2019년 5월 8일 
전 남해군수 정현태 마음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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