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어떤 일들이 서로 연관되어 좋은 결과물을 낳을 때 뭇 사람들은 그것을 흔희 인연이라는 말로 결부시킨다. 필자도 이번에 그런 인연의 결과물 하나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여 이 지면을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야기는 작년 하반기에 이정희 소설가의 등단작인 빈섬, 작품을 본지에 2회 연재하면서 생긴 일이다. 
그녀는 조도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창원에서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낸 후 6년 전 귀향하여 현재 미국마을에서 ‘이강’ 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2년 전 어머니를 여읜 슬픔을 빈섬이라는 소설 작품으로 탄생시켰고 지금은 초의선사에 대한 글을 준비 중에 있다. 어머니가 없는 섬 전체가 완전히 텅텅 빈 것 같았던 공허함과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조도를 배경으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소설 속에는 지역민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무척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역사서가 된다. 하지만 물고기가 그물에서 빠져나가듯 이 작품도 그냥 놓칠 수 있었는데 우연히도 남해신문을 구독하던 미조초등학교 김종갑 교사의 그물에 대어로 걸리게 되었다.  이 소설이 미술수업으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그의 안목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 선생님은 조도라는 섬이 학교와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아이들이 잘 모르고 휴대폰과 TV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안타까워 조금이나마 정서를 채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명과 지칭어들을 수업과 연계시켜 15명의 학생들과 함께 소설 내용과 연관된 그림을 그려 다시 새롭게 한 권의 책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이정희 소설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학생들에게 편지로 쓰게 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을 때 그 선생님은 아이들이 쓴 편지와 직접 엮은 책을 들고 이정희 소설가를 찾아가 수업 요청을 정중히 했다. “우리 아이들이 질문할 게 많습니다. 꼭 학교로 와서 아이들을 만나주십시오” 이정희 소설가는 정성이 듬뿍 담긴 내용물을 받아들고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아이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말을 즉석에서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가 20년 동안 차인생활을 해왔음도 알게 되었고 그날 수업에도 다도를 체험하게 하여 아이들의 정서를 풍요롭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차인생활을 그렇게 오래했지만 지난 6년 동안 단 한 번도 차 바구니를 꾸려 집밖으로 가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꾸리게 되었다. 만날 학생들을 생각하고 찻잔을 소독하고 천 차탁을 준비하고 마실 녹차도 정성껏 준비했다. 처음에는 담임선생님한테 50분 정도의 수업을 요청받았지만 찻자리까지 하고나니 2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갈 줄 몰랐다는 그녀는 계속 이야기에 심취해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날 학생들은 한 명도  딴 짓을 하지 않고 100%집중을 했다. ‘차 바구니 속에 무엇이 담겼을까’에 대한 호기심도 모두 다양했고 우려낸 차 맛에 대한 반응도 각각 달랐다. “녹차가 이렇게 쓰네요, 맛있어요, 더 주세요, 그만 마실게요” 처음 다도를 접한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마음이 시키는 대로 여러 말들을 뿜어냈다. 그녀는 차를 한 잔 할 때도 예절의 중요함과 이 차가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의 수고로움이 따른다는 설명을 곁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녹차가 입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많은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찻잔을 소중히 받들었다. 다도야말로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정말 중요함을 강조하며 창원에서의 생활을 술술 풀어냈다. 

다도대학원 5년 과정을 끝낸 그녀는, 절에서도 많은 수업을 했고,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차와 한문을 가르쳤다. 방학이 되면 다도를 했던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와 함께 수업을 받기도 했다. 그때 아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되어 차 생활을 그리워하곤 한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차와 인문학을 함께 공부한 그녀는 항상 행복한 사람이었다. 다도대학원을 졸업할 당시에는 동다송 500자 쓰기 대회에서 한자도 틀리지 않고 순서에 맞게 다 써내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무엇을 파고들면 끝을 보고마는 성격으로 공부를 하는 그녀는 동다송을 저술한 초의선사를 무척 존경하고 있었다. 아무리 글을 풀어헤쳐 들어가도 진심뿐인 그의 글에 반했고,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진실만 느껴지는 글에 또 한 번 반해초의선사 글을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다.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났을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 그를 얼마나 사모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삶을 초월한 듯한 힘들이 인문학과 차에서 비롯되어서인지 그녀는 물질이 별로 없어도 없는 것 같지 않고 삶이 괴로워도 괴로운 것 같지 않게 희석하며 살아왔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차를 딱 한 잔하면 심란하던 마음도 고요한 호수가 돼버린다. 살아가는데 힘을 주고 위안을 준 차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것은 고등학교시절이었다. 가정선생님이 생활관에서 다도를 가르쳤을 때 그 첫 느낌이 정말 좋았다. 이미 그녀의 DNA속에 차를 좋아하는 유전인자가 잠재돼 있어서인지 선생님의 그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와 ‘나도 언젠가 여건이 되면 다도를 해야지’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아이들을 만났을 때 “나의 이 모습을 보고 어떤 학생들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과 “나를 보고 여러분들 속에서도 나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지만 꼭 내가 하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도 될 수 있”음을 말해주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차인생활에 대한 기초지식을 그녀는 10살 때부터 할머니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매사 꼿꼿하고 강직한 할머니는 뱃사람의 자식으로 자랐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 안 된다고 아주 엄하게 키웠다. 제삿날이 되면 맏손녀였던 그녀에게 물심부름을 자주 시키며 정신적인 지주가 돼 주었다. 할머니는 무엇이든 정성이 필요하니 “물이 순해질 때 떠오라”는 말을 강조하곤 했다. 이 말은 남이 물을 자꾸 떠가면서 헤집은 물이 아닌 남들이 모두 잘 때 평온하게 있는 물을 떠오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펑펑 나는 물이 아닌 돌 사이에서 아주 얌전하게 천천히 흐르는 샘물을 조심스럽게 떠와야 했다. 그녀는 차를 우려낼 때 차 종류도 중요하지만 물에 따라 차 맛이 다름을 확실히 느끼고 차를 배우기 시작한 30대 초반부터 물 사랑에 빠졌다. 첫째사랑 둘째사랑을 모두 물에 바친 그녀는 좋다 하는 물이 있는 명소를 알게 될 때마다  모두 찾아다녔다. 물이 차 맛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기에 물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 내용은 모두 100% 흡수가 되곤 했다. 그래서 그녀가 강의를 할 때면 그런 느낌의 강의를 하게 된다. 

그녀는 분명 소설가이지만 차 이야기만 해도 끝이 없을 정도였다. 차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거두고,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에 대해 묻자 존경하는 초의선사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초의선사를 너무나 사모하여 그의 곁에서 책을 넘겨주는 시자 꿈을 꾸었다는 그녀의 행복한 얼굴에서 머잖아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킬 것 같은 예감이 투명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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