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을 대표하고 선양하는 이상만(67세)마라토너를 만나려고 하니 그 옛날 손기정 선수부터 역대 마라토너의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상만 전 회장은 그 선수들처럼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이름을 널리 알린 유명한 선수는 아니지만 남해군에서 유일하게 혼자 지난 달 15일 제123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식지 않았을 완주의 여운도 느껴보고, 운동으로 굳어졌을 발바닥, 절도 있게 흔들었을 팔도 미리 그려보며 그를 찾아 자택으로 갔다. 육상선수답게 군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가 보스턴마라톤에서 받았던 노란 티를 입고 정성껏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등번호 22006번을 달고 32,000여 명의 마라토너들이 참여한 이번 경기에서 65세에서 70세 대상 풀코스 42.195㎞를 4시간 8분 30초 만에 통과하여 128등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동안 뻥 뚫린 도로를 힘차게 달렸던 그가 조금 전 밭에서 “가죽나물을 채취했고, 끝나면 다시 가죽나물을 채취할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 필자는 빨리 인터뷰를 끝내야겠다는 마음의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어떤 계기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빨리 알아내야 했다. 현재까지 울트라마라톤 100㎞ 15번 완주, 200㎞ 8번 완주 등을 말해주는  200여 개의 메달과 트로피가 조롱조롱 장식장에 걸려 있어 그동안 그가 달려온 길들이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는 다른 마라토너에 비해 상당히 늦은 56세부터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다. 55세 되던 해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암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수술 후 건강의 중요성을 느끼고 더욱 운동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원래 등산을 좋아하여 산을 오르곤 했는데 어느 날 후배로부터 마라톤대회에 출전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우리가 이렇게 산을 많이 탔는데 마라톤을 못 뛰겠나, 한 번 도전해 보자”며 처음으로 2006년 군에서 주최한 보물섬마라톤대회에 참가를 했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통증이 따랐지만 끝까지 참고 완주를 했다. 그때의 성취감과 쾌감을 잊을 수 없었던 그는 차츰 수위를 높여가며, 지금에 이르렀다.
남해마라톤클럽에도 가입하여 하프인 21.0975㎞도 뛰고 풀코스인 42.195㎞, 울트라마라톤까지 뛰었다. 울트라는 최단거리 50‧100‧200‧300㎞ 등이 있는데 ‘순천만 상사호’를 빙 둘러 100㎞에 도전했을 때 완주시간이 16시간이었다. 오후6시 출발하여 오전10시까지 들어와야 하는 코스였는데 한 시간 당겨 도착점에 들어선 것이다. 중간 중간 정류소에서도 잠깐 쉬고 도로변 식당에서도 양해를 구하고 잠깐 눈을 붙이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냈다. 언제나 완주 후 몸도 힘들었고 발도 부르터서 잘 걷지 못하는 후유증을 낳기도 했지만 중간에 포기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자신과의 싸움을 잘 견뎌냈다. 사실 중간에 포기할까도 생각하지만

완주의 기쁨이 이러한 고통보다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기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이번에 치른 보스턴마라톤 대회 풀코스가 90번째였는데 올 10월까지 100회를 목표로 잡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마라톤을 해서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세 번은 중간에 고배를 마셔야했다.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622㎞를 종단하는데 제한시간이 150여 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었다. 두 번을 도전했는데 아쉽게도 한 번은 방향감각을 잃어서 체크아웃이 되었고 한 번은 건강상의 문제로 완주를 하지 못해 결국 차를 타고 고성통일전망대까지 갔다. 대한민국종단 537㎞를 영도 태종대에서 임진각까지 가는 코스도 있었는데 200㎞ 지점인 구미에서 부상을 당해 탈락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한반도횡단 308㎞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무박3일 코스에 두 번 출전하여 모두 성공하였다. 처음 마라톤을 함께 시작했던 후배는 일찍이 그만 두고 지금까지 혼자 출전을 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해오고 있는 그는 분명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마라톤을 할 생각이었던 그는, 이번에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90세 최고령자가 있는 것을 보고 그 나이까지 할 생각을 했다. 이번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라톤을 시작하여 700회 400회 등의 완주횟수를 보유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는 이번에 출전한 풀코스가 90회째였으니 그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스턴마라톤대회는 역사가 깊고 권위가 있어, 누구나 참여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미리 각국의 전문스포츠투어에 접수를 하여 배정을 받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66명만 참여 가능했다. 다른 대회는 결승점에 도달한 시간을 안 따지는데, 이 대회는 공인기록과 나이도 본다. 본인이 최근에 뛴 풀코스에서 3시간 50분 안에 완주한 사람에게만 그 자격을 부여한다. 

마라톤 매니아라면 보스턴을 생각 안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기에 이 대회는 모두의 로망이라고 보면 된다. 그날은 불행히도 추운 3월초 날씨였고 ‘비가 왔다 갰다 더웠다’를 반복하며 변덕을 부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날씨와 상관없이 매년 4월 세 번째 월요일 오전 10시에 마라톤대회를 개최한다. 
그날을 역사와 관계있는 ‘애국의 날’로 지정하여 고수하고 있다. 대회가 있는 날이면 시민들이 길가에 쭉 서서 손뼉을 치거나 손을 흔들며 모두 열강을 한다. 출발 지점부터 끝 지점까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응원을 한다. 결승점에 들어서면 운동장 오른쪽 스탠드에 빽빽이 앉은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고 환영을 하기에 지친 사람들도 다시 힘을 내지 않을 수 없다. 

“그날 태극기를 들고 환영하는 교포들이 있었는데 남해군 보물섬로고를 달고 뛰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 남해라고 기쁘게 소리쳐 주었다. 앞으로 계속 뛰어야 하니까 뒤를 돌아볼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내 이름과 배 번호도 봤겠지만 ‘남해마라톤클럽 보물섬남해’가 더 반가워 그렇게 외쳤다고 생각하니, 미국에서 남해를 선양하고 왔다는 뿌듯함도 생기더라. 군에서는 이런 나에게 상을 줘야한다”며 웃었다. 마라톤에는 세계6대마라톤 메이저리그가 있다. 동경‧보스톤‧뉴욕‧시카고‧런던‧베를린이다. 제일 많은 참여 인원을 이끌어내는 뉴욕마라톤은 매년 11월에 개최되며 55,000명이 함께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모이는 마라톤대회가 1만5천 명임을 감안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는 마라톤을 통해 골치 아픈 생각은 모두 잊고 오로지 완주해야겠다는 생각만 해서 좋고,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신감도 생겨 떼려야 뗄 수 없는 생명수가 돼버렸다고 한다. 운동을 안 하면 몸도 쑤시고 짜증도 나기에 매주 수요일마다 마라톤클럽회원들과 공설운동장 트랙을 돌고 남산, 연죽까지도 달린다. 항상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본인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는 168㎝에 61㎏을 유지하고 있다. 1위로 결승점을 들어서는 선수의 몸무게가 보통 58㎏정도이니 지금 그의 몸무게는 마라톤하기에 아주 적당하다. 이상만 전 회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춘천마라톤을 3번 더 완주하여 10번을 채워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이고, 내년에 개최되는 베를린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란다. 아직도 보스턴마라톤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그의 얼굴에서 ‘세상 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는 표정을 읽게 된다’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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