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자유롭게 흩날리는 요즘 풍경을 현대미술로 표현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것을 통해 느껴지는 우리의 감정은 또한 어떨까. 탐스럽게 달려 있던 꽃잎들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갑자기 행복한 질문거리 하나가 톡 돋아났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뚜렷한 색채로 전해 줄 것 같은 공태연 (사)한국미술협회 남해군지부장을 생각하며 조금 전 변경된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는 경남대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피렌체국립미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아 왕성한 활동을 하다 6년 전 이곳 삼동면 금천(노루목)마을에 새 둥지를 틀었다. 진해가 고향이지만 또 다른 낯선 환경에서 쉼을 취하며 창작활동을 하고 싶어 어머니 품속 같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정했다. 사실은 60대에 고향을 떠나는 계획을 세웠지만 본의 아니게 십여 년 앞당겨진 것이다. 지금 뒤돌아보니 이렇게 된 게 오히려 더 잘 되었다며 남해의 공기에 무척 만족해했다. 
누구든 삶의 터전을 옮길 때는 자신과의 약속을 하게 된다. 그도 물론 남해로 내려올 때는 조용한 삶을 살며 작품 활동에만 몰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화 불모지인 이곳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일 뿐 예술가의 올바른 처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들어 어느 날부터 회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정주민들이 어우러진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 예술 활동을 펼쳐나가자는 순수한 마음의 발로였다. 그렇게 하여 모인 작가들은 남해군미술협회라는 지붕아래에서 3년 동안 활동을 하다, 올해 (사)한국미술협회 남해군지부로 승격되는 좋은 결과물을 얻게 되었고, 사무국장이던 그도 본의 아니게 지부장으로 추대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고대 로마의 유적과 르네상스기의 미술품과 건축물 등이 많아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고 있는 그곳에서 예술을 탐닉했던 그가 귀국 후 대학 강단을 계속 지키며 도시의 중심부에서 예술혼을 불태울 수도 있었지만 그런 삶을 접고 남해와의 인연을 맺은 것은 정말 환영할 일이었다. 이 마을에 왔을 때부터 화가의 감각은 가만있지 못했다.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고 찾던 중 밋밋한 해안가 담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래서 마을이장과 의논하여 일주일 동안 벽화를 재능기부하게 되었는데 지금 이 마을 랜드마크 중 하나로 돼 있다. 마을사람들은 처음에는 “젊은 사람이 왜 여기까지 들어왔나, 얼마 있다 곧 떠날 거라” 는 생각으로 이방인 취급을 했지만 차츰 그의 믿음직스런 행동에 마음의 빗장이 열려 지금은 청년회와 어촌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을에 애정이 많은 그는 벽화에 이어 마을회관 벽면에 폐목을 이용한 대형 해바라기 조형물을 부착했고 마을 표지석이 없는 것을 알고 그것도 세우는데 일조를 했다. 얼마 전에는 태풍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된 방어벽에 바다와 연관되는 멋진 조형물을 구상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보게 되는 바다에 공공미술물을 세우고 방파제 끝에 상징적인 조형물을 세워 마을을 살려볼 생각도 하고 있었다. 겸손함이 몸에 배여 있는 공태연 지부장은 자기는 마을을 위해 한 것이 없으니 마을과 관계되는 이야기들은 모두 빼 주기를 원했지만 한 마을에 어떤 예술가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마을의 판도가 달라짐을 간과할 수 없어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주민들을 만나면 누구보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친근하게 다가가니 마을 사람들이 그 옛날 했던 ‘젊은 사람이 이곳에 왜 왔을까, 곧 떠날 사람’이라는 말들은 이제 아예 하지 않는다. 사실 처음 만나기로 한 날에도 마을 어른들의 경로잔치가 있어 시간이 여의치 않다고 약속을 변경했다. 이것은 분명 자신의 시간을 우선적으로 여기는 이기적인 예술가가 아닌, 남을 위한 배려의 시간도 비워둘 줄 아는 휴머니스트라는 점을 알게 하는 부분이었다. 해바라기 조형물이 있는 마을회관에서 해바라기웃음을 흠뻑 지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이 마을 주민들이 갑자기 부러워진다.  

공태연 지부장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사천 삼천포 등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미술수업을 하고 있고 남해에서도 열심히 제자양성을 하고 있다. 오는 6월 마산아트센터에서 한 달 동안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모든 작업들이 즐겁고 지겹지도 않고 신기롭기만 하다. 옛날에는 완성됐던 작품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봤을 때 싫증도 나고 지겹기도 했는데 이번에 완성하는 작품들은, 보면 볼수록 새롭고 좋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새 힘이 생성된다”며 백 만 불짜리 웃음을 짓는다. 전시회를 매년 여덟 번 정도 하는 공 지부장은 오는 6월 개인전 외에도 5월 부산벡스코 아트부산에서 단체전, 7월 경남아트페어에서 단체전, 10월에는 코리아국제아트페어 등의 전시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총 40여 회의 개인전과 450여 회의 그룹‧초대전을 했었다. 

처음에 안고 갔던 질문에 대해 서양화가인 그는 “현대미술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행이 바뀌고 있다. 옛날에는 작품 모티브가 ‘흔적’이었는데 요즘은 ‘자연’으로 바뀌었다. 떨어지는 벚꽃을 현대미술로 표현하라고 하면 ‘봄을 보내는 우리들의 삶처럼 사람들의 핑크빛 아우성을 내포시키는 작품으로 태어나게’ 할 것 같다. 작품의 매개체가 무엇이든 자연 속에는 항상 우리의 삶이 투영돼 있다”(사)한국미술협회 남해군지부가 걸어갈 방향에 대해서는 “정기전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필요하다. 공공미술은 물론 체험미술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회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현재 48명의 회원을 70명으로 끌어올리고 제대로 된 창작공간과 작품발표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 생업이 어려운 예술가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문화로 승부하는 남해보물섬으로 만들기 위해 해외자매결연을 통한 교류전도 가지며 지역을 알리는 일에 공헌하고 싶다. 앞으로 미술관도 생기고 남해예술인총연합회도 형성되는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고 싶다”

엔제리너스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공태연 지부장은 화장실 입구에 세워진 장식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웃는다. 작은 소품들이 놓인 벽면, 책이 그려진 벽면, 액자가 걸린 공간을 모두 마다하고 그곳을 제일 먼저 선택했고 두 번째는 아무 것도 없는 빈 벽면을 배경으로 한 번 더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처음 선택했던 장소의 사진보다 두 번째에 찍은 사진이 더 좋아 화장실 입구에서 찍은 사진은 올리지 못했다. 사진 한 컷 찍는데도 이렇듯 소홀함이 없으니 그의 작품은, 오죽하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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