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을 있게 한 고 방각(方覺) 김흥우 촌장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선생은 이날 밤 10시경 그가 생활하시던 탈공연예술촌 관사 화장실에서 심인성쇼크로 쓰러지셨다가 다음날 아침 숨진 채 발견되었다. 만약 선생께서 병상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셨더라면 우리는 선생으로부터 작별의 말이라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지난해 4월 5일 남해군청마당에서 남해군청장으로 치러졌다. 그 때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고인의 1주기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오늘까지도 어느 누구라도 먼저 나서서 그 약속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위인의 삶과 정신을 귀히 여기지 않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아니라면 고인과 관계가 깊었을 지라도 딱히 먼저 나설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처지로 인한 것이라는 짐작도 된다. 
본지는 문화예술분야의 위인에 대한 기림사업의 주체는 남해문화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남해문화원이 나서 고 김흥우 촌장 1주기 추모위원회를 시급히 조직하여 조촐하게나마 선생의 1주기 추모식을 치러낼 수 있기를 제안한다. 추모식의 본령은 형식에 있지 않다. 우리 남해를 공연예술의 메카로 만들고자 했던 선생의 삶에 존경을 표하고 선생의 정신을 기리겠다고 약속한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자세에 있다. 
현재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권혁기 촌장이 선생의 유지를 잘 받들고 있다. 지난해 8월 남해군의 임명을 받아 탈공연예술촌의 운영을 맡은 권혁기 촌장은 매월 셋째 주 주말 정기공연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의 제2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다.
고 김흥우 촌장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수집한 공연 자료와 전 세계의 민속 탈을 남해군에 희사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 남해를 공연예술의 메카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옛 다초초등학교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으로 거듭났고 공연예술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우리 남해의 문화예술분야의 한 축으로 세워지게 됐다. 희귀자료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높아진다. 서울에서도 옛 희귀자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을 찾을 수밖에 없는 디지털자료박물관이 되고 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하듯 공연예술인이라면 한번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을 찾아올 수밖에 없는 성지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말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의 귀중한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남해를 먹여 살리는 한축이 될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기존 지역사회 문화예술분야의 위인 기림사업 민간단체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는 예는 남해문학회가 중심이 된 ‘이웃 문신수 선생 기념사업회’다. 이웃 선생의 추도식은 매년 5월 11일 선생의 묘소와 문학비 앞에서 열린다. 이웃 문신수 선생 역시 현대문학분야 향토작가로서 그 가치가 빛을 발할 날이 올 것이다.
위인에 대한 기림사업은 위인 그 자체에 있지 않다. 향토의 문학이든 공연예술이든 역사성을 이어가고 위인이 남긴 업적과 유지를 후세대가 더욱 계승·발전시키려는 의지를 실천해내는 일이다. 이웃 문신수 선생을 능가하는 향토작가가 태어나고 방각 김흥우 촌장보다 더 열정적인 공연예술인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나가는 데에 진정한 위인에 대한 기림사업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본지는 그런 의미에서 고 김흥우 촌장을 기리는 사람들이 내달 1일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에 모여 조촐하더라도 1주기 추모식을 꼭 치러내기를 바란다. 그래야 방각 선생에 대한 기림사업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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