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弱者)가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힘을 갈고 닦음. 자신의 재능이나 이름을 숨기며 참고 기다린다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다.‘도광양회’는 도광과 양회의 두 단어가 합쳐진 고사이다.
‘도광’은 빛을 감춘다는 뜻이고, ‘양회’는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밖으로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실력을 축적한다는 의미이다.
 중국 명(明)나라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중국의 중원(中原)에서 주도권을 다툰, 위·촉·오(魏·蜀·吳)세 나라의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천하통일을 꿈꾸던 유비(劉備)가 여포(呂布)에게 쫓겨 조조(曹操)의 식객(食客)으로 머물던 무렵, 유비는 살아남고자 일부러 몸을 낮추고 조조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소일하는 한편, 황제의 명을 받은 조조 살해 계획에 은밀하게 가담하면서 뜻을 키웠다. 
 유비를 경계하라는 부하의 계속되는 진언(眞言)에,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식사에 초대해 “천하의 영웅이 있다면 그대와 나뿐이다”라고 유비의 진실을 떠보았다. 유비는 짐짓 천둥소리에 놀란 듯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이것을 본 조조는 유비가 생각보다 그릇이 작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그 후 유비가 떠나는 것을 용인하였다.
훗날 유비는 제갈량(諸葛亮)이라는 인재를 얻어, 민심을 바탕으로 군사를 일으켜 조조에 대적할 만한 큰 인물이 되었다.
‘도광양회’가 널리 알려진 것은 고사 때문이기보다, 1980년대부터 중국이 행한 대외정책으로 중국은 초강대국인 미국의 그늘에 가려,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덩사오평(鄧小平)은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도광양회’를 대외정책의 골격으로 삼았다.
즉,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국력이 갖춰질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면서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고, 전술적으로도 협력하는 외교정책으로, 어떻게 보면‘도광양회’는 중국인 특유의 목표를 위해, 음험(陰險)하게 뜻을 펼쳐 나가는 당당하지 못한 비굴한 면이 보인다.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경제성장을 바탕으로‘도광양회’를 기본으로 하되, 평화를 유지하며 우뚝 일어선다는 뜻의‘화평굴기(和平屈起)’노선과, 필요할 때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는‘유소작위(有所作爲)’를 표방하면서 국제정치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빛을 감추고 실력을 길러서 신흥강대국임을 선언한 시진핑(習近平), 그런데 아뿔사 초강대국 미국이 있었다. 
‘America first’를 외치는 트럼프와의 힘겨루기에서 처참하게 밀렸다. 며칠 전 리커창(李克强 )의 2019년 중국정부 업무보고를 보면, 자신의 처지를 분명히 알아차린 듯하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큰 내상(內傷)을 입고 몸을 낮춘 중국,‘도광양회’로 회귀(回歸)한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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