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 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철 / 명상디자인학교 교장

주인 없는 가게, 이름만 들어도 재미있습니다. 가게는 주인과 손님이 동시에 거래 관계를 함으로써 존재감이 형성됩니다. 그만큼 주인과 손님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가게에 주인이 없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패턴이 아닌 전혀 새로운 모양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주인이 없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를 상상하지 않더라도 혹자는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주인과 손님의 관계에서 정과 덤의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네 정서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내 도리를 다한다는 차원에서 상거래 질서를 새롭게 확립하려 한다면 경우는 또 달라질 것입니다. 내면에 쌓인 본성적 측면의 앎이 믿음으로 발현되어 위대한 거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필자는 TV를 통하여 접한 등산로 입구에서 주인 없이 바나나를 파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담한 광주리 안에 바나나가 가득 담긴 체 주인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광주리 위쪽에 바나나 가격이 적힌 종이가 꽂혀 있고 그 옆에는 돈을 담을 통이 놓여있을 뿐입니다. 그야말로 주인이 없는 가게 가히 무위(無爲) 시대라고 칭할, 없음이나 비움 속에서 선명한 경제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가는 등산객 입장에서도 생소한 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거기에는 서로를 믿는다는 무한한 신뢰의 힘이 스며있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와 비슷한 사례는 과거 동학혁명 시절에도 있었던 것을 기록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보은취회라 일컫는 보은집회 때의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여기에는 엿을 파는 엿장수도 있었는데 그는 엿판에 가격표시만 해 둔 채 놓아둡니다. 이른바 사 가는 사람에게 엿판을 전적으로 맡긴 셈입니다. 한참 뒤 집회가 끝나고 엿판 위의 엿이 거의 없어지고 난 뒤 계산을 해보니 가져간 엿과 들어 온 돈이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해진 가격과 정확하게 일치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면 마음의 선명한 특성인 믿음이 가져다주는 힘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여기에는 세계 경제의 흐름이 관여될 수도 있고 각국 또한 자기 나라 사정에 맞게 처신하려 하는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것의 이면에는 애초부터 믿음이 상실되었기에 나타난 복합적 현상의 한 측면인 것은 아니냐하는 점입니다. 경제가 어렵다 하는 것은 믿음이 없어졌다, 상대를 불신하는 점의 객관적 정황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해진 무한 경쟁이라는 살벌한 용어가 어찌 보면 이러한 양상을 반영이나 한 듯 섬뜩하기만 합니다. 그야말로 경쟁의 극대화 속에 불신과 불만족, 욕망의 양산이 마치 정당한 시대 대세인 양 표류되어 나타나는 현상인 것은 아닌 가하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인 없는 가게의 당당함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반영할 영적 자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재화는 자연물로부터 생산되었고 이를 다룰 가치는 순수한 마음이라야 가능하다는 이치로서 비유해 본다면 말입니다. 마음과 몸, 이 양자를 아우를 시각은 욕망 차원의 몸과, 믿음·사랑·신뢰 차원의 마음이나 본성 차원으로 양분되기도 합니다. 경제적 효율성에서 몸의 경제와 마음과 본성 차원의 경제, 이 양자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가 성공의 관건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 없는 가게가 암시하는 것은 어느 쪽인가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통속적 삶의 아류인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표피적 삶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와 의미에 정점을 두고 내면을 더욱 밝히는 삶을 영위하는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모든 귀결은 마음으로부터, 또 그 뿌리인 성품으로 귀결될 품격에서 주인 없는 가게야말로 미래 경제의 척도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가는 것은 반드시 돌아오고 오는 것은 반드시 돌아간다는 선각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내가 행한 행위 하나는 반드시 나에게로 귀결된다는 이치에서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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