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봉윤 [팔만대장경과 남해 14]
특별기고 김봉윤 [팔만대장경과 남해 14]
  • 남해신문
  • 승인 2019.02.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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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사대장도감에서 판각한 경전 ①
김봉윤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부회장
김봉윤고려대장경판각성지보존회 부회장

『종경록(宗鏡錄)』

팔만대장경은 ‘고려국대장도감, 고려국분사대장도감’에서 만들었다고 했다. 『종경록』 권제27 제17장에는 ‘정미세 고려국 분사남해대장도감 개판(丁未歲 高麗國 分司南海大藏都監 開板)’이라고 새겨져 있다. 종경록을 남해에서 판각했다는 것이며, 남해에 분사대장도감이 설치되었다는 말이다.
『종경록』은 중국 오대와 북송시대의 선승인 영명연수(永明延壽)가 지은 100권의 저술로 만법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일심에 관하여 질문과 답변을 하고, 경론 60부와 중국, 인도의 성현 300인의 저서를 비롯하여 선승의 어록, 계율서, 속서 등을 널리 인용하여 증명하는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분량과 어려운 내용으로 인해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경전이다.
일심(一心)과 선교일치(禪敎一致)를 주장하는 종경록은 분량이 워낙 방대하고 어려워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저자인 영명연수가 4권으로 줄여 만든 책으로 『주심부(註心賦)』가 있으며, 북송의 회당조심이 종경록의 요지를 3권으로 추려서 간행한 『명추회요(冥樞會要)』가 있다. 덕분에 종경록의 심오한 뜻까지는 알 수가 없지만 책장이나마 넘길 수는 있다.
분사남해대장도감에서 새겼다고 명확하게 확인되는 종경록 외에 남해판각이 유력시되는 분사대장도감판 경전과 분사대장도감에서 새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알려진 경전과 서책들을 살펴보자.

▶해인사 대장경판
▶해인사 대장경판

분사대장도감판 경전

대장경의 구성은 대장목록(大藏目錄)에 들어있는 ‘대장(大藏)’과 보유판목록(補遺板目錄)에 있는 판본 및 개인(私)과 사찰(寺)에서 판각한 사간판을 이르는 ‘외장(外藏)’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장’으로 분류되는 경판의 간기를 보면 분사대장도감의 판각기간은 1243년부터 1247년까지로 나오며, 그 전과 후에도 분사대장도감에서 사간판과 보유판의 판각활동을 지속적으로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당집』(1245년),『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1245년),『화엄경탐현기』(1245년),『종경록』(1246년∼1248년),『남명천화상송증도가사실)』(1248년) 등의 경판을 분사도감에서 판각한 것을 간기를 통해 알 수가 있다.
정안이『묘법연화경』(1236년), 『선문염송집』(1243년),『금강삼매경론』(1244년),『화엄경보현행원품』(1245년),『금강반야바라밀경』(1245년),『불설예수시왕칠생경』(1246년) 등 6종의 경판을 조성할 당시 하동과 남해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1251년 분사도감에서 판각한『동국이상국집』발미에서 보듯이 하동지역은 판각기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 6종의 경판은 분사남해대장도감에서 판각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안의 주도로 조성한 이들 경판의 지문에는 집권자 최우의 안녕과 국왕과 왕실의 안녕, 몽골군의 격퇴 등의 국가적 염원과 더불어 부모와 가족과 친족, 모든 중생의 안녕과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그리고 대장목록과 보유판 목록에 들어있지 않지만 대장경 판각이 진행 중에 있을 때 새겨진 『천태삼대부보주』(1245년)가 있으며, 대장경 판각이 끝난 후에도『동국이상국집』(1251년),『향약구급방』(1247년∼1251년 추정),『종문척영집』(1254년),『중첨족본선원청규』(1254년),『주심부』(1254년),『중편조동오위』(1260년) 등을 판각해 분사대장도감이 대장경 조성이 끝난 후에도 일정기간 판각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송광사(수선사) 전경
▶송광사(수선사) 전경

 

세계 유일본『조당집』과 일연이 쓴『중편조동오위』

대장목록에 들어있지 않은 분사도감 판본을 보면 종경록, 증도가사실, 금강삼매경론, 조당집, 선문염송, 종문척영집, 선원청규, 주심부 등 대부분이 조계종 계통의 저술이며 화엄종과 천태종의 경전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는 수선사를 중심으로 조계종이 확립되는 판각당시 불교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역사에서 사라져 잊혔던 조당집이 다시 나타난 것은 일제강점기 해인사 경판을 조사하면서이다. 조당집 간기에 1245년 분사대장도감에서 판각했다고 새겨져 있다. 세계 유일본으로 당나라의 선종등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서책으로 남해에서 판각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종문척영집, 선원청규, 주심부, 천태삼대부보주 등은 간기에 분사도감 판각이 명확히 새겨져 있지만 그 판목은 남아있지 않으며 인경본도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중인 주심부를 제외하고는 일본에만 있고 국내는 영인본만 전한다고 한다.
책의 서문에 남해에서 쓴다고 밝힌 일연선사의 중편조동오위는 원래의 목판과 인경본도 전하지 않으며 일본에서 새로 판각해서 만든 책이 교토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이제 우리가 다시 남해 땅에서 판각했던 이 서책들을 복각해내야 한다. 근래에 들어 경북 군위군에서는 삼국유사를 복각했으며, 전북 전주시는 완판본 춘향전을 복각하고 목판서화체험관을 운영하며 판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장경문화학교에서는 천태종과 함께 법화경 복각불사를 시작해서 현재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대장경 판각이 800여 년 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일이며 미래의 전략산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봉산에서 본 대사, 남치, 관당
▶삼봉산에서 본 대사, 남치, 관당

 

분사대장도감에서 판각한 경전과 서책 중 많이 알려진 것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당집(祖堂集)』
문등의 제자 정(靜)과 균(筠)이 중국 오대의 952년에 저술한 선가 고승들의 행적과 어록을 채록한 것으로 스승이 제자에게 교리를 전한 선문답이 많이 실려 있다. 중국 역사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가 일제 강점기 해인사 경판을 조사하던 중에 발견되어 세계 유일본으로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책으로 1245년 분사대장도감에서 20권으로 나누어 간행하였다.
조당집 연구의 대가인 일본『초기선종사』의 저자 야나기다 교수는 조당집을 판각한 남해를 꼭 들려보고 싶었다며 1993년에 대사, 관당 일대를 찾아 깊은 감회를 피력하고 ‘아랍-스리랑카 남쪽-남인도-싱가포르-중국 귀주’로 연결된 해양실크로드의 종착점이 중국 귀주라고 하던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고 남해가 그 종착점이라고 선언했다. 조당집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 중국 귀주다.

●『대방광불화엄경수현분제통지방궤(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당나라 때 지엄(智儼, 602-668)이 저술하였고, 줄여서 『수현』, 『화엄경수현기』, 『수현기』라고도 하며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60권 대방광불화엄경을 해석한 책이다.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
당나라 때 법장(法藏, 643-712)이 687년에서 695년 사이에 저술하였으며, 줄여서『탐현』,『탐현기』,『화엄경소』라고도 한다.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60권『화엄경』에 대한 주석서로서,「십지품」과「입법계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법장은 이 책을 2권이 미완성인 채로 신라 승려인 승전(勝銓)을 통해 의상에게 보냈다고 하며, 고려시대에 균여가『탐현기석(探玄記釋)』을 지었다.
법장에게 책을 받은 신라승려 승전은 고현면 대사리에 망덕사를 창건했다고 주민들에게 전해오는 그 승전이다.(탑동다층석탑(정지석탑) 앞의 주민들이 세운 비문에 ‘승전법사(勝銓法師)란 분이 오셔서 망덕사(望德寺)란 절을 창건함과 동시에 현 이 자리에 탑을 세우고’라는 구절이 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사실(南明泉和尙頌證道歌事實』
당나라 때 현각 스님이 지은 증도가에 대해 남명사의 법천 스님이 찬탄한 게송들을 해석한 것으로 고려 고종 때 연(連)선사가 편찬하였으며, 전광재의 발문에 의하면 ‘몽골을 물리치고자 금성에 나아갔다가 서룡의 선로인 연공에게 강설을 부탁했다’고 하였다. 분사대장도감에서 3권 1책으로 판각했으며 1248년 9월에 진안동도안찰부사 전광재가 개판해 해인사 보유판에 보관되어 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후진시대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이 406년에 장안의 대사(大寺)에서 번역하였다고 하며, 줄여서『법화경』이라고 한다.『법화경』은 가장 널리 읽히는 대승경전 가운데 하나이며,『반야경』,『유마경』,『화엄경』 등의 경전들과 함께 초기 대승불교 경전 중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인도에서 온 구마라집이 법화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곳으로 알려진 장안의 대사라는 이름의 절이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남해 고현면의 대사(大寺)를 ‘큰절이 있던 마을’이 아닌 대장경을 판각했던 절의 이름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시대에 혜심(慧諶)이 1226년(고려 고종 13)에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에 있을 때 저술하였고, 줄여서 『염송』이라 한다. 선가의 모든 부처와 조사가 염(拈)하고 송(頌)한 것들을 모아 선사들의 어록과 전법을 연대별로 체계적으로 분류한 것으로 선가의 옛 이야기 1,125개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진각국사 혜심이 남해 화방사를 중창하고 강월암 창건 낙성식에 와서 시를 남겼다.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신라시대에 원효(元曉, 617-686)가 지은 『금강삼매경』에 대한 주석서로 근본 가르침과 개요 및 경의 제목이 갖는 의미 등과 함께 경의 내용을 해설한 책이다.

●『화엄경보현행원품(華嚴經普賢行願品)』
당나라 때 반야(般若)가 번역한 정원본(貞元本) 화엄경을 징관(澄觀)이 해설한 것으로 화엄경 가운데 보현보살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설법한 부분으로 화엄경 중 가장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후진시대에 구마라집이 401년에 장안의 소요원(逍遙園)에서 번역하였으며, 줄여서『금강경』,『금강반야경』이라고 한다. 대승불교 초기의 사상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평가되는데, 공(空)사상을 말하고 있으며 선종에서 중시하였다.

●『불설예수시왕칠생경(佛說預修十王七生經)』
원래의 제목이『불설염라왕수기사중역수생칠왕생정토경(佛說閻羅王授記四衆逆修生七往生淨土經)』이고, 줄여서『시왕칠생경』,『시왕경』이라고도 부른다. 당나라 말기와 오대 때에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전에서는 죽은 사람이 사후에 명부로 가는 도중에 시왕청을 경과하는데, 죽은 지 초7일에는 진광왕이 심판을 하고, 2·7일에는 초강왕, 3·7일에는 송제왕, 4·7일에는 오관왕, 5·7일에는 염라왕, 6·7일에는 변성왕, 7·7일에는 태산왕, 백일에는 평등왕, 1년째는 도시왕, 3년째에는 오도전륜왕이 심판을 한다고 한다.
이는 불교의 사후관인 중음신이 49일 동안 돌아다닌다는 관념과 중국 유교의 삼년상이 결합한 것으로 유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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