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자 심리학박사
류정자 심리학박사

한창 엄마의 품속에서 사랑을 먹고 뛰놀며 응석을 부려야 할 어린 나이에 할 말을 삼키면서 구석진 곳에서 커다란 눈만 껌벅거리고 가만히 앉아 있던 그 아이의 얼굴이 확 다가옴을 느낀다.
초등학교에서 또래관계에서도 거부반응을 보이며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심한 불안을 나타내는 2학년 남자아이가 상담을 의뢰하였다. 
내담자를 면담하는 동안 필자인 상담자와 신뢰관계가 형성되자 아이가 진심으로 호소하는 문제는 엄마도 보고 싶지만 친아빠가 너무 많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빠는 엄마와 싸운 뒤에 가방에 옷을 싸서 집을 나가버린지 오래되었고 그 뒤에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서 만날 수가 없다며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 다른 힘든 것은 없느냐고 질문하였을 때 그 후로 새 아빠가 생겼는데 엄마는 새 아빠를 따라서 다른 도시로 살러갔는데 자주 온다고 해놓고 바쁘다고 하면서 오지도 않는다며 서운해 하였다. 
내담자가 울먹거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이라고 바꾸기로 하였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금까지는 □□□라는 이름으로 살았는데 자신은 바꾸고 싶지 않은데 외할머니와 엄마가 바꾸자고 하신단다. 자신이 크게 자라버리면 아빠가 이다음에 못 알아볼 것을 걱정하였고 더구나 달라진 이름 때문에도 못 알아 볼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하소연 하였다. 
그렇지만 함께 살고 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속마음을 잘 모른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비밀을 지켜달라고 하였다.
아무래도 외할머니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담자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귀가하는 시간에 할머니께 전화로 약속하고 알려주시는 주소로 찾아가서 만날 수가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손자가 상담하는 것에 대해서 달갑게 여기는 편은 아닌 것 같았으나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이나 친구관계에서도 거부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상담을 의뢰하여 손자를 만나게 된 이유를 말씀드렸다. 
뜻밖에 집에서 만난 아이는 학교상담실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심하게 혀짜래기 말투로 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대상자는 외조부모님에게는 선택적 퇴행 행동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동이 상담자를 만나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신 외조모님께서는 다소 긍정적으로 생각하셨는지 “다음 주에도 오늘처럼 같은 시간에 오십니까?” 라며 아동에게 인사할 것을 권하였다.
다음회기에 학교에서 아동을 만났을 때는 집에서 사용했던 혀짜래기 언어는 사용하지 않는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동의 방으로 가서 집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혀짜래기로 말하는 행동에 대해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엄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집에서 쫒겨났기 때문에 애기처럼 행동해야 자신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은 자신이 어리니까 아빠를 찾을 수는 없지만 이다음에 꼭 만날 것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담자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이는 아직은 초등학교 2학년생이지만 자신이 감정의 위협을 받고 서운하고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속마음을 들킬까봐 집에서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면서 반동형성으로 혀짜래기로 말하는 퇴행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부부가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감정싸움에 휘말려서 갈등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 면접교섭을 통해서 보고 싶어 하는 아빠를 만날 수 있게 하고 아이가 마음 아프지 않고 잘 자라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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