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문화원 하미자 원장이 지난 2018년 지방문화원의 날을 맞아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을 했다. 전국 12명의 문화원장 수상자 중 경남에서는 유일하게 하 원장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을 때 빨리 뵙고 싶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도 이번에 남해문화 제19호집이 발간되어 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2012년 제13대 문화원장으로 취임한 하 원장에게 지난 4년 동안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그래서 자립의 길을 걷기 위해 각종 공모사업으로 버티며 힘든 시기를 잘 견뎌냈다. 어르신문화와 청소년 선도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언제나 창의적인 생각으로 남해문화원을 쑥쑥 발전시키고 있는 하 원장을 어렵게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요즘 남해의 핫이슈인 남해초 축구부 차량지원 기탁금이 2억4천만 원 이상으로 비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해군향토장학회에서도 1억 원의 한도 내에서 기탁을 하기로 했다는데
=동문회에서 먼저 반향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예상을 빗나가더라. 하지만 주변의 뜻있는 독지가들이 기탁을 하여 이 만큼의 금액이 모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향토장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어 얼마 전 회의에 참석을 했다. 향토장학금은 그동안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지원돼 왔지만 이번에 예체능분야로 확대해 나가자는 의견이 있어 2월말 경에 승인절차를 밟게 된다. 남해초 축구부는 우리 남해의 자랑이며 더욱 키워가야 할 인적자산으로 가치가 있기에 이번 결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남해인의 대단한 저력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다.

 

▲행사장에서 언제나 알맹이 있는 축사를 놓치지 않아 들을 때마다 가슴 속으로 절절히 스며들 때가 많았다. 머리로 하는 이성적인 말이 아니고 평소에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언어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항상 원고도 보지 않고 즉석에서 바로 하시던데
=미리 적어가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하다 보니 이제 습관이 되었다. 사람에 대한 축사를 할 때는 그 사람을 어떤 모습으로 살리고 싶다는 그림을 그려서 하게 되고, 단체에 대해서는 그 단체가 걸어온 길과 소속된 사람에 걸맞은 말을 생각하기에 원고를 보고 하는 일이 없어지더라. 항상 약자 편에 서는 삶을 살았고 위기가 닥쳤을 때는 피하지 않고 정의에 맞서다보니 어렵고 약한 곳을 자연적으로 보듬게 된다. 인사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 같다. 말 나온 김에 하나를 더 언급한다면 크고 오래된 사찰보다 이제 막 생긴 작은 사찰로 가서 시주를 하게 되더라. 4년 동안 조직 관리를 하면서 똑똑한 사람은 키워주고 싶고 실력 있는 사람은 더욱 활용하여 더 잘하도록 울타리가 돼 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생긴다. 

 

▲사람들은 간혹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을 험담하고 비난을 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원장님에 대한 좋지 않은 말들이 들릴 때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애먼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에게 보약을 준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 그 사람들은 남의 말을 하기 좋아 그렇게 할 것이기에, 그 말에 붙잡혀 계속 마음을 다치면 자신의 발전은 없게 되니 그럴 필요가 없다. 친정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사람은 건강해야 하고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집에 오는 손님은 절대 빈손으로 보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래서 그렇게 실천을 하며 살고 있다. 일꾼들에게 는 항상 일한 삯보다 세 배나 더 많은 보너스를 주었고, “남을 칭찬하는 말을 해라, 나쁜 말은 남을 통해 하지 말고 당사자에게 직접 해라. 남에 대한 말은 쓸데없이 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 말들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올해부터는 매일 하루의 일을 기록하며 일기를 쓰고 있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소중한 마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지역을 위해 하신 일들이 정말 많을 줄 안다. 기억나시는 대로 말씀해 주시고, 새로 창립한 단체들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1987년 남해군생활개선회를 창립하여 2001년까지 회장을 역임, 2009년 초대여성예비군소대장을 창립하여 2011년까지 회장 역임, 2011년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 검찰시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2014년부터 2년간 지역사회복지협의회 공동의장, 2009년부터 3년간 바르게살기 남해군협의회장,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남해문화사랑회 회장, 2008년부터 2년간 남해군여성단체협의회장,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남해군음악협회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역을 위해 많은 헌신과 봉사를 했다는 것을 마음으로 충분히 느끼게 된다. 그래서 포상 내용도 많을 것 같은데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
=1989년 경남도지사 표창장 (농촌생활개선), 1991년 경남도시자 표창장, 2000년 농촌생활연구소(공로상), 2000년 농림부장관상, 2001년 남해문화대상, 2003년 경남도지사(자원봉사상), 2003년 자연보호중앙협의회 표창장, 2004년 경남도지사 표창장, 2008년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회장 훈장, 2012년 국가보훈처장 감사패, 2012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7년 한국근우회 무궁화 사회봉사상,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호불호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장님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모든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먼저 원칙을 고수해야 된다는 주의이다. 사회에서는 원칙 없는 것은 없어야 하고 불미스러운 것도 없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간다. 사심이 없고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겪어보지 않고는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행사장에 갈 때마다, 초등학생이건 중학생이건 큰절을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기에 모두가 소중히 여겨져 그렇게 마음이 열린다. 문화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뒤늦게 문화산업학과 석사과정을 밟았던 것처럼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생을 다할 때까지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 것이다. 

 

▲군 단위 문화원 중 한국문화원연합회 공모사업에 최다 선정되어 대한민국 문화원 농어촌형 종합경영평가에서 10위권에 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외에도 미처 밝히지 못한 공적들이 또 있을 것 같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어르신문화일자리사업에서 어르신바리스타 ‘네발자전거’를 기획하여 현재 커피마을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일자리창출을 하고 있으며, 42년간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남해군에서 가장 낙후돼 있는 이동면 어르신들을 위해 22년간 문화공연과 위안잔치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그리고 5년간 불우한 이웃과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을 추진하여 한국전통문화와 우리나라문화를 다문화여성들이 빨리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문화예술회관 건립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남해유배문학관쪽으로 부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들은 있었지만 어디가 될지는 확실치 않다. 장소는 물론 여러 면으로 따져봤을 때 제일 적합한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청소년문화회관과 문화예술회관이 한 건물에 복합공간으로 태어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공간 따로 아이들의 공간 따로 구분지어 다른 곳에 짓는 것은 적극 반대이다. 한 건물에 갤러리 대공연장 소공연장이 있되 공간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융복합이 대세인 요즘 문화적 충돌을 없애고 함께 갈 수 있는 플랜을 이루어 서로가 소외되지 않도록 문화치유 방법 도구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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