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 명상디자인학교 교장
박철 / 명상디자인학교 교장

골디락스(Goldilocks Zone)는 너무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지대라는 의미입니다. 태양을 기점으로 골디락스는 생명이 탄생하고 자라기 가장 좋은 우주 공간입니다. 그곳이 지구입니다. 우주 공간에도 이러한 지대가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기까지 하면서 생명체가 거주하기 좋은 환경으로서 지구가 이 영역에 속하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기까지 합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 양비론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닌 조화로움으로 대변되는 골디락스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조화의 미덕, 이것을 사람의 마음으로 치면 중도의 지혜를 품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도와 중용의 지혜는 상생과 상보로서 진화하는데 합리적인 자양분이기도 합니다. 조화의 멋이라면 인체 내의 여러 기관도 이에 부응할 것이고 사람의 마음 또한 생각과 감정을 조화시킴으로써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해진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심장의 박동 수는 누가 조절하지 않는데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혈액의 순환 또한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순환하고 있습니다. 위의 활동에서도 사람의 생각으로 지시할 수 없는데도 위는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세포의 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정도로서 보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조화의 멋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조화의 미덕은 특히 자연생명의 순환질서에서 그 극치를 이룹니다, 여기 한 나무가 있다고 가정하여 봅니다. 나무라는 개체는 씨앗, 뿌리와 줄기. 가지. 잎, 열매, 꽃 등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성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나무 구성요소의 누군가가 욕심을 낸다거나 과욕을 부리면 전체로서 나무의 성장력은 퇴보될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또한 이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넘어 숲 전체 조화의 미덕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보면 조화야말로 상보 협동 공생의 길로 나아가는 데 중추적 기능이라는 점에서 주의 깊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질서는 이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조화의 미덕으로 생존하고 있지만 그렇다면 심안 자(心眼者)로서 우리들은 이러한 질서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느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이분법인즉슨 양극논리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타개할 방편으로써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객관적인 정황으로 우리를 아프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절대적 관점, 내가 옳다는 절대적 사고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요지부동으로 오직 자신의 의견이나 자신이 속한 소속의 의견만이 옳다는 논리로서는 상보와 상생의 길은 요원할 것입니다. 조화의 미덕을 이루는 근간은 상대주의이며 배려와 이해로서 품을 수 있는 관용입니다. 나와 다른 저쪽의 의견을 경청한다는 것, 그리고 공감과 긍정적 배려로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골디락스와 같은 심안 적 환경을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생존의 또 다른 의미라면 한번쯤 깊게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름이 아름답다며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시류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류의 핵심은 같음과 다름, 그 차이를 조율할 조화의 덕이며 이것은 인간 생을 가장 아름답게 할 품격 높은 행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변과 중심이라는 영역에서 보면 내가 중심이면 상대는 주변이고 내가 주변이 되면 상대가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중심과 주변으로 대변될 사이는 이 양자를 조율할 조화가 있기에 삶이 순탄하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화의 덕을 실현하는 자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상대와 의견이 달라서 불편하지는 않았습니까? 혹은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나의 주장을 과도하게 내세우지는 않았습니까? 그로 인하여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거나 주지는 않았습니까?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마음으로 심호흡하며 조화롭게 마음을 달래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두 번, 세 번의 속 깊은 곳까지 바라볼 여유를 지닐 수 있다면 골디락스처럼 한결 편안하고 쾌적한 심리적 환경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이 남해는 물론 우리나라와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 사명에 부응하는 것이라면 나의 조화로운 의지 하나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위대한 창조자가 되는 셈입니다. 용서와 수용과 중도의 마음을 조화로써 생성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의 둘레에 포근하고 자상한 이미지의 골디락스를 만들기에 그 향기는 모든 사람에게 한층 더 따스하고 깊게 각인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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