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느니만 못하다'는 성어로 이론과 실체의 간극(間隙)으로 볼 수 있다. 
 중국 한(漢)나라 한서(漢書) 조충국전(趙充國傳)에서 유래 하였다.
전한(前漢) 9대 황제인 선제(宣帝)때 티베트계 유목민족인 강족(羌族)이 쳐들어 왔는데, 한나라는 필사적으로 진압하려 응전(應戰)했으나 크게 패하였다. 
고민 끝에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인 병길(丙吉)에게,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을 찾아가 토벌군의 장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어보라고 명(命)을 내렸다.
당시 조충국은 70세의 노장(老將)이었다. 그는 일찍이 7대 황제 무제(武帝)때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직속부하로 흉노(匈奴)토벌에 출전했다가 포위되자, 불과 100여명의 군사로 혈전 끝에 포위망을 뚫고 전군(全軍)을 구출한 장수이다.거
혁혁한 공으로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되어 오랑캐토벌전의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조충국을 찾아온 어사대부 병길은 "강족을 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장군에게 물어 보라는 어명을 받고 왔소 이다" 이에 조충국은 서슴없이 "어디 노신(老臣)을 능가할 사람이 있겠소?"라며 그는 자신(自身)이 적임자라고 말했다.
 이 후 황제인 선제는 조충국에게 "강족을 토벌하는데 계책(計策)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폐하,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옵니다(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군사란 실지(實地)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오니, 원컨대 신을 금성군(金城郡:감숙성난주甘肅省蘭州))로 보내주소서 계책은 현지를 살펴 본 후 아뢰겠나이다."
선제는 기꺼이 윤허했다.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충국은 기병(騎兵)보다 둔전병(屯田兵:변경邊境에주둔,토착케하던군사)을 두는 것이 상책(上策)이라고 아뢰었다. 계책이 채택된 후, 강족의 반란도 침략도 수그러졌다고 한다.
 근현대(近現代)에 들어서는 고사성어를 좀 더 현실감 있게 바꾼 것이 중국에서 많이 쓰는 '백번 보는 것은 한번 직접 실행에 옮겨 보는 것만 못하다'는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 있는데 상당히 일리(一理)가 있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요즘 교육적인 측면에서 행(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행동을 통해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축적되는 것 보다, 감성적(感性的)으로 가슴에 품어 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성적 지능, 자기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며 이해하는 '백행불여일감(百行不如一感)', 즉 백번 행하는 것 보다 단 하나라도 제대로 가슴으로 느끼고 품을 수 있는 감성을 얻는 것이 훨씬 소중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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