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해군 문화관광해설사다”15년 동안 남해를 빛내기 위해 전심전력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지난 11일 남해군의 관광발전을 위한 세미나를 가졌다. 그날 네 명의 주제발표자와 종합토론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느 지역이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동력은 최종적으로 ‘사람이다’라는 합일점을 도출해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와 시설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보이지 않는 힘은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필자는 그곳에 있는 다섯 시간 동안 계속 서광처럼 떠오르는 문화관광해설사 한 명을 놓칠 수 없었다. 그녀는 현재 1년8개월째 매주 자신의 옥고를 본지에 연재하고 있는데 작년에 연재됐던 글 중에는 해설사 활동을 통해 겪었던 진솔한 이야기들을 한동안 쏟아내기도 했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큰 물결로 교감이 되어 그녀를 향한 마음이 활활 타오르곤 했다. 올바른 직업관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활동이 감동되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서재심 씨 같은 인물이 남해 곳곳에 심어진다면 관광객들의 발길은 자연적으로 통영과 여수가 아닌 남해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2005년 남해군청 문화관광과에서 신규교육을 받고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손님들과의 대면이 이루어졌다. 해설사교육에서는 기본적인 해설의 기법만 배우기에 나머지는 무엇이든 자기 스스로 습득하고 창조적으로 발현해야 했다. 그녀는 해설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주야로 많은 서적들을 읽으며 견문을 넓혀갔다.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해설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있을 때 그녀는 해설사로서의 교양과 지식습득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노력들이 해설 활동에서 드러났는지 주변에서 어떻게 그렇게 해설을 잘하냐고 물으면 “백조는 우아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물속에서는 수없는 물갈퀴질을 하고 있다”는 말로 대변을 한다. 언제든지 해설을 부탁하는 지역과 대상이 일단 정해지면 그녀는 그들을 위해 모든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미리 그 지역과 대상을 공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계절과 분위기에 맞게 암송을 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깊이 스며들게 한다. 어느 날 물미해안도로가 가까워졌을 때는 고두현의 시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읊는다.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낮은 파도에도 멀리하는 노을~”로 감성을 자극하면 사람들은 귀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밝은 얼굴로 동화된다.

해설사 초보시절, 서울대 동문을 대상으로 해설을 하게 되었다. 어떤 것도 셈할 줄 모르고 단순하기만 한 그녀는 분위기를 다지기 위해 ‘발렌타인30년산’이 어떤 건지도 모른 채 3잔을 연거푸 마셔 혀가 감기고 힘이 풀렸지만 정신을 놓지 않고 열과 성을 다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그녀의 즉흥적인 멘트나 순발력은 모두를 반하게 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어느 날은 구례역에서 남해까지 손님을 모시는 일이 있었다. 섬진강과 하동을 거쳐 남해 노량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1초도 쉬지 않고 지리산과 토지의 소설 이야기를 버무려가며 계속 해설을 이어갔다. 마이크도 없던 시절 목소리를 생으로 크게 내다보니 목에 과부하가 걸렸다. 그 손님들은 상주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다시 금산을 관광하고 구례역으로 돌아가는 코스였는데 1박2일 동안 얼마나 목을 썼던지, 1주일 동안 목소리가 잠겨서 가족과의 대화도 글자로 소통했다. 병원에서는 “처방약은 따로 없고 그냥 푹 쉬라”는 답만 돌아왔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깊은 계곡에서 피를 쏟아내며 득음을 하는 것처럼 그녀도 그 일을 계기로 득음이 되었다. 원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변해 오히려 지금 목소리에 만족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관광객들이 남해에 반할까를 생각하고 무리를 하니 몸은 그렇게 자주 탈이 난다. 언제나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에 그녀를 바라보는 관광객들은 감동을 넘어 감화를 받는다. 많은 해설사들을 겪어본 손님들은 “누가 뭐래도 해설사님의 해설은 신의 경지입니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냥 돌아가는 게 아쉬운 손님들은 그녀의 호주머니에 팁을 넣어주고 맛있는 것을 몽땅 싸주기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살림도 잘 못하고, 사람에게 교언영색 할 줄도 모르고, 기회를 잘 볼 줄도 모르는, 모르는 쟁이 투성이인 그녀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문화관광해설과 강의뿐이다.

그래서인지 어디에서나 자신을 소개할 때 항상 빠뜨리지 않고 “나는 남해자연예찬론자‧이순신예찬론자‧시예찬론자”라는 수식어 삼종세트를 내민다. 이순신에 반한 그녀는 이순신에 관한 책을 50권 이상 소장하고 있다. 강의 요청이 올 때마다 읽고 또 읽는데 특히 김종대 저자의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를 열 번 넘게 읽었고 지금도 읽는 중이다. 그녀는 해설사 이외에도 많은 강의를 전국적으로 하고 있다. 각 면의 노인대학이나 학생들 또는 단체에서의 신규교육, 광주의 월봉서원, 서울 원불교 교무회, 다문화가정, 남해보건소, 요식업 종사자들에게도 폭넓게 강의를 했다. 강의 제목도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일상이 예술이다, 이순신 어록, 남해12경, 이순신 승리의 리더십’등으로 강의 방향을 잡는다. 그녀가 군의 요청에 의해 강의를 한 후 받은 강사료는 향토장학금으로 바로 기탁을 한다.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자랑할 게 못 된다고 했지만 필자는 이 사실을 그냥 간과할 수 없었다.

장점이 많은 그녀이지만 바른 소리를 잘하는 성격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미움을 산적도 있다. 남해군은 현재 28명의 해설사가 활동하고 있다. 2012년에 해설사들을 배출한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중단이 돼 있다. 그녀는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썩는다. 해설에 뜻을 두고 있는 미래의 해설사들을 적절하게 배출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하여 관계자들로부터 애먼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것 외에도 2010년부터 2011년 1월까지 계약직으로 유배문학관에 근무를 할 때 바른 소리를 하여 다른 해설사와 의견다툼이 있었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이순신영상관 이순신순국공원에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도 공무원의 언행이 거슬려 할 말을 시원스럽게 하고 그 직을 미련 없이 그만 두었다.

그녀는 이순신순국공원에서 계속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어느 날 열과 성을 다해 2시간 동안의 해설을 끝냈을 때 “여기는 해설로 장사하는 데 아닙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주인의식은 버리고 남도 모두 잘 한다는 생각으로 남하는 것처럼만 하세요”라는 말로 담당공무원이 힘을 빼고 자존심을 건드려 더 이상 종사할 수 없었음을 어렵게 털어놓았다. 그동안 다양한 해설로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녀에게 전국에서 개인적으로 해설요청을 해온다. 그래서 한 달에 세 번 정도는 해설을 하였지만 거의 재능기부였다. 만약 2016년 그때 그녀가 공무원의 말을 쓰레기말로 여기고 쓰레기통에 잽싸게 버렸다면 지금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그냥 넘기는 성격이 아니기에 그 당시로 다시 시계 바늘을 돌린다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구글 다음 네이버 인터넷에는 남해군에서 제일 유명한 해설사는 ‘서재심’으로 도배가 돼 있다. 사람들이 직접 해설을 접하고 마음이 동해 자발적으로 그런 글을 남긴 것이다. 어느 날은 박원숙의 ‘같이삽시다’에 해설로 동참하기로 하고 방송작가와 10일 정도 어떻게 할 것인지, 원고를 주고받았는데 일정 하루 전날, 군에서 “서재심 씨는 남해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아니니 다른 사람을 대체해야 한다”는 말을 하여 그 일은 하루아침에 어긋나고 말았다. 이 날벼락 같은 말은 그녀가 2012년 남해군에서 계약직으로 채용되어 급여를 받게 되자 경상남도에서는 이중으로 직을 맡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하여 경남문화관광해설사의 자격증은 반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남해군에서는 그때 그 자격증을 반납했기에 남해군에서도 자동적으로 반납이 된 것으로 처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2013년도에 경남문화관광해설사에서만 배제됐지 남해군은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그 당시 남해군수로부터 임명장을 받았기에 본인이 반려하지 않는 이상은 그 누구도 그것을 없앨 수 없다”고 외쳤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지금 남해군 문화관광해설사에서 배제돼 있다.

“나는 ‘해설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내 고향 남해를 찾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드리는 일을 하고 싶은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다”라고 또 한 번 밝혔다. 그녀는 정말 40세 이후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해설사 일을 15년 동안 하면서 12년 동안은 그런대로 순탄했고 지난 3년간은 궤도 밖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세술이 부족하여 사람과의 관계 유지가 2%정도 미흡할 뿐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 오히려 대하기가 쉽다. 남들이 삐딱하게 대하면 자신도 삐딱해져 말이 거칠게 되지만 그것은 본심이 아니다. 주위에는 그녀의 진가를 알고 오랫동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간혹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누가 뭐라 해도 그녀가 걸어온 길이 윤동주의 ‘서시’처럼 해설사로서 한 점 부끄럼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다. 해설이라는 직업에서 행복을 느끼고 전심전력을 다하는 참 해설사인 그녀의 직업세계가 무척 부럽다. 만약 이번에도 필자의 예감이 적중하다면 단언컨대, 그녀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곧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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