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쯤이야 괜찮습니다, 운전자끼리 서로 이해해야죠’ 미덕 아쉬워

새해 아침 차를 주차하기 위해 행사장에서 많이 벗어난 곳까지 한 바퀴를 돌았지만 역시나 주차할 곳이 없었다. 다시 U-턴하여 행사장과 인접한 곳, 갓길에 차를 주차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다 일어나지 말아야 될 일, 주차돼 있던 차량과의 경미한 접촉사고가 있었다.

피해차량의 손상부분이 눈으로는 확인이 잘 안 되었지만 차주의 “밖으로는 표시가 안 나지만 안쪽으로 밀려들어갔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보험회사로 연락을 했다. 직원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차주가 현장을 벗어날 일이 생겨 피해차량과 보험회사가 도중에서 만나 차의 상태를 파악하게 되었다. 보험회사 측의 말에 의하면 “가해차량의 차 번호판 조임 볼트 하나가 피해차량의 뒤 밤바에 살짝 찍혀 동그랗게 하얀 가루가 묻어 있고 그 부분만 조금 들어간 듯 보인다”고 했다. 사람의 생각이야 모두 다르겠지만 필자가 그랬다면 분명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몇 년 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을 때 다른 차량이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었다. 차가 흔들려 좀 놀라긴 했지만 부딪힌 부분이 조금 들어간 듯 경미하게 보여 “다음에는 주의하라”는 충고를 주며 미련 없이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 피해차량은 나의 처리방법과는 좀 달랐다. “정비소에 가서 수리를 하면 40~50만 원 정도가 나오는데 현금으로 약간 보상해 주면 카센터로 가서 바깥에 칠을 조금만 하든지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다. 접촉사고로 인해 남에게 현금으로 보상해 본 적이 없는 필자는 이 상황을 보험회사로 문의를 했다. 회사 측에서는 정비소에서 차를 수리하는 비용보다 현금으로 보상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는 피해차량의 차주에게 약간의 금액을 보내는 선에서 해결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그리고 잊지 않고 “한 번의 사고가 날 때마다 보험수가가 3%정도 인상이 되는데 내년 2월에 차 보험 만기가 끝날 때 보험료 인상액과 이번에 보상해 준 금액을 비교하여 보험료율 3%를 인상하는 것을 택하든지 보상해준 금액만큼 변제를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다음에 선택해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

보험회사에서 수리비 명목으로 과다 지급될 뻔한 지출을 막고 적은 금액으로 해결한 것은 잘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런 해결방법이 오히려 세상을 삭막하게 만드는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접촉사고를 낸 것은 분명 상대차량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흔적도 없는 약간의 부딪힘은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보장제도가 떡 하니 받치고 있으니 너도 나도 수리가 어중간할 때는 끝까지 현금으로 챙기기 위해 봐주고 넘어가는 미덕을 사라지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됐습니다, 이 정도야 괜찮습니다, 저도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운전자끼리 서로 이해해야죠”하면서 인심 좋게 넘어간다면, 이런 피해를 다시는 주기 싫은 운전자들이 더욱 더 조심하는 문화가 조성되지 않을까싶다. 사실 처음에는 피해차량이 정비소로 가서 정당하게 수리를 받고 보험회사가 수리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면 된다는 단편적인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상부상조의 정신이 바탕이 되어 보험회사들이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를 떠올리자 회사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여주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최종적으로 그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이 접촉사고는 현금보상으로 해결이 됐지만 지금 뒤돌아보면 필자도 “이 정도야 괜찮습니다”라고 넘어가게 하는 미덕과 거리를 멀게 한 것 같아 개운치는 않다. 이제 더 이상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그때 현금으로 해결했어야 했는지 끝까지 정비소에서 수리를 받는 쪽으로 밀고 나갔어야 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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