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성공은 중간에 그만두지 않음에 달려있다는 뜻으로, 도중에 포기하지 말라는 고사(古事)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힘찬 기상과 결심으로 새로운 일을 자신 있게 시작하지만, 힘이 들고 난관에 부딪치고 앞길이 불투명해 보여 질 때, 이제 그만 두 손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적지 않을 때가 있다.

만만치 않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순조롭고 쉬운 일이 어디 있으며, '땀  흘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무한불성(無汗不成:본보'16.10.7보도)'의 고사처럼, 많은 땀과 노력, 일관된 의지와 인내력으로 고비를 묵묵히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면, 고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 수 있는 것'은 그 힘 때문이 아니라, 꾸준함 때문이다.

 '공재불사는 '중국 전국시대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 나온다.
 잘 달리는 천리마(千里馬)도 한 번에 열 걸음을 뛸 수는 없으며, 야위고 둔한 말일지라도 열배로 노력하면 천리마를 따를 수 있으며, 성공은 포기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자르다가 그만 두면 썩은 나무도 자를 수 없지만, 새기기를 그만 두지 않는다면 쇠나 돌에도 새길 수 있다. 
지렁이가 날카로운 손톱이나 이빨도 없고, 강한 힘줄이나 뼈가 없어도 위에서 더러운 흙을 먹고, 아래에서 누런 물을 마실 수 있는 이유는 그 마음가짐이 한결같기 때문이라 했다.
 순자(荀子)는 유가사상(儒家思想)을 집대성(集大成)한 사람으로 공로가 많지만, 맹자(孟子)에게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순자가 후대에 이단(異端)으로 몰리게 된 것은, 그의 문하(門下)에서 법가(法家)의 집대성자인 한비자(韓非子)와 법가를 통해 천하를 통일 했던 이사(李斯)가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던 것이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성악설은 인간의 성품자체를 악(惡)하다고 규정한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배움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내세운 학설이다.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성인(成人)이 될 수 있고, 소인(小人)도 군자(君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선천적인 자질보다는 후천적인 배움을 중시했기에, 순자는 권학편 곳곳에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을 강조하며, 배움은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된다고 말 하는데, 이 구절도 그 중의 하나다.
 선천적 자질보다는 후천적 배움을 더욱 중시했다는 측면에서는, 순자가 맹자보다 공자의 가르침을 더욱 잘 계승하고 있다고 보는 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성공은 포기하지 않는데 있다는 것은, 현실의 보통사람들에게 격려와 위안이 되는 말이다.
 그저 명예와 부(富)가 목적이 아닌, 자신이 활짝 피워낸 향기로운 사람이었으면 하는 것이 위대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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