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공방에서 소통과 화합의 작품 창출, ‘따사롭고 축복이 넘치는 공간’

 

 

 

 

 

 

 

 

 

 

 

부부가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네잎클로버를 선물 받은 것처럼 마음이 행복해졌다. 문학 행사 때마다 웃음 띤 얼굴로 편안하고 섬세하고 여유 있는 진행으로 내방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김현근 회장의 선한 이미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40년 동안 플로리스트로 꽃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그의 아름다운 아내 박선이 한국화훼장식기사협회 경남지부장, (사)현대화예협회 브에리꽃예술 중앙회 회장을 한 공간에서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바람이 산자락에서 차갑게 불어오던 날 부부가 거주하는 박선이 플라워아카데미 꽃뜨락을 찾았다. 4년 전에 마련했다는 주택 옆 아늑한 공방에서 그녀는 남편이 서각한 ‘꽃뜨락 아틀리에’작품에 빨간 칠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새긴 글자에 아내의 손길이 더해지는 순간을 놓칠 수 없어 얼른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첫 대면부터 부부의 환상적인 호흡을 포착해서인지 티 테이블에 놓여 있던 진갈색 차조차도 핑크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박선이 경남지부장은 아주 오래전인 1987년 남해에서 ‘맵시꽃방 박선이 플라워’를 운영하며 꽃 장식을 널리 전파한 산 증인이다. 화훼장식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남해에서 처음으로 알리고 후진양성과 함께 꽃집을 더욱 대중화시켰다. 일찍이 그녀의 화훼장식 솜씨가 널리 인정되어 88올림픽 때 서울에서 꽃차를 장식하기도 했다. 우리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너는 무엇을 하여라’는 운명을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아가면서 운명을 개척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전시회가 있을 때마다 들판에서 꽃을 꺾어와 병에 꽂는 걸 즐겼다. 가끔 담임선생님의 책상에도 꽃을 꽂아두는 애교만점 학생이었다. 그녀가 23세 때 철도청에 근무할 당시 서울로 시집 간 언니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언니는 “시집가기 전 혼수품 하나를 덤으로 배워 가면 좋으니 꽃꽂이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로 권유를 하여 꽃꽂이 수업을 정식으로 받게 되었다. 언니는 그녀의 잠재된 소질을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꽃과의 인연을 다시 이어주었다. 결혼 후 제주도로 갔을 때도 문화센터에서 꽃꽂이 수업을 꾸준히 받으며 꽃 문화를 더욱 끌어들였다.

김현근 회장이 공무원인 관계로 제주도에서 남해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남해에 살면서 할 게 없었지만 배운 게 꽃이다 보니, 구 해양예식장이 있던 군청 앞에 가게를 임대하여 결혼부케를 만들었다. 그때 그녀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꽃에 빠져들수록 그녀의 꽃 예술에 대한 열망을 잠재울 수 없어 1996년도에 꽃의 나라 네덜란드행을 결심했다. 하스토아스원예국립대학 에이젠트가 있는 네덜란드로 가서 많은 공부를 하는 당당한 해외파1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바로 잡는 전환점을 형성했다. 그곳에서 네덜란드DFA 네덜란드ADFA 네덜란드DFA 자격증을 취득하여 라이센스 스쿨을 남해라는 군단위에도 가져오게 되었다. 한 번 빠져들면 뿌리를 뽑고 마는 그녀의 성향과 남편의 강력한 지지는 그녀를 전국에서 제일가는 플로리스트의 반열에 올려놓는 조건으로 충분했다. 꽃에 미쳐 꽃으로 쌓아올린 탑이 너무나 견고하여 그녀는 화전문화제 때 공간장식도 하고 실내체육관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박 지부장은 조금만 공부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전념하려고 했지만 플로리스트에만 머물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남해대학교 호텔조리제빵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자 남편은 더 학업을 이어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경남과기대 원예학과에서 농학사 과정을, 경남과기대 산업대학원에서 생명산업학으로 농학석사를, 일반대학원에서 식물자원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꽃과 관련된 일을 시작으로 근 10년을 공부하는 일에 시간을 쏟은 그녀, 처음은 꽃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파티플래너 푸드스타일링, 조경설계로 영역을 확대하여 융합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부터 40년 가까이 꽃과 함께 꽃길만을 고집해왔던 그녀는 현재 경남도립남해대학에서 푸드스타일링을 강의하고 경남기술과학대학교에서 실내조경계획과 설계를 강의하는 커리어 우먼이다. 그녀의 오늘을 있게 만든 숨은 공로자는 바로 남편인 김현근 남해문학회 회장이다.

그녀가 정상에 우뚝 서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외조를 한 그는 지난 해 12월 31일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생활 32년을 마무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무엇이든 배우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진취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는 요즘도 미래에 대한 설계로 한창 바쁘다. 예술을 평생교육으로 여기는 그는 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시 150점 중 80편을 선별하여 첫 시집‘백일홍, 꿈을 꾸다’를 정년기념으로 지난 12월 30일에 출간했다. 그는 공직생활도 빈틈없이 잘해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절차탁마하여 취득한 자격증도 놀랄 만큼 많다. 그의 자격증 중에는 아내와 함께 취득했던 화훼장식기능사와 화훼장식기사도 눈에 띈다. 창작실력이 한없이 뛰어난 그는 글이면 글 서각이면 서각 업무면 업무 모든 것을 잘 소화해 내는 실력파이다. 전국에서 부부가 화훼장식기능사와 화훼장식기사증을 취득한 것은 이 부부가 최초이다. 사람들은 부부가 같은 자격증을 가진 것에 대해 부러움과 놀라움을 표시하기 바쁘다.

그는 원래 문학적인 것에 관심이 더 많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문학을 접고 세무업무라는 직을 처음으로 부여받게 되었다. 정적인 업무를 이겨내는 길은 동적인 부분을 탐색하고 실행하는 것이었기에 일과를 마친 후에는 경상대 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 공부를 하면서 건조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예술 감각이 뛰어난 그는 3.15미술대전 특선, 공무원 미술대전 입선, 2007년 공무원문예대전 시 부문에서 행정안전부장관상을, 2011년에 시 부문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격월간지 ‘한국문인’에 수필로 등단하였고 작년에는 ‘리토피아’에서 시로 등단하는 업적을 낳았다. 그가 지닌 촉은 무지개빛깔 만큼이나 다양하여 서각, 화훼, 시, 수필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얼마 전에는 문학창작교실을 개설하여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강사를 초빙하였고 또 내년 3월에 다시 강좌를 열어 문학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창작교실을 활성화시키고 문학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요즘 공직의 옷을 벗은 그에게 중책을 맡아달라는 권유들이 들어오지만 경쟁하기를 싫어하는 그는 서로가 윈 윈 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며 계속 반려하고 있다. 아내가 말한 대로 그는 예술가가 아닌 듯 하면서도 엄청난 예술가의 기질로 살아왔고 사물을 보는 관점이 항상 건강하고 성격이 유쾌 상쾌 통쾌하여 주변을 즐겁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나빴던 감정들이 깨끗이 소멸되는 기운도 얻게 된다.

정말 사람을 대하는 넉넉한 품을 보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라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첫 시집을 발간할 때도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출간을 했다는 그의 말에서 겸손함과 인간미 등이 묻어났다. 보통 사람들은 첫 작품집을 출간하면 출판기념회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는데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이 없는 그는 소박한 출판기념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시집을 펼치면서 제일 애착이 가는 시 한 편을 부탁하니 똑같이 애정을 쏟았기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고 한다. 시집에는 남해의 풍경 직장생활 주민들과 접촉하면서 쓴 내용 어머니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80편의 시가 남이 볼 때는 부족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썼다. 능력이 부족해서 표현이 안 된 건 있을지 몰라도 한 편을 쓸 때마다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떤 시인은 시는 완성품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다시 수정하고 싶은 미련이 없다”

첫 페이지에 실린 시 ‘습관에 관한 독설’은 아내 때문에 생긴 시다. 며칠 전부터 형광등 교체를 해 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미루다 잔소리를 들은 후 뒤늦게 실행에 옮기면서 즉흥적으로 쓴 시로 그의 심성을 잘 알아채게 된다.

이제 공직생활은 끝났지만 아직은 활동할 나이이니, 첫째는 재취업 둘째는 창업 셋째는 여유 있는 시간에 재능기부로 봉사활동을 계획 중이었다. 부부의 공방에 새롭게 이름 붙인 ‘꽃뜨락 아틀리에’옆 공터에 작은 카페를 열어 길손들에게 직접 내린 커피와 차를 선보일 생각도 비쳤다. 공방에는 그가 풀잎공예를 배우면서 만든 방아깨비와 메뚜기 한 쌍씩이 세 벽면에 장식되어 부부처럼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부부는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챙겨주고 한곳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무언의 몸짓으로 알게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함을 넌지시 일깨운다. 공방 옆에 카페가 생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항상 서로에게 외조자로 내조자로 산뜻하고 애틋한 새해를 엮어갈 것이라는 예감이 넘실넘실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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