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지난 약 3주간에 걸쳐 경상남도교육청이 입법 예고한 경상남도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군민의 의견을 접수 받았습니다. 보내주신 의견 가운데 찬성 측 전국교직원노동조합경남지부남해지회 최성연 지회장과 반대 측 삼동면 동천교회 정규채 담임목사의 의견을 게재합니다. 보내주신 의견은 문맥과 분량 조절 관계로 일부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덧붙여 본지의 취지를 이해해주시고 협조해주신 여러 관계자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반대

삼동면 동천교회 정규채 담임목사

학생인권은 마땅히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남학생인권조례는 공정하지 못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조례안은 학생의 책임과 권리를 균형 있게 다루지 않고 권리만 과도하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백여 년 전 구한말 조선의 여성인권과 학생인권은 비참하리만치 열악했다. 백 년이 지난 오늘 학생인권은 비약적인 향상을 가져와 학생은 가정과 학교에서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

오히려 학교에서 인권을 논하려 한다면, 북한의 인권 실상을 알리는 것이 교육자의 책무일 것이다. 여러 해 전 강철환 씨의 수용소의 노래를 읽으면서 북한 수용소의 참혹한 인권유린에 치를 떨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북한 주민은 외국인을 만날 수 없고, 대화할 수 없으며, 가정에 초대할 수도 없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북한 외는 없을 것이다. 학생인권 향상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북한 인권향상을 위해 쏟으면 좋겠다.

학생은 아직 경제적사회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보호와 양육 아래 놓여 있는 시기이다. 학교는 교육의 산실이자 학생의 학업과 올바른 품행 습득을 위한 공간으로, 적절한 훈육이 필요한 곳이다. 학생의 권리만 강조하다가는 학생의 품성, 인격, 가치관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위험이 크다.

조례안은 수많은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조례안 제83항에 따라, 학교에 대자보 공간을 허용한다면 많은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이 저질렀던 과오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홍위병사건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성인도 왜곡된 정보에 선동 당하는 마당에, 학교에 정치적 견해를 주장하는 글을 게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이 선동당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조례안에 포함된 반성문 기록, 학교생활, 소지품 검사, 휴대폰 사용, 생활기록부 관리 등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례안에 포함된 가장 큰 문제 조항은 성개방동성애동성혼을 수용하도록 유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그들을 통해 가정을 이루어 자손이 번성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성적 순결을 요구하시며, 순결을 지키는 개인, 가정, 사회에 복을 내리신다. 그러나 동성애동성혼은 신의 창조질서를 위배하는 것으로 인류의 삶을 퇴보시킬 뿐이다.

2000년도에 어느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당시의 성개방 풍조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동성애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동성애는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이슈가 되었다. 짧은 기간 세상이 무섭도록 변한 것이다. 경남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다면, 10년 후 20년 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할는지 매우 염려스럽다.

도교육청과 조례안 찬성 측은 성개방과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상을 진보사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수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이 박물관에 있기는커녕 해마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성경 안에 인류의 삶을 고결하게 하는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초현대적인 진보사상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도전하는 사상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성경의 가치를 추구하는 개인가정사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모 경찰국에서 자녀를 망치는 법 9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핵심은 과잉보호와 방임이었다. 자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면 반드시 망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권리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경남학생인권조례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나를 비롯한 다수의 학부모는 경남학생인권조례가 입법 통과된 이후, 학교에 자녀, 손주를 보내는 것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경남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수많은 학부모가 반대하는데 왜 굳이 도교육청은 조례안을 강행하려고 하는가?

 

찬성

전국교직원노동조합경남지부남해지회 최성연 지회장

인간의 이름으로 인권을 선언, 제도화한 것은 근대 시민사회가 이룩한 위대한 진보이다.

인간이 갖는 기본적, 보편적 권리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현되고 완성되는 권리인 인권이 경남 전역의 학교 정문 앞에서 멈춰 있다.

그동안 학생인권은 물론이고 교권에 대해서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던 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제정이 마치 경상남도 교육 전체를 망칠 것처럼 각종 억측과 괴소문을 퍼뜨리며 어렵게 입법 추진 중인 이 조례의 제정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는 해방 이후 빈곤에서 성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국가적, 민족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산업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에 모든 구성원을 강력하게 결집시킬 수 있는 사회 규범과 지식 체계의 통일성을 요구했다. 국가의 교육 장악은 결국 학교를 사회적 통제 기관으로, 학생은 일거수일투족 통제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훈육하고 교육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교육시스템은 아이를 학생으로 규정해 보호의 대상으로 사회 윤리화시켰다. 당연히 학생은 미성숙한 존재이고, 권리보다는 의무에 대한 우선적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책임과 방종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을 미성숙이라는 허구 속에 가두어 둔 채 자치자유인권이라는 엄청난 권리를 던져주는 그 자체가 문제이고 반윤리적, 반국가적 행위라며 전근대적인 가치관을 교육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게 했다. 아이들은 권리를 주장하는 그 자체를 차단당한 상태에서 자신들을 미성숙한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순응하도록 강제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사회와 어른들이 규정해 놓은 보호와 미성숙한 존재라는 틀 안에서 가둬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권리의 주체로 당당히 서기를 원하며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갖기를 외쳤다. 입시 지옥이 주는 광풍에서 벗어나기 위한 외로운 몸짓에서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요구하는 당당하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우리 아이들의 자기 선언은 더 이상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전근대방식의 교육의 틀로 가두어 둘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학생 스스로 규정을 만들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끔 교육해야 한다. 처벌이 두려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규정은 스스로 지켜야 할 약속이라는 책임을 배워야 한다.

경남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종교계에서 논란을 삼고 있는 제16학생은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임신 또는 출산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은 성 정체성 등에서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며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의 주체가 바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실천하기 위한 근거다. 이 조항으로 경남의 교육현장에 잘못된 성 인권교육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은 절대 권력을 가장한 어른들의 전근대적인 가치관의 맹신에서 나온 판단의 오류다.

학생에게만 일방적이고 과도한 자율권을 줄 경우 교권의 추락과 함께 학교 운영의 자율성이 침해당할 것이라는 주장 또한 정치적 편 가르기에서 나온 발상이다. 교사가 말하면 무조건 순종했던 권위주의적 시대의 교권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조례안은 학생의 자유와 권리만을 내세워 학생의 권리 대 교사의 의무라는 이분법적 대립의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 구성원들의 상호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숨 쉬는 인권친화적인 교육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학생인권은 절차와 내용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의 권리를 의무와 책임이라는 가치관의 이름으로 덧씌워 논쟁의 영역에서 시비를 가리려고 하는 정치공학적 놀음은 어른들의 집착이요 고집이다. 학생인권은 당위성에 대한 신뢰와 확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되어 학생들이 학교 현장에서 온전히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여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자기 결정권을 통해 성장하는 교육 환경이 주어지는 그날을 위해 우리의 움직임은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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