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명언을 붙잡고 여전히 남해향교 유교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하고 남해의 관광발전을 위해 답을 찾아가고 있는 남해의 정신적지주가 한 분 있다. 20년 전 남해로 귀향하여 많은 직을 수행했고 현재 남해원로위원회 위원장‧남해서복회 회장‧(주)남해서복회 대표이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창종 회장이 바로 그분이다. 그는 지난 11월 10일부터 11일까지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열린, 2018남해서불과차 한중일(중한일)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한국서복단체연합회장으로 추대되어 남해관광방향을 더욱 더 심도 있게 모색하고 있다. 작년에는 남해향교 전교와 남해서복회장을 맡아오면서 이루었던 성과물들을 ‘남해바라기 86년간의 회고록’에 담아 펴내기도 했다. 떠나보낸 아내에게 바친다는 책을 읽으면서 그리움과 외로움 슬픔에 젖어들지만 주변에서 찾는 이들이 많아 그나마 해소된다는 박창종 회장을 만나 현재 추진하고 있는 서복공원과 서복촌의 관광사업 상황, 일상생활 등을 세세히 들여다보았다.  -편집자 주

▪ 회장님 건강하게 보여서 좋습니다. 오늘 아침은 드셨는지, 평소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아침은 아주 간단하게 먹지.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식사거리를 챙기는데 보통 달걀프라이, 빵과 우유로 소식(小食)하지. 점심은 친구들 아니면 후배들과 함께 먹고, 저녁도 지인들과 간단히 소주 한 잔 하면서 밖에서 해결하고 거의 8시에 귀가를 하는 편이지.
▪회장님 하면 ‘서복회 창립자’ 라는 말이 대명사처럼 따라다닌다. 서복회와의 인연을 말씀해주신다면 그리고 남해에서 어떤 일들을 해 오셨는지
-부산에서 생활하다 20년 전인 1998년 남해로 귀향했다. 읍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다가 하루는 몇 년 전에 전교였던 친구가 서복회를 조직하고 싶다고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 한 명도 사인을 안했는데 나는 고향을 위해 뭔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고향을 떠나 있었으니 서복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역사속의 그를 만나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3국이 국제학술대회를 열며 공통점을 공유하는 관계로까지 진전되었다. 나는 1998년부터 8년 동안 박씨 남해 대종친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1년 남해갯벌생태학교 운영위원장, 남해향교에서 3~4년 정도 감사를 했고 2014년부터 3년간 남해향교 전교를 역임했다. 2006년부터는 남해서복회 회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3년째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다. 

▪ 지난 국제학술대회 때 한국서복단체연합회장으로 추대된 것을 축하드린다. 어떤 형식을 거쳐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현재 우리나라에는 남해군 함양군 거제시 제주도에 각각 서복회가 조직되어 있고 앞으로 구례군 통영시 부산광역시(영도) 완도군에서도 서복회가 결성될 예정이다. 이번에 내가 회장으로 추대된 것은 아마도 제일 연장자여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또 현재 중국서복회 상무부회장인 ‘서복채’ 씨가 나와 의형제를 맺어 친분이 있는 것을 알고 나를 선택한 것 같다. 임기는 2년이니까 2020년 11월까지가 된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내가 살아있을 때까지 3국의 연결고리를 더욱 확고히 해서 서로의 우의를 다지고 싶다.

▪ 지난달 11월 10일~11일까지 유배문학관에서 ‘남해서불과차 한중일 국제학술대회’ 를 개최했을 때 3국의 요인들이 모인 걸로 알고 있다. 서복회 창립 이후 어떤 과정들을 밟아왔는지
-2006년 남해서복회(회장 박창종)를 창립했고 2007년 중국 낭야대 서복촌동 유적답사를 회원 20명이 다녀왔다. 2010년 경남서복회 창립(회장 박창종), 2012년 중국 서복문화 쌍샨국제대회 참가, 2013년 남해서불과차 출판, 2013년 서불과차 주변정비를 위한 타당성과 기본계획 수립의 성과가 있었다. 2014년 서불과차도 작가 김익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었고, 2015년 중국서복회 서복채 부회장이 서복조각상을 기증, 2015년 중국 연운항 서복연구회 주최로 서복문화와 일대일로의 합류점을 건설하고 국제학술포럼에 참가했다. 2016년 중일한(한중일) 서복문화 쌍샨세미나 참가, 2016년 남해서불과차 한중일(중한일)국제학술세미나 개최, 한중일(중한일)서복회원 합의로 10월 9일을 서복의 날로 제정, 2017년 일본 규슈 사가현 야메시 등 서복유적지 답사, 2017년 불로초길 걷기대회와 스토리텔링대회 개최, 2018년 남해서불과차 한중일(중한일)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 남해군민들이 그동안 잘 몰랐던 내용을 이번 기회에 자세히 알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지난 국제학술대회 때 개최국의 이름이 앞쪽에 있지 않고 가운데 있었다. 왜 중‧한‧일로 표기가 되었는지
-2년 전 국제학술 세미나 때 3국이 모여 중‧한‧일로 통일하기로 했다. 서복이 중국을 출발하여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갔으니까 어느 나라에서 개최되든 따지지 않고 순서대로 표기하자는 합의를 했다. 혹자는 이것에 대해 사대주의 발상에서 비롯된 처사라고 손가락질하며 비판을 하던데 그런 의미는 전혀 없다. 앞으로 그 부분에 대해 곡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참고로 현재 중국에는 서복회가 15개 있고 일본에는 19개가 있으며 회원은 각각 100여 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 앞으로 서복문화를 통한 남해군의 관광발전 전략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첫째 두모계곡을 중심으로 한 서복공원 조성을 모태로 하여 두모계곡 선형개량공사 동쪽 부지를 이용한 서복공원 조성, 전시공간 관광상품 관리실을 갖춘 소규모 기념관을 건립한다. 야외 조각공원과 문학비 등을 설치하고 약초재배장을 조성한다. 둘째 서복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활동에서는, 국제학술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스토리텔링대회와 불로초길 걷기대회 확대하고 한국인을 위한 서복분화학교 개설한다. 셋째 관광상품 개발에서는, 약초재배의 활성화와 약초를 가공한 건강식품 개발, 서복과 관련된 역사인물 서불과차 등을 이용한 캐릭터 상품 개발, 서복과 관련된 영화 드라마 연극 소설 등 제작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다. 서복공원은 1년 만에 완공할 수 있지만 서복촌은 4~5년 정도가 걸릴 것이다. 내년부터 사업에 들어간다면 앞으로 리조트를 만들고 숙박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중국 서복회에서 5만~10만평정도의 땅만 준비해 놓으면 중국에 있는 서복공원의 축소판을 지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인들은 조상관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앞장을 서기에 90%는 확신하고 있다. 일단 첫 삽을 뜨고 나면 그 뒤는 일사천리로 사업이 진행될 것이다.

▪ 요즘 혼자 지내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적적하지 않으신지
-내 형제는 없지만 사촌동생들이 모두 45명이다. 내가 87세이고 바로 밑에 동생이 80세이다. 부모님이 60대를 못 넘기고 돌아가셔서인지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를 동생들은 ‘집안 최고의 태양’이라고 부른다. 사촌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명절이면 부산에서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확실한 성격으로 인해 끊고 맺고를 잘하기에 할 말은 꼭 하고 만다. 대쪽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불의를 못 참는데 윗사람이 잘못하면 논리적으로 따져 바로 잡으려고 하고 아랫사람이 잘못하면 너그럽게 넘어가는 아량을 베푼다. 사촌도 그렇고 주변사람들도 모두 나에 대해 뒷말이 없는 것을 보면 이런 영향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덧붙이자면 내가 알고 지내는 남해군민이 5천 명 정도 되는데 그동안 신의를 철두철미하게 지켜왔기에 뒤돌아서서 ‘박창종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업을 세 번이나 실패했고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세 번을 낙선했지만 고향 사람과 친척에게 돈을 빌려 본 적이 없다. 고향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손을 내밀지 않아 아내가 약사를 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 남해를 위해 해 주고 싶은 애정 어린 말씀이 있다면
-우리 남해사람들은 부지런하여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외부인에 대해서는 많이 배타적이다. 새로 정착하려는 귀농귀촌인들이 빨리 적응하여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마을 주민들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외지에서 들어온 청년들은 어떤 일을 시도했을 때 빨리 포기하지 말고 3~4년은 끈기 있게 붙들고 참아내는 일들이 필요하다. 이 작물 심었다 접고 저 작물 심었다 접는 일은 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고 정주영 씨는 모든 것은 시작을 하고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고 했다.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해나가다 보면 결과는 생각 외로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말고 성공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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