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 명상디자인학교 교장

젊은 사람이 도시로 떠난 마을에는 빈집이 참 많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빈집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한때는 마을 전체가 생기가 남아돌 정도로 가구 수가 많았던 이야기는 이제 먼 추억이 되어버린 양 가슴에 남아돌 뿐입니다.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가끔 주인의 손때 묻은 그릇 몇 점이 돌담 위에 자태를 드리울 때면 허무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주인이 떠났어도 빈집을 꿋꿋이 지키는 돌담의 지성이 있기에 외롭지 만은 않습니다. 그들이 비록 무생물이기는 하나 보는 이를 감동케 하는 것은 어떠한 권위도 절대적 위엄도 없는 평범 속에서 그리움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주인을 만나고픈 기대와 가족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그리움입니다. 그래서인지 돌 하나마다 가족을 기다리는 애심(愛心)이 남아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는 듯합니다. 길면서도 짧은 오래됨과 새로움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며 한 해 두해 지나도 애타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서는 변함없이 기다림이라는 초연함을 유지하고 있기에 여전히 보는 이에게 친근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을 그들의 친근감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손으로 쌓아 올린 형형색색의 돌이 일정한 틀로 엮어진 것도 그렇고 아무런 붙임 도구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정감, 그리움, 추억을 담아내는 저력은 돌담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케 합니다. 큰 돌 아래에 작은 돌이 놓이고 틈틈이 벌어진 틈새에는 또한 그에 알맞은 새끼 돌들이 조화롭게 엮어지는 형상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대화 또한 초연함을 담아낸 겨울의 나무처럼 지혜롭습니다. “얘! 덩치 큰 모난 돌아, 너 크다고 너무 뽐내지 마라, 내가 비록 몸은 작아도 너를 지탱해주지 않으면 너는 머지않아 무너지고 말 걸. “아휴! 조그만 돌이 은혜도 모르고 큰 소리네. 너 비 오고 바람 부는 날 나의 몸으로 비바람을 막아주지 않으면 넌 아마 감기에 걸려도 수없이 걸렸을 걸.” 이때 돌담 전체를 이끄는 으뜸 돌이 빙그레 웃으며 “얘들아. 싸우지들 말아. 너희들 하나의 역할이 연결되어 있기에 전체 돌담의 위용이 살아나는 거야. 우리는 모두 이 돌담이 사라질 때까지 모두 함께 가야만 하는 운명인걸.” 이들의 맛깔스런 대화 속엔 우리는 모두 둘이 아니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심 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생물이 아니라 무생물인 그들이 엮어내는 담론에도 부분과 전체를 아우르는 질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크고 작고, 둥글고 네모나고 마름모꼴형이며, 어긋남과 기울어짐, 비뚤어짐과 모남일지라도 조화롭게 다듬어진 돌담이 그처럼 오묘하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다름을 인정하고 맞추어줌으로써 더욱 가치가 있고 품격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돌의 속성으로 보면 단단하고 차갑고 모가 나기에 친밀한 정서와는 거리가 먼 듯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다져진 석공의 솜씨처럼 담아낸 정겨움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합니다. 변형과 굴절, 깎음과 절단, 차가움과 딱딱함을 무릅쓰고 인간의 정서에 부합한 시공은 주인이 떠난 자리에도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오랜 벗처럼. 각기 다른 형형색색의 돌이 오묘하게 엮어진 돌담을 보면 나와 생각이 다른 차이를 한마음으로 포용하는 지혜 또한 전체의식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터득하게 됩니다. 의식 내부까지 흘러든 함께, 한마음이라는 독특한 상호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귀감 되는 정서입니다. 그래서 다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가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모가 나기 때문에 더욱 보듬어 안고 가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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