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찾아보는 토피어리는 물이끼와 같은 식물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르고 다듬어 보기 좋게 만드는 것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일컫는다고 돼있다. 필자가 이곳을 와보지 않았다면 토피어리는 사전에 설명되어 있는 그대로 물이끼 같은 재료로만 구현되는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됐을지도 모른다. 토피어리 세상인 ‘토피아랜드’는 토피어리를 어감이 좋은 토피아로 명명했기에 토피아 속에는 토피어리가 숨어있다.  
남해군 창선면 서부로 270-106(지족리 588-1)에 소재하고 있는 토피아랜드를 차량으로 편하게 오를 수도 있었지만 노랗게 익은 유자들이 놀다 가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 목적지를 500미터 앞둔 곳에 차를 주차하고 홀린 듯 걸어갔다. 노란색은 예로부터 황제의 색상으로 부와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나도 저곳에 참가하여 어울리고 싶다’라는 메시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그 색깔을 보는 순간 그런 마음이 동했다.     

토피어리로 태어난 꽝꽝나무 500주, 주목 동백나무 200주를 만나다
유자나무를 지나 토피어리들을 만나면서 석류가 터지듯 처음으로 터진 말은 “와아! 남해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였다. 잘잘한 푸른 잎을 단 꽝꽝나무 500주와 주목 동백나무 200주의 정돈된 작품들이 마치 나무신령으로 현신하여 일제히 반기는 것 같아 황송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토피어리들이 오천 평의 대지에서 형상에 맞는 이름표를 달고 시선을 끌었다. 하석진 대표가 38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던 중 고향에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틈틈이 심었던 나무가 이루어놓은 대걸작이었다. 한 작품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스케치와 응용 수정이 반복되어야 하기에 인내심이 없다면 그냥 자연적으로 자라는 나무로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물에 애착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실제에 근접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많은 공을 들였기에 유럽의 도형 토피어리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4계절 내내 365일 이 작품들에 대한 애정으로 살아가는 그는, 봄 순‧여름 순‧가을 순을 적당한 시기에 전정을 하며 관리를 해 주고 있다. 한 번 할 때마다 근 한 달이 소요되기에 일 년에 석 달은 이 일에 매달려야 한다. 이번 가을 순도 열흘 전부터 전정을 시작하여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700그루를 혼자 전정하며 관리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남해에 이런 명소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있었다. 

주목과 향나무 토피어리, 유럽의 토피어리 공원을 통해 모티브 얻다

토피어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충북 진천에 사는 한 할아버지가 주목과 향나무를 이용하여 몇 개의 토피어리를 만들어놓은 것을 보고 영감을 얻었고 구글을 통해 유럽 쪽의 몇 백 년 된 토피어리 공원을 통해 모티브를 얻었다. 그는 일단 나무를 심어 놓고 어느 정도 자라면 자신의 아이디어로 독창적인 토피어리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2004년 부모님이 연로하여 농사를 짓지 못하던 땅에 꽝꽝나무와 주목을 심었고 유자나무와 동백나무는 그 나무들보다 훨씬 앞선 1994년에 심었다.
장남인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을 자주 찾았고 언젠가 돌아와 살 곳이라는 생각을  놓지 않고 있다가 3년 6개월 전 퇴직을 하고 본격적으로 토목을 정리하고 정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2년 동안 힘들어하는 남편을 지켜 본 아내는 연금으로 편히 살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퉁을 주었지만 1년 6개월 전인 2017년 5월 마침내 기다리던 개장을 했다. 이런 모습이 되기까지의 전 과정이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어 그동안의 노고를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 같았다. 하 대표는 토피어리를 공부하다보니 애들에게 상상력을 키워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 동물과 사물에 대한 시야를 넓혀나갔다. 꽝꽝나무 여덟 그루를 붙여 터를 잡은 곳에서는 ‘기차 타고 출발’ 한 대가 서 있다. 굳이 팻말의 제목을 읽지 않아도 기차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형체가 선명했다. 곳곳에서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특히 주목을 이용하여 춤추는 사람들과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고난이도의 작품들임을 알 수 있었다. 12간지의 동물도 그의 손끝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태어나 감동을 자아냈다. 나무를 보면 어떤 형상으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속 그림까지 미리 그려지는 경지에까지 오른 그의 손은 필시 미다스의 손이 아닐까싶다. 
국내 최초 토피어리 테마정원인 남해토피아랜드는 14년 전에 심었던 나무들이 온갖 형상으로 단장을 하고 있어 토피어리 별천지라는 말만으로는 왠지 부족할 듯했다. 토피어리 테마정원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주인공 캐릭터가 모여 있고 어머니나무와 조각상‧공작가족‧12간지‧각종동물‧오리가족‧공룡가족‧주목토피아랜드 인물중심‧바다동물‧고려청자‧동물모양‧휴식처‧대칭정원 등이 주목나무와 꽝꽝나무를 통해 주인의 손길로 새 이름표를 달고 발길을 붙잡는다. 특히 휴식처 옆에 있는 큰 얼굴의 형상은 소설 속에 나오는 큰 바위 얼굴의 이목구비뿐만 아니라 표정까지도 흡사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린 아이처럼 와!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에서 ‘날아가는 나비’팻말을 만났다. 정말 곧 비상을 할 것처럼 리얼하여 ‘멈춘 나비’팻말로 정정을 해주고 싶었다. 정원사 자격증도 없고 미적 예술적 감각도 없다는 그가 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것이 계속 믿기지 않아 ‘어느 날 신의 한 마디 명령으로 불쑥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억지 상상을 해보았다. 

편백나무숲에는 그네와 해먹 설치, 여유롭고 편안한 힐링 공간

오천 평의 토피어리 정원 위로 4천 평의 임야에서는 편백나무와 단풍나무가 쑥쑥 자라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가 50년 전 미래를 내다보고 심은 덕분에 지금은 짙은 숲을 이루고 있다. 쭉쭉 뻗은 편백나무 사이에 설치된 해먹‧그네‧의자‧평상 등은 보는 그 자체로 여유롭고 힐링이 된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자른 몇 그루의 나무밑동도 그냥 두지 않고 불상‧여인상‧새 등의 조각상으로 태어나게 했다. 오르는 길에도 사람을 배려하는 인정이 곳곳에 묻어있어 이 정원의 주인은 손을 잡아보지 않아도 아주 마음이 따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인터넷에 ‘남해에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면 지역 언론에는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토피아랜드가 뜬다. KBS6시내고향‧숨터‧대전.JTB.화전기행 등에 방영이 된 영향일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곳에 와보고는 꽃이 없다고 섭섭해 한다. 유럽인은 오래된 나무만 봐도 놀라워하고 감탄을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 속에는 항상 꽃이 자리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앞으로 유자나무 주변에 꽃을 심든지 베어내고 심든지 꽃을 심을 생각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일에 대한 부담보다 의지만 보였다.
 
소설 속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아이들 앞에서 인자한 할아버지 되다 
신흥해바리마을체험과 연계하여 이곳 토피아랜드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우리나라 15개 민간정원 중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남해토피아랜드에는 고향을 발전시키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필자가 하 대표를 만나러 간 날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인솔교사와 함께 체험학습을 왔었다. 하 대표가 아이들 앞에서 전정을 하는 법을 가르치며 “한 번 해볼 학생” 하니까 너도나도 손을 든다. “돈 벌이 하려고 많은 돈을 이곳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그는, 아이들 앞에서 인자한 할아버지로 돌아갔다.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도 재미있게 전하는 이 정원의 주인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큰 바위 얼굴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막대한 부나 사회적 지위보다 지속적인 성찰이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드높인다는 것을 보여준 소설 속의 큰 바위 얼굴이 바로 남해토피아랜드의 하석진 대표라는 생각이 깊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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