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강선 곤지암역 1번 출구에서 5분쯤 걸어오면 숲속에 ‘진짜 소머리 국밥’이란 큰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한 구일가든이다.

1992년에 오픈하여 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곤지암 맛집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벌써 60m 정도 손님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최문자 사장을 찾았더니 2층에서 내려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게가 엄청 바쁜데 왜 도와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리 바빠도 아래층에 가질 않는다. 26년 동안 터전을 마련해 주었으니 이젠 쉬어야지” 하면서 미소만 지었다.
구일가든의 주인 박구일·최문자 부부는 서면 장항마을 출신이다. 최문자(74·남해여중 4회) 사장은 고(故) 최선홍·송우선 부모님의 무남독녀다. 남편 박구일(77·남해농고 9회)씨는 같은 동네 고(故) 박남규·곽주녀 부모님의 2남3녀 중 장남이다.
부부의 장남 박현씨는 4개 국어를 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지만 부모님을 도와 현재 구일가든 지배인을 맡고 있다. 차남 박현국씨는 자영업을 하고 있고, 딸 박현숙씨는 구일가든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무척 바쁜데도 자녀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을 보고 부모를 닮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소머리는 수입이 안 돼 국내산으로 끓일 수밖에 없다. 구일가든은 26년째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제주도에서도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맛으로 소문나 있다. 남해인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맛집이다. 이 때문에 아침부터 오후 서너시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영업은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다. 매달 둘째, 넷째 화요일 오후와 명절 전날과 명절 당일만 빼고는 연중무휴 영업을 한다. 4개의 방과 홀에는 120명의 손님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고, 주차공간도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다. 모든 메뉴는 포장도 가능하다. 
최문자 사장이 자신있게 내세우는 구일가든 맛의 비결은 지하수와 좋은 고기다. 최 사장은 “우리집 지하수는 1급수로 판정돼 물맛이 좋다. 고기도 신선한 특등급 소머리만 사용해 구수한 맛을 내기 때문에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맛을 보기 위해 손님들은 줄을 서고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길 마다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하루에 1,000 그릇 이상을 팔고, 평일에도 보통 500그릇 이상 판다. 맛에 더해지는 게 바로 친절하고 정성스러운 서비스다. 이 정도로 투자를 하고 정성을 쏟으니 단골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나 미국 LA에서도 교민들이 체인점을 내어달라고 많은 요청이 들어오지만 거절했다.
최 사장이 기자에게 맛보이겠다며 국밥 한 그릇을 2층으로 가져왔다. 국물은 뽀얗고, 많은 살코기는 부드럽고, 껍질 부분은 쫄깃쫄깃 했다. 맛과 향, 식감, 먹음직스런 모양까지 흠잡을 구석이 없다. 맛있어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었다. 

 

최 사장은 26년 전인 1992년, 남편이 장사를 한번 해보라고 권유해 구일가든을 열었다. 요즘 경강선 곤지암 전철역이 생겨 더욱 손님이 많아졌다. 13명의 직원이 바쁘게 움직여도 항상 오후 서너 시까지 기다리는 줄이 60m 이상 늘어선다. 
남편 박구일 향우는 경기도에 정착해 4년 정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임하고 땅을 구입해 벽돌장사를 했다. 그 당시는 새마을운동으로 벽돌이 많이 필요할 때였다. 50년을 살아온 곤지암에 경로당도 건립해 주었고 방범대 등 봉사활동도 많이 했다. 이제는 곤지암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고, 봉사활동으로 감사패와 공로패도 받았지만 남에게 내세우지 않는 근면 성실한 분이다. 부부는 자연을 사랑해서 나무 가꾸기를 즐긴다. 그래서 집에는 큰 나무들이 많다. 부부는 요즘 구일가든은 자녀들에게 맡겨두고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즐긴다.
박 향우가 낯선 곤지암에 정착해 바쁜 와중에도 봉사활동을 이어온 것은 사연이 있다. 공군에서 군 생활을 할 때 군용기 바람막이에 빨려들어가 죽었을 뻔 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나 ‘하늘의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기적을 줬으니 자신은 타인에게 더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본토박이들도 인정하는 곤지암 터줏대감이 된 배경에 깔려 있다. 
남해는 자주 가느냐고 물었더니 “동생들과 친척이 있기에 매번 다녀온다”고 했다. 인생에서 보람이었던 일은 단연 자식농사를 꼽는다. 모두 공부도 잘했고, 현재 근면 성실하게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자식들이 모두  잘 성장해 주어서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 살아오면서 보람 있었던 일은?
“한때는 무척 어려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남해인의 기질과 끈기로 버텨왔다. 자식들이 너무도 착하게 자라주었고, 공부도 열심히 하여 모범생이었다. 지금까지 부모 마음을 한 번도 아프게 한 적이 없는 아들 딸들이 너무 대견스러우며 제일 큰 행복이다”고 말했다.
▲자녀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줬나?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항상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배려다, 고마운 분들에겐 감사할 줄 알고, 힘이 없는 분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고향 남해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길 바라나? 
“아름다운 고향 남해군이 인구가 줄어든다니 마음 아프다. 많은 것이 빠르게 발전하고 변하는 요즘이지만 고향 남해군만은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작지만 평화로운 남해를 많이 찾아와 자연을 느끼고, 그 속에서 위로와 진정한 ‘쉼’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향우들과 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해인들은 뚝심과 저력이 있다. 남해군의 좋은 기운을 받아 모두 각자의 자리에 하루하루 성실하게 지내며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에 큰 몫을 해 주셨으면 한다.”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온화한 부부의 배웅을 받고 나서면서 기자는 성실과 진심이 주는 힘을 확인했다는 마음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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