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읍 오동마을로 귀향 후 가족, 집단상담, 체험농장치유센터를 열고자 구상하고 있는 류정자 박사.
남해읍 오동마을로 귀향 후 가족, 집단상담, 체험농장치유센터를 열고자 구상하고 있는 류정자 박사.

 

남해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동반자로 활동

보물섬행복교육지구 마을학교 힐링 예술타임 (치유)학교운영

동생 류성아 씨도 귀향 교육농장 지정 보물섬다육식물원가꿔

본지에 이럴 땐 이렇게!’ 심리상담 사례 주제의 칼럼 연재키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류정자 씨를 소개하려니 자꾸만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가 떠오른다. 류정자 씨는 우리나이로 예순여덟(1951년생), 서면 정포마을이 고향이다. 인터뷰를 위해 오동마을에 있는 류 씨의 농막을 찾아간 기자는 인터뷰 내내 마치 큰누님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는 구절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을 것이다.

류 씨는 지난 2000년 경성대학교대학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 대구대학교 재활과학대학 겸임 교수, 경성대학교 교육심리학과 겸임 교수, 숭실대학교 기독교교육심리학과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오다 지난 20159월 정년을 맞아 은퇴했다.

류 씨는 강단에서 은퇴하자마자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완전한 귀향을 결행했다. 오랫동안의 귀향준비란 사실상 남편 최병기 씨(71)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중견기업의 임원을 지낸 남편 최 씨는 종합병원이 먼 농촌생활을 마뜩찮아 했다. 남편을 위해 도시의 아파트는 남겨두었단다. 낚시를 즐겨하는 남편은 남해의 바다보단 부산의 바다를 더 좋아한단다.

류 씨는 왜 굳이 오동마을을 선택했을까? 류 씨는 여기에 의도치 않은 시절 운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류정자 박사
류정자 박사

 

오동마을이라고 하면 흔히 저 위쪽 본 마을을 생각하기 쉬운데 류 씨가 자리 잡은 터는 오동저수지 오른편의 작은 마을의 안쪽이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이 마을 안길을 따라가면 대동농기계 남해대리점 옆을 흐르는 심천천()으로 이어지는 작은 샛길이 나 있다. 이 샛길이 나게 된 연유도 류 씨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자기의 땅을 희사했기 때문이다. 류 씨의 농막을 찾기 위해서는 대동농기계 남해대리점 옆 심천천을 따라 올라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이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경남도농업기술원이 지정한 교육농장이라는 팻말을 단 보물섬다육식물원을 만날 수 있다. 이 다육식물원 경계를 따라 올라가면 강진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오동마을 초입의 언덕배기에 이르는데 이 일대의 땅 4천여 평이 류 씨의 농장이다. 이 땅은 지난 88년경 류 씨 선친의 친척이 우연히 소개해서 사게 됐다고 한다. 언젠가는 돌아올 고향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매입해두었던 것인데 지금에 와서 보니 천금을 얻은 것과 같은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류 씨는 이곳에 아직 주택으로 쓸 건축물을 짓지 않고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농막만을 설치해놓고 있다. 왜 류 씨는 쉬이 건축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바로 그 이유 속에 류 씨가 앞으로 펼쳐나갈 큰 그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류 씨를 단순히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대학교수였다고만 소개할 수 없다. 류 씨는 심리적 재활치료 분야와 심리상담 분야의 국제공인 슈퍼바이저다. ‘슈퍼바이저란 직함은 함부로 붙일 수 없다. 한 분야의 일 전반을 통할할 수 있는 최고도의 전문성을 인정받을만한 학업과 경력을 쌓은 전문가에게만 붙일 수 있는 직함이다. 슈퍼바이저라는 직함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직종에서는 설명이 더 필요치 않은 최고의 전문가로 통용된다. 쉽게 설명하면 재활치료와 심리상담 분야에서 일할 전문가들이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 취득과정을 지도하고 관장하는 현장감독관인 것이다.

류 씨의 이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솔심리상담연구원 원장, 부산미술치료연구소 소장, 부산가정법원 가사재판 상담위원, 국제공인 재활치료학회 슈퍼바이저, 국제공인 이마고 부부치료사,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한국미술치료학회 수련감독, 한국청소년상담학회 수련감독, 한국가족상담협회 가족상담전문가 수련감독, 발달진단평가전문가, 평생교육사 등이다.

이러한 경력은 교육심리학 박사로서 일뿐만 아니라 정신보건상담사 1, 집단상담 1급 전문가 자격증은 물론 일본, 인도, 미국, 등 국제공인 수련과정을 쌓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류 씨는 귀향하자마자 남해 오동마을에서 경상남도 건강발달지원센터 발달재활 영역의 장애아 심리적 재활을 시작으로 남해장애인종합복지관의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류 씨는 일본 수련과정에서 사람의 심리를 긍정적으로 바꿔내어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임상동작법과정을 수련했다고 한다. 특히 주의집중결함 및 과잉행동장애(ADHD), 또는 뇌성마비의 경우 아이의 장애가 완전히 고착되기 이전에 심리적 치료기법을 통해 뇌의 역할을 바꿔줌으로써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심리적 치료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발달재활 장애아치유센터 건물이 없는 한계 때문에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이제는 찾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류 씨는 남해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청소년동반자가 되어 위기청소년들을 돌보는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해교육지원청과 남해군이 함께 펼치는 행복교육지구사업의 하나인 생활터전 마을학교 참여프로그램으로 힐링 예술타임 (치유)학교를 류 씨의 농장 안에서 동생 류성아 씨 부부가 운영하는 보물섬다육식물원에서 열고 있다.

이처럼 류 씨가 이곳에서 해나가고자 하는 일은 바로 심리적 치료와 치유센터를 겸한 체험농장을 만들어 아픈 사람,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고향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된 삶은 없을 터이다.

류 씨가 이곳에 아직 건축물을 짓지 않고 있는 이유는 한 번 지으면 쉽게 고칠 수 없을 것이므로 오랜 시간 검토에 검토를 거쳐 제대로 된 치유센터를 짓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꼭 필요한 공간배치구조를 그려내는 데는 이제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류 씨는 이미 이곳에 마늘, 시금치, 고구마, 백도라지, 약초 등 60여종의 채소류와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으며 무화과, 체리, 대추, , 키위, , 사과, 자두, 비파, 사탕나무 등을 심어 열매를 따고 있다.

류 씨는 귀향을 하면서 곧바로 임업후계자 교육을 받아 왔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실시하는 버섯재배교육도 받았으며, 효소공부도 해서 전통김치제조사 자격증도 땄다. 20대 말에 조리사자격증(당시엔 한식, 양식, 제과 제 빵, 복어, 일식, 중식 통합자격증)을 따두었던 것도 은퇴 후의 삶을 준비했던 일이었다.

류 씨가 이렇게 끊임없이 공부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영향이다. 류 씨의 어머니 정연옥 여사는 부산의 아들네(류지태·64)에 산다. 올해 98세의 연세에도 연산동 노인정에 나가 시조창, 서예 등을 하신다고. 읍 아산마을에서 정포마을로 시집 온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배는 고파도 기죽지는 않아야 한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고 훈육했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 덕에 류 씨의 언니 류정순 씨(70)는 경성대학교 의상학과 겸임교수, 대한민국한복명장이 되었다고 한다.

둘째 딸인 류정자 씨도 예순여덟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보였다. 류 씨는 “98세의 나이에도 시조창 봉사를 하러다시시는 어머니의 건강 체질을 물려받아서 나도 이렇게 건강하다고 생각 한다면서 웃었다.

본지는 류정자 씨가 심리상담 사례를 주제로 쓰는 칼럼을 연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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