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남해군향우회 고문이자 향명회 고문인 이석홍(77) 향우가 자신의 일대기를 기술해 보내왔다. 개인의 삶의 기록이 곧 우리 역사 구석구석의 기록임을 생각하며 소중하게 신문에 싣는다. 

이석홍 고문 약력
서라벌고교 졸업. 중앙대 재학 중 웅변, 마라톤, 차력, 태권도 등 심사위원. 역삼, 대치, 도곡, 성남본관 태권도 심사위원(장). 동일학원 기획실장, 부원장. 세원건설 부사장 대표이사. 세명안전시스템(주) 회장. 서라벌고 상임이사, 동창회장. 건강백세 이시영 박사 휠리언스 건강홍보대사. KBS 방송논설 공로패. KBS 문학부분(시) 우수상(10여편). 세종대왕문화사업 보존위원. 국가원공로패, 이란왕실 KRUN.IND.CO 취업자일동 감사패, 정계, 학계, 기술기능계열 지도자들과 천분교류 등

▲격동의 70여년을 넘으면서 

내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이 되고 상주초등학교 재학 중 6.25가 일어나 우리 고향에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아버님의 병환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상급학교 진학을 못하는 형편이 되자 나는 괴로웠다. 혼자라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15세 어린 소년이 사회라는 넓은 물에 뛰어들었다. 격랑의 시대, 서울에서 오직 한 몸 생존을 위해 일하고 고학하며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설계했다. 오직 배워야한다는 일념으로 도전하면서지나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꿈을 향한 배움의 몸부림

이 넓은 서울에서 홀로 살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순간을 지내면서도 ‘도둑질, 깡패, 마약’ 이것만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가훈 ‘정직하고 성실히 살자’를 항상 되새겼다. 
추운 겨울 쪽방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턱을 부딪치며 오금을 못 펴면서도 책장을 넘기고 학교를 다녔다. 배가 고파 한영사전을 풀빵 집에 맡기고 붕어빵 몇 개로 허기를 달랬다. 
신문을 돌리고 향수원료를 팔고 구두를 닦으면서 학비를 조달하며 보낸 학창시절이 나의 삶의 지혜와 용기를 갖게 하였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기말시험을 보다 퇴실 당했을 때 한강에서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도 오직 공부를 해야 한다는 집념으로 1960년대 법학계 권위자요, 교육자인 황산덕 교수(전 문교부장관)의 법의 정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며 소설가인 김동리, 박두진, 손소희, 이범선 교수, 시인 박목월, 서정주, 조지훈, 함동선 교수, 음악의 이흥열, 김재전, 김대협, 무용계 김백봉, 엄망초, 파조 최규남 교수, 미술계 박선영, 장이석, 최영림, 정정열 교수, 공예과 백태원, 김재석 교수를 비롯한 중앙대 정성효 처장(대학동창), 연예계 이정길, 임동진(고교동창), 임채무, 현석, 김흥국 등 수많은 스승과 동기, 후배들을 만나고 종교계는 강원용 목사, 노기남 대주교, 청담대종사, 영암대선사, 법인박사, 동국대 총장 이지관 스님, 법정스님, 유교와 도교,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 종교와 샤머니즘, 토템이즘, 종교와 인간, 본질과 허상, 진리의 본질, 인간의 심성학, 초월적 사유(형이상학적) 등을 연구하면서 많은 분들께 자양분과 은혜를 받은 것을 감사드리고 있다.

▲젊은 시절 도전과 비약

행정은 잘 진행되고 정확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소신으로 중앙행정, 지방행정, 경찰행정, 세무행정, 소방방재훈련 및 집행에 관한 관리 영역을 연구했다.
군 복무 시절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 후 수도경비사령부 창설팀으로 활동했다. 6.3사태로 격렬한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데모에 중앙청과 청와대 사수 명령을 받고 광화문 사거리를 넘지 못하도록 폭동 진압하던 때도 있었다. 
아나운서가 되어 사회를 정화시켜보겠다고 전문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모신문사 취재부 기자로 정부 주요 부서를 출입하던 젊은 시절도 있었다.

 

1970~198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 내세운 산업화와 공업화의 가치 아래 주택개량 보급(새마을 운동), 고속도로, 중공업단지, 조선산업단지, 수출단지 등에 필요한 기술인력 확보가 시급할 때쯤 기술인력 전문 양성 의뢰를 받아 운전학원, 자동차 정비, 중장비 건설(도쟈, 스크레파, 포크피프터, 템프), 조선업에 필요한 용접(산소, 전기, 알곤, 수중용접, 특수용접) 등 국가기술 인재양성 수급계획에 의해 서울공대 김응서 교수, 아주공대 김형섭 박사, 한양대 공대 조진호 교수, 이원평 교수, 김기성 교수, 이영우 교수, 엄갑호 교수, 서울공고, 용산공고, 한양공고, 유한공고, 신진공고 기계과, 전기과, 자동차과 과장급 선생님들, 신관현, 김국진, 김광수, 이창연, 차대재, 육혁수, 이용우 지도선생 등으로 자동차계열 약 1만7000여명, 정비, 용접, 판금, 조선산업, 건설업계, 중장비 등 해외이민, 기술이민, 중동 기술자 파견 등 약 1만5000여명(당시 MBC 방송국에서 기술인력 산실을 찾아서 60분간 방영되었다.) 배출로 국가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시기도 있었다.
2000년 5월 당시 고등학교 동창인 오영조 지소장(수산청 사천 삼천포 통영 남해)이 관할 지소장으로 근무할 때 고향 상주에 가보니 어선, 선박, 유람선 등 어업종사자들이 선박검사를 통영까지 선박을 몰고 가야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오영조 친구에게 능률적 관리와 기름절약, 시간절약, 선도적 운영을 위해 남해 어업인들에게 출장검사를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해 즉석에서 승낙해 남해 어업인들에게 혜택을 주었으나 요즘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사회인으로 사회 도전
재경상주면향우회 8대 회장으로 서울대 운동장에서 취임한 후 얼마 안 돼 황태규 박사가 “21세기 생존전략, 국토 이노베이션 시대가 열린다”며 김형남 교수와 책을 기증한다며 당시 김두관 행자부장관 추천서를 받았다며 가져와서 목차를 검토해보니 국가 균형발전과 지역사회 발전전략, 지방자치, 지방분권, 문화적 기본 확보와 인프라 축적 등을 논하는 중 황 박사가 대통령 직속 정부 정책기관 요직으로 옮겼다고 하면서 명함을 주기에 그때 논한 정책과 방향중 도일도의 개념을 넘어 산업, 공업, 관광지역 등 대선거구제와 맞물려 지역균형발전 기능을 살려 정책 입안을 해보겠다는 내용과 특히 내 고향 남해지역과 문화의 토대를 세우며 새로운 가치 창출로 남해 하동 통영 진주로 연결, 지리산 영역으로 윈윈하는 남해안 시대를 만드는 원년 계기를 만들어 보자고 하던 일도 있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는 단순한 경제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주민, 기업, 특산물, 자연환경, 첨단 테크놀로지, 지역상징물, 관광 인프라, 역사와 전통, 지역문화 등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아이디어를 결집해 필요한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 “자네는 위대한 사람이네”

아버님 병환으로 갑자기 가세가 어려워져 우리 형제 7남매가 상급학교 진학을 못하게 되면서 부모님의 부담감과 형제들의 좌절감을 생각해서 둘째인 내가 셋째부터 여섯째까지 서울로 올라오게 하여 공부시키고 기술 가르치고 운동시켜 자생력을 키워줬다. 
그들도 어느덧 사업가도 되고 구의원 4선에 의장 2번 하는 동생이 있는가 하면 경찰간부 총경까지 배출하는 든든한 가문이 되었다. 조카들도 더욱 잘되고 있다. 
부모님께서 생전에 나의 두 손을 부여잡고 “고마운 사람. 자네는 위대한 사람이라”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2남 1녀를 두었다. 첫째아들 남주는 ROTC 111 학군단 명예위원장, 국방부 인사복지국 복지기금 담당관, 중앙대 박사과정, 국가재정회계기관에서 일한다. 장녀 지연은 고려대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거쳐 삼성전자 차장으로 일하다 영국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거쳐 현재 국제기구에서 나라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둘째아들 남헌은 서울대 석사과정을 거쳐 태평양제약, 대웅제약 사업본부장, BNS 창업사장, 현재 코스닥 상장법인 한스바이오메드(주) 사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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