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窟)이 있던 구릉(丘陵)을 향해 머리를 둔다’ 는 뜻으로, 자신의 근본을 잃지 않거나 죽어서라도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아스라이 잊혀져가는 그리운 고향 풍경, 나를 낳아주고 오늘날 나를 있게 해준 고향땅, 고향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다정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정감(情感)을 준다.
추석 ․ 설 명절만 되면 지옥과 같은 교통난을 감수하면서 그토록 끈질기게 고향을 찾아간다.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워 주었던 곳, 철마다 갈아입던 뒷동산, 흐르는 시냇물과 자연의 아름다움과 벗하며 살았던 곳, 소꿉친구(동무)들의 그리움이 길목마다 묻어나는 곳, 고향에 대한 정(情)과 그리움은 고향을 떠난 이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다. 한 낱 동물도 마찬가지이며 그래서 ‘수구초심’ 이란 성어가 생겨났다.
대부부의 사람들은 젊었을 때 대도시에서 살다가 죽으면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고향땅에 묏자리를 준비하기도 한다. 
중국 전국시대 강태공(姜太公:태공망太公望)은 제(齊)나라의 영구(營丘:제나라초기수도)에 봉(封)해져 5대에 걸쳐 살았으나, 고국(故國)인 주(周)나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군자(君子)가 말하기를 ‘음악은 그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바를 즐기고, 예(禮)는 그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여우가 죽을 때 언덕으로 머리를 향한다’고 하며, 그것이 바로 ‘인(仁)이’ 라고 하였다.
강태공이 말하기를 ‘자신을 운(運)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 말라, 내가 수십 년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마저도 떠나가 버렸다. 검은 머리 백발이 되고서야 은(殷)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동안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그 인내의 결실이었던 단한번의 기회로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고 했다. 
특히 강태공은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는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초(楚)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屈原)은 ‘새는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여우는 죽으면  머리를  언덕으로 향한다’ 고 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고향은 바로 그들의 희망이다. 맨손으로 태어났기에 가슴에 무언가를 품어야 행복하게 된다. 낯익은 내 부모 내형제 일가친척, 친구들 언제 또 어디서 찾을 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되는 실개천이 휘돌아 지나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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