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보니 이틀 뒤의 날짜에 까만 매직으로 한 눈에 알아 볼 정도의 대형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뭔가 싶어 달력 곁에 다가가 보았더니 동그라미 그려진 그 날은 제사가 있는 날이었죠. 그래서 이런저런 짐을 꾸려서 가족 모두가 모처럼 할머니 댁으로향했습니다. 이렇게 가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각자의 일들을 하느라 뵙지는 못해서 명절이나 제삿날 이 정도로 만나
곤 합니다. 오랜만에 친척들도 모이고 기분도 너무 좋은 날이었죠.

마을을 들어서자 마자 서지마당 앞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우리들을 맞아 주셨습니다. 정겹고 구수한 사투리가 쏟아지는 시골사람들의 인심, 여전했습니다.

각박한 세상속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고향의 정겨움 이랄까, 너무 가까워 고향길
이라고 하면 좀 우습지만 어쨌든 너무너무 기분 좋은 고향 길 이었습니다. 마을을 들어
서서 할머니댁을 향했습니다.

다들 일찍들이나 챙겨 나섰나 봅니다. 가까이 사는 저희 보다 더 빨리 도착해서 들어가
니까 아주 반갑게 맞아 주더라구요. 그 누구보다도 할머니께서는 더욱 반갑게 맞이해 주
셨죠. 항상 할머니께선 우리가 오는 날이면 인사보다는 매서운 손바닥이 더 먼저 올라
오십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어찌 한번 안와보냐고 타박을 주시면서 볼을 부비면서 깨무세요. 이건 할머니만의 애정표현이기도 하죠. 어릴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매번 넘어가곤 했는데 커 가면서 이젠 어디서도 느낄수 없는 사랑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간단하게 반가운 안사를 하고선 서로 그동안의 안부도 전하고 여유롭게 대화도 나눴습니다.하지만 그 여유로운 대화 속에서도 아직은 서로가 순조롭게 대화하기엔 역부족인 이들이있었죠. 친척들은 거의 같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한 번 말을 했다 하면 그만큼 술술 대화도 잘 이어지고 점백원짜리 동양화 한 판에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그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는 적이 허다 했습니다.

저희 집안에선 저희 엄마와 작은엄마와 둘 사이에서의 의사소통이 안되는 경우가 종종 드러 있어요. 그렇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이 생기고 그동안 생긴 에피소드를 생각 해보면 좀 과장아닌 가장이지만 책으로도 한권 나왔을상싶어요.

책으로 낸다면 아주 배꼽빠지는 베스트셀러감이 될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드네요. 친가에 함께 모이게되면 일담당은 두말할 것 없이 며느리들의 몫이죠.

엄마와 작은엄마는 형님 동서지간이다 보니 일을 하다보면 거의 하루를 같이 보내는데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부딪쳐야 되고 그러다 보니 말하는 횟수도 많고 그렇잖아요.

말하는 횟수만큼이나 서로가 의사소통이 안되는 경우가 정말 많죠....별것 아니지만 우리
는 다 알고 있지만 도시 사람들에겐 새로울지 모르는 사소한 사투리가 빚어낸 이 작은 일들 하나하나가 종종 웃음을 주는 일도 많았습니다. 작은 엄마께서는 객지에서 시골로시집을 오셔서 여기서 하는 말은 거의 못알아 들으세요. 제사음식 준비를 하다가 작은엄마께 무언가를 시키셨나 봅니다. 가만히있을 작은엄마가 아니죠. 뭐든 척척 초고속스피드로 움직이시니깐요.

엄마 : 동서, 이거 다 한테 담기에는 모지래지 싶다.  즈 가서 다라이 하나 더 들고온나.
작은엄마 : 다라이요?....... 아 양푼같은 거 말하시는거죠? 네. 알겠습니다.
엄마 : 그래다라이, 즈즈즈게 가면 있을끼다, 너무 큰거 말고 째깨난거 하나면 되긋다.
       퍼뜩 들고온나이
작은엄마 : (당황해하며) 즈? 즈게요?

웬일로 한번에 알아 들으셨는지 어디론가 향해서 초고속스피드로 총총총 가시는 것 이
었습니다. 엄마께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절하게 다시 한번 더 정확하게 어디있는지
가르켜주셨죠. 바삐 걸어가는 작은엄마에게 했던 엄마의 한마디는 이랬습니다.

엄마 : (한마디로 압축) ‘정지에!??

그런데 갑자기 작은엄마의  빠른걸음은 순식간에 멈춰섰고, 그 상황은 모두 정지 상태
였습니다. 한참 시끌벅적 하더니 갑자기 조용해져서 봤더니 작은엄마께선 아무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물끄러미 엄마를 쳐다보면서 무언가를 요구하듯 가만히 서 계시는 것
이었습니다. 저는 왜 그러나 싶었습니다.

대충은 짐작을 하고 있었죠.아니나 다를까엄마도 이상하다는 듯 작은엄마께 말을 하셨죠.

엄마 : 얼레얼레, 동서! 가꼬오라캣드만 그 가만히 서서 뫄노?
작은엄마 : 네? 형님이 정지하라하셔서 또 뭐 다른거 시킬줄 알고 그랬는데..잘못들었나..
엄마 : (박장대소하시며) 아이고 내가 못살끼다,.. 하하하. 내가 이럴줄알았으, 조용히 넘
      어가는 날이 없다. 안글나, 니도 그케 생각하제, 글체? 하하하.
작은엄마 : (당황한듯 웃으며)하하, 정지해라해서 섯을뿐인데 왜 그러시지....

그랬던것이었습니다. 또 작은엄마와 엄마사이에 의사소통이 안되어서 이런일이 또 일어 난것이었습니다. 정지란 말은 STOP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남해사투리로 부엌을 뜻하는 말인데.아이구 작은엄마께서는 ‘정지에??이말을 ??정지해??멈추라는 뜻으로 알아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랍니까. 엄마나 나나 작은 엄마를 쳐다보며 계속 웃음을 짓고 있으니 또 무슨 실수를 했냐는 식으로 작은엄마의 표정은 불그락 불그락 닳아올라 아주 심각했습니다.

저는 옆에 지켜보고는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차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가끔은 처음 들어 보는 사투리에 당황스러운 일도 많이 있었었죠. 엄마께서는 오늘 새로운 단어‘정지??
라는 뜻을 작은엄마께 가르키셨습니다

그리고 작은엄마께서는 오늘의 새로운 그 단어를 머릿속에 꼭꼭 숙지 하셨구요..작은 엄마께서는 시골에 내려오실 때 마다 많은 사투리들을 배워서 가세요. 아마 이제 시골에 오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이실거에요.

혼자 객지사람이라 다들 둘러앉아 즐겁게 대화를 하면 그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참 오래걸리세요. 이해할라고 하면 대화는 술술 흘러 가버리거든요.

어쩔수 없이 이해를 못해도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거리신답니다...경상도 말이 좀 빠릅니까 억양하며, 긴긴 문장인것도 한단어나 한줄이상으로 압축해버리는 최고난도의 압축성하며..사투리 못 알아들으면 좀 어때요.

서로 지역차이 때문에 그런건데,. 다들 도와가면서 이해하면서 그렇게하나하나 배워 가는 거죠. 그렇지만 작은엄마께서는 부족한게 많으신거 같으면서도 그부족한것을 하나 하나 채워가면서 정말 일을 잘히세요.

미루는 법이 없고 모든일을 엄마를 도와서 척척해 내셔셔 똑부러진다고 칭찬도 자주 들으시구요.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그런분이죠... 작은 엄마 만큼이나 저희엄마도 어디서나 찾아볼수 없는 그런전형적인 며느리의 모습이어서 항상 저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죠. 둘째며느리라 가운데서 이리저리 많이 고생도 하시지만 일 하나 만큼은 아주 똑부러지게 잘하시거든요
두 분이서 아무말없이 일하는 것 보면 환상적인 콤비가 따로 없다죠. 하지만 전 항상
작은엄마께 다가갈 때 마다 그 사이의 거리감이 조금 있었어요. 안좋은 의미의 거리
감이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의 지켜야 할 그런 형식의 선이랄까요,

그래서 항상 말을 할 때나 뭘 할때나 누구보다도 조심스럽죠.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것 보다 더조심스럽게 대하고 말 하기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작은엄마께는 좋은 모습만 보여
주려고 하죠..더욱더 가까워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냥 이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지내야겠어요.

거의 이런 저런일들로 조금씩 친해지긴 했지만 앞으로도 이런저런 재미난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네요. 비록 그 실수의 당사자는 부끄럽기도 하고 꺼림직
하기도 하겠지만 따뜻한 정으로 감싸고 덮어주고 이해함으로써 관계는 더욱더 성장하
는게 아닐까 싶네요.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드는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 여기 농촌은 아직까지는 순수함이
묻어나는 거 같습니다. 바쁜 일상속에 서도 이렇게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서로의
정도 두둑히 쌓고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어느 누구에게나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
하면서 서로의 정을 두둑히 쌓고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어느 누구에게나 정감
을 주고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찾을수 있어 너무 좋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여기 살면서 사투리를 쓰면 타지역 사람들을 만나면 부끄럽고 꺼리고 아예 입도
벙긋하지도 않고 그랬었는데 모든것이 시간이 지나고 커 갈수록 하나하나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그때는 왜 그랬는지.. 그때는 나도 문화생활도 만끽하고 싶었고 더 나은 교육도
받고 싶었고 도시 애들 먹는 음식도 다 먹어 보고 싶었고 그러지 못하고 농촌에 살고
있는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고방식이 아주 달라졌어요.
삭막한 도시속에서의 무미건조한 말 한마디 보단 이렇게 시골 전경을 벗삼아 할아버지
할머니, 아니 모든 주위사람들에게 사투리로 정겨움과 말 한마디로도 서로에게 행복을
심어주면서 작으나마 둘러앉아 찐고구마를 먹으며 여유롭게 생활하는게 더 행복하다는
것을.. 삭막한 도시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주 값진 것임을.. 아직 이곳은 살아 볼 만한곳이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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