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기고 - 성탄주일에 생각해야 할 것

 

성탄주일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탄생하셨는가? 성탄절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성탄을 맞으며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를 생각하는 주일인 것이다.

나는 오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성탄에 대한 상징적 몇 가지를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성탄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1. 12월 25일은 예수님 탄생일인가?

먼저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 12월 25일이 맞는가? 하는 점이다.

초창기 기독교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없었다. 그냥 예수님이 날마다 내 마음에 탄생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313년 로마의 콘스탄트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포하면서 제도적인 기독교로 발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성탄절이 논의가 되었고 결국은 로마의 태양절인 12월 25일을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일로 정했다고 하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그런가 하면 동방교회 가운데는 아직도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곳이 많이 있다.

그만큼 성탄은 날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켜왔으니 우리도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성탄을 상징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통해서 우리도 성탄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배울 수가 있다고 본다.

특히 기독교의 전통이 일천한 한국에 있어서는 우리가 한국적인 성탄의 좋은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특히 성탄은 처음 성탄을 알리는 천사들의 말처럼 “기쁨의 좋은 날”이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성탄의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 가야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쁨을 온 인류가 공유하는 날로 삼자는 것이다.


2. 크리스마스 츄리

크리스마스 츄리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독일에서 마틴 루터가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전날밤 하늘의 별이 빛나고 그 밑에 상록수가 어 있는 모습이 루터의 마음 속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상록수의 끝이 뽀족하여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같이 보여 이와 같은 나무를 준비하여 자기집 방에 세우고 거기에 별과 촛불을 매달아서 장식을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온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할 것 같으면 상록수는 이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이교도들의 생명의 상징인 상록수와 기독교의 생명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로 통항되어 이뤄진 전통이 크리스마스 츄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성탄은 생명의 날로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생명의 존귀성을 일깨워 한 생명이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눈을 떠서 생명을 사랑하는 운동을 펴야한다.

현대에 생활고를 비관하거나 사람의 실패 때문에 집단자살하는 수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 불행을 건져낼 수 있는 생명사랑운동이 일어나야 하겠고 지하도에 즐비하게 누워있는 노숙자와 저 방황하는 우수한 청소년을 사랑하는 생명운동, 사랑운동, 별이 상징하는 희망운동을 교회가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츄리를 장식하듯 인간의 마음 속에 생명을 사랑하고 희망을 주는 성탄이 되어야 한다.


3.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의 시초는 영국에서 1843년에 시작이 되었다. H.콜이라는 사람이 고안하였고 J.호슬리라는 사람의 그림으로 만들어져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대림절에 친지들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거기에는 성탄의 기쁨을 나누고 새해를 축복하는 글이 씌워졌는데 이것이 오늘에 와서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미국에서는 일년에 수십억통의 카드가 발송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크리스마스 카드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요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는 것이다. 여러분 세상에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기 예수가 이땅에 강생한 것이라면 이 소식을 어찌 혼자만 간직하고 즐길 것인가? 기쁨은 나눠야 비로소 더 가치가 있는 법이다.

성탄의 기쁨을 서로 나누고 축복하자. 성탄절은 기쁨과 축복과 희망의 계절이다. 사랑이 없고 용서가 없고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현대야말로 성탄이 갖는 기쁨과 축복과 희망을 나눠 가져야 할 가장 절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4. 마굿간의 의미

크리스마스 때에 한국의 개신교회 중에서 마굿간을 만들어 장식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마굿간을 흔히 구경할 수가 있다.


이것은 13세기 이태리의 앗시시 프랜시스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프랜시스는 성자의 칭호를 받는 훌륭한 크리스챤이다. 그러나 본래 그는 부잣집에서 술과 여자만을 추종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거리에서 문둥병 환자를 보았다. 누더기를 걸치고 그 얼굴이 일그러진 처절한 모습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마음에 참을 수 없는 동정심이 밀려 왔다. 그는 그 문둥병 환자에게 다가가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힘차게 끌어안았다. 그 순간 프랜시스는 자기의 품에 안긴 인간이 문둥병 환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날부터 프랜시스는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왕궁에서 예수를 찾은 것이 아니라 무굿간에서 예수를 찾은 것이다. 성탄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마굿간에 탄생한 날이다. 누구나 그 앞에서 겸손하게 경배를 드리며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한다.


5.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뚱뚱하고 배가 불룩할 뿐만 아니라 기분 좋게 “호! 호! 호!” 하고 웃는 흰 수염이 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4세기에 소아시아 지방에 살고 있으면서 좋은 일을 많이 행한 성 니콜라스를 의미한다고 한다. 처음엔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이 유럽에 전파되었고 그것이 화란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미국으로 이민을 감으로써 미국에까지 전파되었다고 한다. 산타클로스가 흰털이 달린 빨간옷과 검은 벨트를 두르고 긴 고깔모자를 쓴 모습은 미국 만화가 토마스 내스트가 1863년에 그린 만화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성탄절이 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린다. 아이들에게 꿈을 준다는 의미에서 매우 좋은 풍습이다. 그러나 장성한 신자가 되면 산타클로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산타클로스가 되어야 한다. ‘받는 손이 주는 손으로’ 바뀌는 것이 성탄의 의미인 것이다. 우리가 모두 산타클로스가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살맛이 나는 푸근한 계절이 될 것이다. 모두 산카클로스가 되자. 이것이 성탄을 잘 보내는 크리스챤들의 삶의 방법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인간이 지닌 문화 속에서 성탄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한국적인 성탄문화가 무엇일까를 고민했으면 한다. 인간의 문화를 통하여 성탄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가 아니라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성탄의 참된 게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미국의 어느 젊은 선교사 부부가 일본에 처음으로 선교의 발을 디뎠는데 그 때가 크리스마스 계절이었다. 그들은 이런 소감을 말하였다. “일본인들은 미국에서 행해지는 것과 같은 성탄관습을 가지고 있다. 카드도 보내고 츄리도 세우고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은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님이 그들 곁에 오셨다는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남서울교회 집사 김덕선 (이동면 다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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