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을 지켜 친환경농업 일번지로 거듭난 아야정 들판.
최근 국내 농업계에서는 산림이 파괴되면 생태환경이 변한다고 주장한 일본의 한 정장(지자체단체장)에 대한 인물조명이 뜨겁다.
과거 야반도주 마을로 알려진 빈촌을 일본 친환경농업 일번지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 조명은 그만큼 국내 농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방증 하는 한편 친환경농업에서 그 해답을 찾겠다는 국내 농업계의 강한 의지이기도 하다.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의 작은 두메산골 아야정이 실천한 친환경농업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농산물개방화시대 친환경농업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농산물개방화시대  친환경농업 부각

오늘날 세계는 예상치 못한 지진이나 해일 등의 자연재해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환경파괴가 낳은 엘리뇨, 라니야 등의 기상이변으로 대규모 홍수와 가뭄이 빈번해졌고, 농경지는 사막화돼 세계적으로 지난 20년 동안 1억2000만ha(우리나라 경지면적 60배)가 쓸모 없는 땅으로 변했다.

산업혁명 이후 갈수록 악화되는 환경오염으로 지구촌은 이제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식량 생산을 더 이상 충분히 할 수 없는 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식량을 무기화하거나 식량 수출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실제 전세계 인구증가로 식량수요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반면, 곡물 생산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는 추세여서 앞으로 식량이 무기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농산물 수출국 1위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 농업 선진국들은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국가에 농산물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어 현재 식량수입국들은 농업 경쟁력을 갖출 기회가 희박해져 가고 있다.

식량의 무기화를 우려하면서도 농업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 식량수입국들은 자국의 무역시장확보를 위해 최소 식량자급율도 맞추지 못한 상황에서 농산물시장을 열고 있다.  

따라서 식량수입국들은 경쟁력 있는 농업구조를 갖추든 농업을 포기하든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기로에 놓인 셈이다.

일본의 경우 광할한 토지를 바탕으로 규모화된 생산으로 무장한 농업 선진국의 농산물시장개방 요구에 맞서기 위해 일찍부터 친환경농업을 중요 정책으로 채택했다.

수입농산물이 외국에서 일본까지 오는데 방부제, 살충제 등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수송할 방법이 없다는 약점을 이용, 자국의 농산물을 잔류농약 기준치보다 낮게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정부와 국회, 농협, 농민이 하나가 되어 친환경농업을 널리 보급시켜 나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일본은 자국쌀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소비자들이 인식하게 됐으며 관세를 뚫고 값싸게 밀려오는 수입농산물을 일정부분 규제하게 된 것이다.

두메산골이 친환경농업 일번지로
고다 정장의 환경에 대한 인식과 결단 밑거름

두메산골 규슈 미야자키현 아야정이 현재 일본 정부의 친환경농업정책 모델로 자리잡는 데에는 고다 미노루 정장의 환경에 대한 인식과 친환경농업실천에 대한 결단이 밑거름이 됐다.

아야정은 미야자키현에서 서북쪽으로 약 30여km 떨어진 산골로 남천과 북천이란 두 갈래 하천 사이에 부채꼴 지형에 위치하며, 약 3000여ha의 상록광엽수립이 둘러 싸여 있는 인구 7500여명의 작은 지자체이다.

고다 정장이 이 지역의 정장으로 취임한 1966년 무렵에는 임업 종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민 가운데 50세 미만은 날품팔이를 나갔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 학교와 진료소가 문을 닫는 빈촌이었다.

더구나 지역 면적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산림은 대부분 공유림이었고 그나마 약 10%의 농경지조차 상습 수해지역이어서 주민들의 이농현상은 극심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상록수림이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삼나무처럼 돈 되는 숲으로 수종갱신을 한다는 정책을 수립, 대체 벌목 계획을 아야정에 통보하고 강행하려했다.

그러나 고다 정장은 산림 보존과 벌목을 통한 주민 고용 안정 효과 사이에 고민하며, 자연림이 파괴되면 생태환경이 변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주민들과 현의회, 중앙정부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고다(26년간 정장직 수행)는 주민들의 소득 창출을 위해 '일호 일품운동'과 자급자족을 위한 '한평 채소밭 가꾸기 운동''유기농법 농지환원 운동'을 전개하고 유기농 생태마을 가꾸기에 힘썼다.

또한 벌목보다 푸른 숲을 보존하게 됨에 따라 깨끗한 물과 좋은 공기를 배경으로 좋은 술(슈센 노모리)을 만들고 '일호 일품운동'은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일본 제일의 목공예ㆍ죽공예ㆍ유리공예ㆍ도예ㆍ염색직물 등을 생산하는 전통공예지역으로 거듭나게 됐다.

푸른 숲을 살리려는 고다정장과 마을 주민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일본 제일의 삼림욕 메카로 아야정을 변모시켰고 1983년에는 일본 자연수 100선, 1985년에는 환경청의 유명수 100선, 1995년에는 산림청의 수원 수림 100선에 선정돼 관광지로 명성을 얻었다.

이같은 성과로 아야정은 현재 자연을 지키며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관광지로 알려져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친환경농업 핵심은'토질'개선
인분발효공장 지으며 자연순환농법에 노력

▲ 인분이 사료작물 성장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데 착안해 만든 인분발효공장.
30년전 '한평 채소밭 가꾸기'가 친환경농업의 출발점이 된 아야정 친환경농업의 특징은 고도성장시기에 새로운 것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있는 자연을 보존하고 환경을 지키며 농업을 성장 발전시켰다는 데 있다.      

고도성장시기에 타 지역보다 산림이 풍부해 종이나 펄프를 제조하는 산업을 육성시킬 수도 있었지만 자연을 지키고 친환경농업을 성장 발전시키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큰 흐름은 현재까지 아야정 농정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한 때 정부의 화학비료를 이용한 식량증산 정책과 상반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아야정 농민들은 내가 직접 먹는 안전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목표아래 무엇보다 토질 개선에 역점을 두고 친환경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 농업인(아야정 인구의 25%)들은 '작물은 사람이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가 만드는 것'으로 인식, 지속적 토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오랜 기간 이같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토질 개선이 친환경농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였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이들은 환경을 지키며 토질을 개선하기 위해 풀, 생야채 등 자연에서 생산된 자재만을 고집하는 자연순환농법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특히 자연순환농법의 핵심인 퇴비 확보를 위해 인분이 소의 사료작물을 키우는데 성장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데 착안해 건립된 인분발효공장은 이 지역 친환경농업의 핵심시설중 하나이다.

결국 아야정의 친환경농업은 보존된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순환농법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인 것이다.

도시민과의 계약재배 활성화
농산물 부가가치 높일 가공공장 건립


▲ 농산물의 부가가치 높일 가공공장 건립.
아야정 친환경농업의 또 다른 특징은 주력 작목이 없다는 것이다.

아야정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농산물(주로 오이, 고추, 배추, 토마토, 포도 등 신선채소나 과채류 위주)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재배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과거 친환경농업이 시작될 당시 소비자의 이해가 부족해 이렇다 할 유통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친환경농산물이 농약과 화학비료로 재배된 농산물보다 시각적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입농산물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고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친환경농업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도 달라져 친환경농산물 수요가 급증했다.

더욱이 이같은 소비자 인식 변화는 유통의 흐름까지 변화시켰다.

도시 소비자들(생활공동협회-일반 잡화를 싸게 구입하기 위해 시작된 도시주민들의 공동단체)들이 아야정에 일정한 품목을 지정해 친환경농산물 생산을 요구(계약재배)하게 된 것이다.

현재 이같은 유통 시스템은 소비자 견학 및 체험행사를 통해 더욱 활성화 돼 이 지역 농산물의 절반 이상을 소화해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농산물이 과잉 생산됐을 경우 농협에서 판매를 담당하는데 이 경우에도 재배이력이 붙지 않은 농산물은 판매가 금지된다.

또 아야정은 이같은 유통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현재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기 위해 농산물가공공장을 유치해 건립중이다.

농산물가공공장 유치에 대해 아야정은 지금까지 생활공동협회와 농협을 중심으로 판로를 개척해 왔지만 단순한 농산물의 판매로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농산물 가공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아야정은 대도시 기존 판로가 개척돼 있지만 10년간 장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이 값싼 외국농산물을 찾는 추세여서 가공공장을 통해 생산되는 식품을 학교 급식에 공급, 지역농산물의 판로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생산에서 판매까지 저 비용 시스템 고민

▲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된 오이가 포장된 채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아야정이 오늘날 친환경농업의 일번지로 자리 잡기까지는 아야정의 행정적 노력도 컸다.

아야정의 친환경농업을 주도하는 행정기관으로는 JAS 유기등록인증기관(일본 전역에 약 60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유기농개발센터이다.

유기농개발센터는 아야정이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데 필요해 만든 자체기관으로 출발했다.
오늘날 중앙정부의 친환경농업 관련 기관과 제도도 아야정의 요구에 따라 정비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야정은 일본 친환경농업 정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야정은 고도성장기에 타 시군과 달리 자연을 지키며 친환경농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한편 관련 제도정비를 중앙정부에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아야정 유기농개발센터는 친환경 정밀기술 연구로 친환경농산물생산 증대 방안 모색하는 한편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적정 시스템을 찾는 것을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친환경농사에 들어가는 생산비용을 최대한 낮추고 저 비용의 유통 경로를 찾아내는 등 생산에서 유통, 판매에 이르는 적정 시스템을 찾기 위한 것이다.

아직까지 친환경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의 소득이 현저히 떨어진 적은 없지만 10년간 일본 장기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소비자들이 값싼 수입산 농산물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불안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아야정은 생산에서 판매까지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적정 시스템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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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미야자키현 아야정 산업관광과 무커이 과장.
친환경농업 21세기 가장 적합한 산업

■ 주민 설득과정은.
= 30년전 고다 정장이 환경보존과 가장 밀접한 친환경농업을 정책방향으로 설정할 당시에는 이 길 외에는 살 길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적었고 농업인들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 소출이 적어 힘이 들었다. 하지만 농산물시장개방에 따른 먹거리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야정의 친환경농업이 조명을 받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아야정의 농산물들이 팔려 나갔다.
주민들을 설득하는 특별한 방안은 없었지만 오랜 기간 행정에서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 지금은 많은 농업인들이 친환경농업을 이해하고 있다.

■ 행정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 아야정은 친환경농업에 대한 국가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1988년 친환경농업 조례를 만들었다. 당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특별한 유통시장이 없어 많은 농가가 이 조례에 공감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행정에서는 조례 제정 후 친환경농업을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알려나갔고 유기농개발센터에서는 농협과 함께 관련 기술들을 농가에 보급시켰다.
이와 함께 도시 소비자 단체인 생활공동협회와 생산농가를 연결시켜 주는 작업도 함께 해 나갔다.

■ 아야정의 현재 고민은.
= 농가의 생산비를 줄이고 소출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과 생산에서부터 유통, 판매까지 저비용 고효율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장기불황 속에 값싼 수입농산물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친환경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비용을 줄이는 방법 외는 없기 때문이다.    

■ 아야정 농업의 전망은.
= 아야정은 과거 산림자원을 보존하면서 얻은 수많은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같은 관광자원은 깨끗하고 안전한 친환경농산물 판매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야정의 친환경농업은 전망이 밝다고 생각한다.
21세기의 화두인 환경을 지키는데 친환경농업은 가장 적절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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