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벼와 논두렁에 핀 피안화가
푸른 숲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자아낸다. 
 
 
  

WTO(세계무역기구)가 추구하는 자유무역화로 인해 농산물시장을 개방했던 일본은 현재 그린투어리즘과 친환경농업을 통해 피폐한 농촌경제를 살릴 방안을 모색중이다.
우리나라도 쌀 개방을 비롯해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을WTO로부터 계속적으로 강요받고 있어 이같은 명제는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다. 농산물시장개방의 파고를 먼저 경험한 일본이 대안으로 제시한 그린투어리즘과 친환경농업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접목 가능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편집자주>

왜 그린투어리즘을 선택했나

경제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산업혁명 이후 상공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세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일본도 이같은 부를 가능케 한 공산품 수출시장을 확보키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다국적 기업에 농산물 시장을 개방해야 했다.

UR협상 타결과 세계자유무역화를 주도하고 있는 WTO(세계무역기구ㆍ1995설립)의 농산물 수입 제한 품목 해제 명령 등으로 외국농산물이 본격 수입되면서 일본도 농산물 공급과잉 시대를 맞게된 것이다.

이후 규모화된 영농을 바탕으로 생산된 미국과 유럽의 저렴한 농산물들이 관세를 뚫고 쏟아져 오자 일본의 소규모 영세농가들이 맥없이 붕괴되기 시작해 농업에서 답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떠나며 농촌 공동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됐다.

하지만 이즈음 일본은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한 대응책으로 크게 2가지를 제시하며 공동화되고 피폐해져 가는 농업ㆍ농촌 살리기에 나섰다.

이는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활용해 도시민과 관광교류를 확대함으로써 침체된 농촌을 되살리겠다는 그린투어리즘 정책과 일본 쌀에 비해 10배 가량 싸게 들어오는 수입쌀 등 수입 농산물에 대응하기 위한 농약의 잔류성분 기준을 마련한 정책이다.

수입 농산물이 외국에서 일본까지 오는데 방부제, 살충제, 살균제 등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수송할 방법이 없다는 약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자국의 농산물을 잔류농약 기준치보다 낮게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결국 일본은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팔기 위해 내어준 농촌과 농업을 그린투어리즘과 친환경농업으로 회복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까지 노력해 오고 있다.

참고로 그린투어리즘이란 '농촌의 자연경관과 전통문화, 생활과 산업을 매개로 도시민과 농촌주민간의 교류형태로 추진되는 체류형 여가활동'을 말한다.

최근 관광산업 패턴이 남성중심에서 여성중심으로 옮겨가고 있고, 노령층 증가에 따른 실버관광, 자녀 교육을 위한 어린이체험학습, 건강을 테마로 한 그린투어리즘이 각광을 받고 있다.

 

  
 
  
우키하정 전경. 
  

일본은 그린투어리즘 실천을 위해 WTO(세계무역기구) 출범이 선언된 지난 1994년 '농산어촌 체재형 여가활동촉진법'을 제정하고 WTO가 본격 출범한 95년에는 우키하시를 비롯한 4곳을 모델지구로 선정,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이후 그린투어리즘을 농정의 새로운 중요 정책수단으로 삼기 위해 99년에는 '식료 농업 농촌기본법'을 제정, 제도적 지침을 마련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그린투어리즘 활성화에 따른 농가민박 이용 관광객을 연간 8백7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2002년 초ㆍ중학교의 주5일 수업제 전면 실시와 함께 그린투어리즘 수요는 크게 늘 것으로 전망해 그린투어리즘을 강화해 나갔다.

이에 따라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시정촌(市町村) 129곳이 그린투어리즘 실천계획을 수립할 정도로 자치단체의 실천 의지도 높다.

95년 그린투어리즘 모델지구된 우키하정
가구당 연 300만원 소득 올려 

이 중 후쿠오카현 우키하정(큐슈의 중산간지역에 위치한 인구2만명 수준의 기초자치단체, 주력은 과수재배)은 95년 이미 모델지구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그린투어리즘을 추진하기 시작해 현재 그리투어리즘의 일번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우키하정이 이같은 명성을 얻은 데는 외형적으로 크게 몇 가지 사업이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우선 20~30년 전 젊은이들이 떠났던 이곳에 매년 200~4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게 된 것은 계단식 논을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한편 논을 도시인에게 분양,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9월 이곳의 계단식 논두렁은 여느 논두렁과 달리 빨간 꽃이 장관을 이룬다. 논두렁에 구멍을 파는 두더지를 막기 위해 뿌리에서 두더쥐 퇴치 물질이 분비되는 피안화(彼岸化ㆍ히감바라)가 피면서 황금색 벼와 초록 숲이 어루러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현지 주민에 따르면 피안화는 다년생 화초로 지난해 전라도 순창군에서 입식을 위해 가져갔다고 한다.

붉은 꽃이 핀 벼 수확기 농촌 풍경을 감상하는 관광객을 위해 이 무렵 마을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농촌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음악회와 사생대회를 열어 관광객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같은 방법으로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민박을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눈으로 확인한 현지 농산물을 관광객들이 사가게 하는 것이다.

또한 빈집을 개량해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머물며 농촌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놓고 있다.

이와 함께 98년부터는 계단식 논(1구획 100㎡)을 도시민에게 임대해 이들이 자녀와 함께 전통적 방식의 쌀농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토지를 임대한 도시민이 농산물을 직접 수확할 수 없을 경우는 이들 주민들이 대신 수확해 보내 준다.

우키하정의 주민들은 이같은 그린투어리즘 개발로 연평균 200~4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약 2만명의 지역민이 가구당 약 300만원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전통가옥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길의 역' 
  

중간상인 없는 직거래 유통시스템 정착
'길의 역' 지역농산물 90% 소화

그린투어리즘의 이미지를 상품화해 판매하는 거점시설은 지난 2000년 4월에 개점한'길의 역'(미치노에키 우키하-국도휴게소)이다.

국도변에 설치된 이 시설은 국토교통성과 우키하정이 약 70억원을 투자해 설립했고 농특산물판매소와 관광안내소, 음식점, 문화재전시관 등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운영은 행정과 농협, 산림조합, 상공회 등의 제3섹터 우키하노사토가 맡고 있고 발생한 이익금은 다시 농민들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된다.

무엇보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판매시스템이다.

400여 농가가 매일 새벽 이곳에 신선한 농산물을 직접 내다 놓는데 포장지에는 생산자 이름과 생산자 자신이 정한 가격, 전화번호 등이 표기된 라벨이 부착된다.
하루 매출이 약 3000만원에 달하는 이 곳은 농가가 생산한 물량을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바로 판매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어 이 지역 농산물의 90%를 소화해 내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농산물 직거래를 유도하는 '길의 역' 내부 판매장. 
  
이같은 유통시스템은 농산물의 직거래를 유도하는 한편 농가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이 바로 상품으로 팔려 나가는 것을 판매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 질 좋은 농산물생산에 더욱 매진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상표나 브랜드 중심의 판매가 아니라'누가 생산한 농산물을 내가 먹는다'라는 생산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판매망인 셈이다.

이를 통해 외지 소비자가 자신의 기호에 맞는 농산물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외지 소비자의 택배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이같은 시설들이 일본 전역에 확산돼 있지만 '미치노에키 우키하'는 주민들이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에 그린투어리즘으로 대표되는 지역 청정 이미지를 바탕으로 판매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시설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주민들은 농협이 제역할을 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민들은 과거 농협이 농산물 판매를 담당했지만 운반비 및 각종 수수료를 제하면 남는 게 없어 농협을 또 하나의 유통단계라고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농협들은 농산물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가공시설 확충을 위해 합병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한다. 

  
 
  
우키하정 쿠니다케 군의원이 내년 9월 피안화가 필
계단식 논들을 가리키고 있다.
 
  
어린세대 농촌문화교육 그린투어리즘 희망 찾는다
 
우키하정의 대표적인 그린투어리즘 실천 농가 '농가민박 쿠니다케암'이다.

이 집의 주인인 쿠니다케 히로시(62)씨는 현재 우키하정의 군의원으로 논 1.5ha와 포도밭 1ha에서 친환경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20년전 젊은이가 떠나고 마을이 황폐화될 당시 고구마를 팔아서는 더 이상 답이 없기 때문에 유럽의 친환경 그린투어리즘을 벤치마킹하자며 나서기도 했다.

이 집을 방문하면 일본 전통농가의 과거 생활방식과 농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봄에는 산나물과 딸기 채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여름에는 모심기, 고구마 심기 별자리 관찰, 가을에는 벼베기, 밤줍기, 그리고 겨울에는 마 채취, 떡만들기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어 농촌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또 9월 피안화가 필 무렵 자신의 집마당에 야외음악 콘서트를 마련해 각종 연주회를 열고 있다.

  
 
  
어린이 농사체험 현장.  
  

쿠니다케씨는 그리투어리즘이 농촌경제를 살릴 충분한 대안은 아니지만 이를 실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규모화된 선진국의 값싼 수입농산물과 경쟁해서는 답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현재 일본 먹거리의 90%가 수입농산물이라는 점은 이를 방증하는 것이라며 친환경농업과 함께 그린투어리즘을 접목하는 등 관광을 겸한 복합 영농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린투어리즘의 희망은 과거의 삶의 방식을 지금의 어린 세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나아가 이들이 (농촌)고향 문화 대한 애정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일본 도시민들은 자녀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시골 자연을 찾고 있고 이같은 수요가 현재 일본의 친환경 그린투어리즘과 연계되고 있다.

결국 일본의 농업인이 말하는 농촌이 살길은 친환경농업과 가장 접목이 가능한 그린투어리즘의 실천이며, 친환경농업과 그린투어리즘을 종합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인터뷰]-우키하정 대외정책과 히구찌 기획계장

  
 
  
히구찌 기획계장(가운데)이 우키하정의 그린
투어리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린투어리즘은 주민주도여야 한다


■ 그린투어리즘 어떻게 시작됐나

= 정부가 95년 그린투어리즘 모델지구로 우키하시를 선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그린투어리즘에 대한 주민인식과 정보가 미약해 유럽연수를 통해 활성화시켜 나갔다. 친환경농업과 관광의 개념을 종합적으로 실천하기에는 그린투어리즘의 도입이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 성과는 어느 정도인가
= 정확한 통계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매년 200~4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이들을 통한 현지 농산물 판매가 활성화되고 있어 실제 파급효과는 큰 것으로 기대된다.

■ 주민 의식 전환은 어떻게 했나
= 그린투어리즘은 행정이 주도해서는 어렵다. 행정에서는 지난 97년 논길과 물길을 정비하고 경관조망을 위한 산책로를 조성한 수준이며, 관광자원을 조성하기 위해 피안화를 심도록 유도한 정도다.
현재 행정은 축제 등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안을 조정하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다.

■ 우키하시의 현재 고민은
= 대외적으로는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농산물시장 개방에 따른 농산물 가격하락 등이며, 내부적으로는 계단식논과 피안화로 대표되는 관광상품을 타지역과 차별화하는 문제와 관광객들에게 깨끗한 이미지를 주기 위한 쓰레기 처리 문제 등이다.
현재 행정에서는 주민들이 요구하는 농가 레스토랑을 검토중이다.
피안화가 피는 시기에 찾아 오는 관광객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한편 농가 소득향상을 위해 기획하고 있다.    
수입농산물과의 가격경쟁보다 관광자원 개발로 주민소득을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우키하시의 농산물 유통경로는
경지면적 등이 협소해 주로 농산물은 소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생산된 농산물은 주로 '길의 역'과 축제를 통해 판매되고 있고 그 외는 자가 소비되고 있다. 따라서 중간 상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농가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이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