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단체 요구인 농민-국회-정부의 협의 아래 농업회생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 뒤 비준안을 처리하자는 주장도 무시된 채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 동의안이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비준안 처리 반대 구호가 되풀이되는 가운데 김원기 국회의장은 정상적인 반대 토론이 불가능하다며 전자 표결을 강행했다.

쌀협상 비준안 전자표결 결과 223명 투표에 찬성 139표, 반대 61표, 기권 23표로 가결됐다.

열린 우리당은 찬성 당론으로 표결에 참여했고 한나라당은 당론 없이 자유투표로 표결에 참여했다.

한때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의원 30여명이 의장석과 발언대 주변을 점거하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수의 열세로 비준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표결 직후 국회는 350만 농민에 대한 사망선고를 압도적 지지로 집행했다고 비난하고 '날치기ㆍ졸속 처리'된 비준안을 인정할 수 없다며 농민단체 등과 공동 대응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농민들은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에서 농기계와 차량을 동원, 국회 비준을 막기 위한 상경투쟁을 전국 곳곳에서 벌였다.

쌀협상 비준동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쌀시장 전면 개방(관세화 조건)을 2014년까지 미루는 대신 이 기간에 의무수입 물량을 현행 20만5228톤(지난해 쌀 소비량의 4%)에서 2014년 40만8700톤(7.96%)까지 매년 늘리게 된다.

특히 이번 비준안 통과로 지난 95년 우르과이 라운드 때 관세화유예 품목으로 일정 물량만 수입 돼 쌀과자나 떡 등 가공용으로만 유통됐던 수입쌀이 시판 돼 국내 쌀시장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존 의무수입 물량 중 올해 10%(2만2558톤-전체 쌀 소비량의 0.5%)가 밥쌀용으로 풀릴 예정이다.
이같은 양은 해마다 늘어 2010년까지는 30%로 확대되며 이 비율은 2014년까지 유지된다.

수입쌀이 시판되는 시기는 입찰 공고부터 낙찰ㆍ운송ㆍ통관 등 구매절차를 거치는 소요 시간을 감안하면 이르면 내년 3월 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내년에는 올해 의무 시판량 판매에다 내년도 의무 수입물량(3만4429톤)까지 소비자 식탁에 오를 것으로 예상 돼 쌀값 하락이 우려된다.

이와 관련 농촌경제연구원은 수입쌀 1만톤이 시판되면 쌀값은 kg당 10원씩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수입 쌀값이 국산쌀의 15~25% 정도인 점을 감안해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쌀 판매시 수입산과 가격 차이만큼 수입이익금을 부과해 국내산 쌀값과 가격차가 거의 없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수입쌀 판매로 얻은 이익을 쌀 소득보전변동직접지불 기금으로 마련하고, 추곡 시기 등을 고려해 최대한 분산 시판해 시장 영향을 줄일 계획이다.
농민들의 격렬한 비준 반대 운동에도 쌀협상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농민들은 수입쌀이 이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겠다고 나섰다.

농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쌀협상 국회비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3일 쌀농업이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에 의해 무너졌다며 앞으로 정권타도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지난 23일 밝혔다.

비대위는 국회 비준안 처리 이전, 농민과 국회, 정부간 협의기구를 만들어 농업회생을 위한 근본 대책을 수립해 이를 바탕으로 비준여부를 국민적 합의 아래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같은 노력도 없이 정부는 쌀산업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앞으로 수입쌀이 들어오는 마산, 인천 등 국내 모든 항구에서 입항저지 투쟁을 벌일 것이며, 현재 전국 곳곳에 쌍여있는 수입쌀 창고를 소각하는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군내 농민단체들도 정부가 이번 쌀협상 비준안을 국민적 합의도 없이 통과시켜 아사 직전의 농업을 회생 불능상태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앞으로 강경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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