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廉者(염자)는 牧之本務(목지본무)로 萬善之源(만선지원)이자 諸德之根(제덕지근)이다. 不廉而能牧者(불렴이능목자)는 未之有也(미지유야)라’.

다산 정약용 선생이 관리의 도리를 쓴 <목민심서> 청심(淸心)편에 나오는 글귀로 ‘청렴함은 공무원의 기본 임무로써 모든 착한 행위의 근원이고 품성의 뿌리이므로 청렴하지 않고서 능력있다고 평가받는 공무원은 없었다“는 뜻이다. 청렴의 뜻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이 문장은 우리 공무원들에게 ‘사욕없이 청렴하라’는 교훈이다.


영어권에서는 청렴을 ‘integrity'라고 쓴다. 이 단어는 라틴어 ’integritas'에서 나온 것으로 웹스터 영어사전 등에서는 wholeness(전체, 완전), soundness(건전, 건강), perfect(완벽)로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동서양 청렴의 뜻은 건전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헌법 제82조에서 ‘국회의원의 청렴의무’를 규정하고 국회의원 윤리강령에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61조와 교육공무원법 제15조에도 청렴의무를 규정해 놓았다. 이같이 법과 제도에서나 등장했던 청렴이라는 단어가 국가기관의 명칭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지난 21일부터 종전의 부패방지위원회가 국가청렴위원회(약칭 청렴위 KICAC)로 바뀌게 된 것이다.


국가기관의 명칭을 이처럼 '부패방지'를 '청렴'이라는 단어로 변경한 배경에는 언어 관습상 느끼는 몇 가지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패방지'는 부정적 이미지와 후진국 냄새를 풍기는 말투다. 타율과 통제, 수동적인 느낌이 들게 한다.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며 어두운 면도 내포하고 있다. 반면 '청렴' 이라는 어감은 '부패방지'에 비해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적극적이다. 자율과 개방, 능동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


부패방지에 스며있는 강압적 어감도 부담스럽다. 누가 시켜서 고치기보다는 스스로 깨끗해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가령, 맑은 하늘(선진국)이 있는데 때로 찌든 유리를 약품(형벌)으로 세게 닦아내고 쳐다보려는 움직임이 '부패방지'이라면, 비 내린 뒤 맑고 높아진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이 ‘청렴’이라고 할까.


청렴위로 명칭을 바꾼 것은 청렴의 친근하고 밝은 이미지를 강조해 국민 모두의 힘으로 투명사회를 건설해 보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실제로 청렴 기풍의 정착은 국가기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기업, 민간 등 사회전체가 추구해야 할 과제다.


청렴의 진정한 주체는 국민

청렴의 진정한 주체는 국민이다. 청렴은 만민평등을 부르짖은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처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정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이 청렴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국민에 의해 부정 부패가 감시되며 국민을 위해 부패 요인 제거와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청렴위가 하는 일은 이같이 국민 스스로 지향하는 청렴의 길을 발 벗고 나서 지원하는 것이다. 청렴위는 시민사회 공공기관 기업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이 지향하는 '윤리 인프라'를 구축하는 후견자 역할을 하는 것이 임무다.


세계적인 비정부기관인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집계하는 국가청렴도 조사에서 수년간 1위(10점 만점에 9.7점)를 차지하는 복지국가 핀란드를 보자.

이 나라는 정보공개가 국민 생활 속에 체질화되어 부정이 발붙일 틈이 없다. 고위공직자와 부호, 스포츠스타와 인기연예인은 물론 국민 모두의 재산상황과 납세내용이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된다. 원칙과 이렴(利廉 청렴함으로 이로운 것)이 생활화되어 부정부패란 용어가 잘 쓰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잘 사는 경제 선진국은 사회건전화 수준이 높은 청렴선진국이 먼저 실현돼야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2004년도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지수 발표자료에 따르면 국가청렴도 순위 47위인 우리나라가 핀란드 수준의 청렴도 달성 때 생산성은 국내총생산의 21%(약 114조원)까지 높아지고 외자유치는 국내총생산의 3%가량 늘어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청렴이야말로 국가경쟁력을 드높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모두 청렴하자.


김성호(상주면 56살)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