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몸을 추스르고 길을 오르니 비탈진 산등성이 사이로 논 떼기 하나만한 분지가 잡초에 묻혀있다. 어설픈 판자쪽에 써있는 김만중 선생의 유배지 집터 표지판, 몇 발작만 헛디디면 당장 바다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좁은 터임에도 이곳에 초막을 짓고 매화를 심어 선비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 했고 ‘구운몽’으로 어머님에 효도하고 ‘사씨남정기’로 임금을 깨우치려 했던 그 도도한 정신. 파도소리만이 들리는 죽음 같은 고독을 안으로 새기며 온몸을 뭍으로 기우려 전음만을 기다렸을 그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인생은 일장춘몽인 것을 깨닫고 사별의 시간들을 하나하나 꿰매어 가는 체념의 순간들이었을는지 모르겠다.
끝내 뭍으로의 소식은 시신되어 돌아간 날이었으니 무로서의 회구였을까 아니면 윤회였을까.
몇 개월 시신을 안치했다는 무덤을 찾아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황폐되어 초라해진 묘지엔 황토만 붉다. 한스런 마음이 300년도 부족했던지. 아직도 그 자리엔 잔디가 자라지 않는단다.
초막자리 옆 김만중선생이 마셨다는 옹달샘에는 아직도 졸졸졸 전설이 흘러내리듯 샘물이 흘러내린다. 손 오금으로 물을 가두어 한모금 마시니 산길을 오르던 더위가 가시는 듯 시원하다. 서포도 이 샘물을 마시며 고독을 씻어 내리고 한양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지는 해와 뜨는 달을 보며 눈물지었으리라.
잡초 위에 앉아 잠시 회한에 잠긴다. 귀양살이로 점철됐던 그는 일체의 부귀와 영화가 모두 몽환일 뿐이니 세속적 번민과 갈등을 구운몽속에서 해결하려 했던가! 못다 이룬 부귀영화를 꿈속에서 이루려 했던가!
벼랑을 타고 오른 바닷바람이 무심한 잡초만 쓸고 지나간다.
돌아오는 길. 저멀리 바다 너머로 저녁노을이 붉게 탄다.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뱃머리를 뒤로 하고 저녁노을 바라기를 한다.
노을 속에 잠기는 노도도 노을과 함께 한다. 절개 있는 선비의 한 맺힌 말인가. 아니면 사무치는 임의 그리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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