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바다, 그 위를 가로질러 걸쳐진 남해대교. 항상 따스하고 포근하게 다가오던 곳이건만 오늘은 왜 이렇게 애잔하기만 할까. 고향길이 아닌 임의 슬픈 흔적을 찾아 나서는 길이기 때문인가.
흰 수건을 당구면 당장 파란 물이라도 들 것같은 짙푸른 바다, 그 바다를 끼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백련이라는 곳이다. 해안 언덕을 타고 서 있는 고목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어촌이다. 이 어촌의 좁은 수로를 사이에 두고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섬, 높은 산허리를 싹둑 잘 라 바다위에 던져 놓은 듯하다. 여기가 노도(櫓島). 고도이기에 김만중 선생의 유배지로서 슬픈 과거가 절절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한 귀퉁이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했던 곳! 몇 시간의 뱃길도 아닌데, 힘차게 한번 건너뛰면 건널 듯도 싶은 불과 10여분의 뱃길이건만 몇 번이나 빤히 건너다보면서도, 그렇게도 여유 없던 인생이었는지 몇십년이 지난 오늘에야 이곳을 찾는다.
물어물어 도선을 찾다가 그저 앞바다에서 주낙이나 하던 조그만 엇너 한 척을 찾아 갑판위에 오른다. 낚시를 던져 몇 마리의 고기를 잡는 것보다 낫다 싶으면 건네주는 사공. 그는 또 한사람의 실없는 사람을 보게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옛날 ‘묵고 놀자 할배’가 잠시 살다가 죽었다는 노도의 산모퉁이를 왜이렇게 찾아다니는지, 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석이라도 남아 있는 것도 아닌 휑뎅그렁한 산모퉁이일 뿐인데. 당시 책이나 읽고 북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서포 김만중을 이해못해 주위 사람들이 ‘묵고 놀자 할배’라고 불렀던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문학소년 시절 김만중의 김씨 성 하나만을 가지고 혹시 나의 선조가 아닐까, 그래서 그의 피가 내 몸속에도 흘러서 나도 타고난 문학적 소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으로 족보를 뒤지던 기억에 쓴웃음이 인다.
한손으로 키를 잡고 한 손으로 기계를 조작하는, 해풍에 그을린 사공의 모습이 어쩌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령계의 나룻배 사공 “카론영감”을 상상하게 한다. 이 바다를 건너는 것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고뇌의 강인 “아카론”강인가. 김만중 선생은 이 바다를 건너면서 임금의 흐린 성정과 붕당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비감한 마음으로 이 속세를 잊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며 이 또한 고뇌의 강이 아니겠는가.
노도의 선착장에 내려 허허로운 산길을 오른다. 초라한 목판 하나가 안내하는 길을 따르니 억새와 칡덩굴이 산등을 타고 오른 해풍에 산들거리며 반긴다. 길 아래 쪽빛 바다가 세태에 찌든 나의 마음을 한꺼풀 벗겨내는 듯 시원하다.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길 옆 바위에 엉덩이를 걸친다. 멀리 오른쪽으론 남해의 명산인 금산이 보이고 왼편으론 망운산이 안개속에 어른거린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남해에 귀양왔던 자암 김구선생이 노래했다는 화전별곡(化田別曲)이 생각난다.
※다른글자체로※하늘 끝 땅 첫머리 한점 신선의 섬. 좌측은 망운산이고 우측은 금산이라 봉내 고내 흐르고 ...
어쩌면 김만중 선생은 이런 곳에 앉아 호수와 같은 쪽빛 바다를 내려다보며 동정호의 용녀를 생각하고 솟아오르는 아침햇살에 물들어 가는 금산의 38비경을 보며 구운몽의 8선녀를 상상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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