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란 없다. 우리가 그 원인과 증거를 찾지 못하거나 찾는 방법을 모를 뿐 반드시 흔적과 증거는 남아있다.”고 확신하는 강현무(남면 양지 법의학 이학박사) 향우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촘촘히 쌓인 연구자료를 뒤적이며 자료분석에 여념이 없는 강 향우에게 요즘 티브이에서 방영 중인 외화 CSI를 연상하며 왔다고 말하자 “우리에겐 사법권과 현장을 지휘통제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말한다. 사건의 전후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접수되는 증거자료만으로 감정하다보니 감정하는데 일정정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대구지하철화재사고처럼 국민적 관심사인 대형사고의 경우에는 국과수가 가장 먼저 출동해 현장을 통제하고 자료수집을 우선적으로 했지만 그 외 다수의 사고는 사건의 전말을 제외한 채 증거물 그 자체만을 감정하므로 작업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실에는 포접기, 중화장치, 원심분리기, 증류수제조기 등과 같은 기자재와 실험도구들과 각종 인체장기나 미생물 등 증거물들이 빼곡하다. 연구실이 실험실이자 증거물 보관소인 이곳에서 강 향우는 부유미생물에 관한 감정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부유미생물은 하등식물, 이끼, 미역, 다시마 등으로 이런 종류의 증거물이 도착하면 전문감정을 통해 가해자가 누구인지, 피해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해됐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감정처리건수도 엄청나다. 지난해의 경우 감정건수 350여건에 1건당 4가지 검사를 동시에 진행하니 연 1400여건, 하루 평균 4건 이상을 처리한 셈이다. 물과 관련된 사고가 빈번해지는 하절기가 가까워올수록 처리건수는 훨씬 늘어난다. 목욕탕이나 화장실, 웅덩이나 정화조 등 물과 관련된 곳이나 신발과 양말 등 사람과 관련된 의류는 필수감정대상이다. 이것들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부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히 시신은 위생처리가 안된 상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오염될 위험이 아주 높아 위생관리 또한 필수다. 그래서 심리적인 압박과 스트레스가 그림자처럼 늘 따라 다닌다.

감정엔 고도의 정신집중과 정확한 판단이 필수


감정 직업은 늘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감정을 통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결정적 판단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할 때면 일에 대한 정확성과 엄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고도로 정신집중해야 한다.

 

직업상 세상 보는 눈이 뭔가 다를 것 같다고 묻자 늘 감정현장에서는 죽음에 관해 생각하지만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승진이나 진급 등을 생각하며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생활하고 다만 위생을 생각해 손을 자주 씻는 것 정도가 특별한 생활습관이란다.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때도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03년 정몽현 회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부검차 국과수에 들어온 것은 떠들썩한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시신을 실은 앰블런스 1대와 승용차 1대 뿐으로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소리 소문 없이 왔다가는 것을 보며 돈과 명예와 권력도 무상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소중하다고 느꼈다.

 

지난해 태국에서 쓰나미 대재앙이 발생했을 때 12명의 연구사가 벌이는 국외활동의 행정지원을 맡았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한국인 18명의 사망자 중에서 확인요청을 한 10명의 신원을 모두 확인했고 고온의 날씨와 장비 및 지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의 수사위상을 든높이고 지난달 11일 완전 철수했다. 강 향우의 바람은 국과수의 직원규모가 지방 분소까지 합해 고작 260여명에 불과한데 비해 과학 수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전문 인력의 양성과 충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행정자치부 산하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는 올해로 창립 50돌을 넘어섰다. 국과수는 1955년 대통령령에 따라 내무부 치안국 산하에 설치돼 출범 당시 직원이 35명에 불과하던 것이 50년 만에 8배 가까운 263명으로 늘어났고 석ㆍ박사급 전문인력도 154명이나 되는 전문연구기관으로 발돋움했다.

 

국과수의 주요 감정 영역도 종전에는 살인, 강간 등 강력사건 위주에서 보험을 노린 화재사고, 뺑소니,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 환경오염물질 확인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작년에는 DNA 감식과 마약 분야에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규격 인증을 취득한데 이어 지난 50년간 풀지 못한 난제 중 하나인 볼펜으로 쓴 문서의 연도 감정에 성공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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