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뜻으로 끝까지 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거나, 어떤 일에 있어서 막힘없이 밀고 나가는 것을 말하며, 하나의 이치(理致)로 모든 것을 일관함을 뜻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초지일관(初志一貫)과 초지불변(初志不變)과 비슷한 성어이다.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과 이인편(里仁篇)에 공자와 제자(자공子貢:사賜)사이의 문답형식의 대화에서, 공자가 자공에게 '너는 내가 많이 배워 모두 기억하는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자공이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하며 되물었다. 이에 공자는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일관)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논어 이인편의 '군자(君子)는 의리에 밝고 소인(小人)은 이해에 밝다'라는 일관지도(一貫之道)를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제자 중 증자(曾子)뿐이었다. 공자가 증자에게 물었다. '나의 도(道)는 하나로 꿰었느니라(일이관지)'라고 말하자 증자가 옳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와 같은 문답을 마치자 제자들이 증자에게 '스승께서 무엇을 이르신 것인가?' 이에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공자의 언행(言行)은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고 있는 경우가 많아, 생각이 옅은 사람은 깨우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사리와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 들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이 합쳐진 말로, '마음의 한가운데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어떤 외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의미한다. 서(恕)는 여(如)와 심(心)이 합쳐진 말로, 즉 '마음을 같이한다.'는 뜻이다. 이는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면 화해와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정신으로 공자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했다. 공자는 자공에게 학문의 근본이 '일이관지'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이런 질문들을 던진 것이다. 
정치를 하는 위정자(爲政者)는 덕(德)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禮儀)에 의한 교화(敎化)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 생각했다. 이런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仁)이다. 인에 대한 정의는 '극기복례'(克己復禮 본지'18.1.26보도)이다. 즉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禮)에 따르는 삶이 곧 인'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인을 단지 도덕적 규범으로서가 아닌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정치사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학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사람들의 지식은 하나의 원리로 일관되지 못하고 너저분하게 깔려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박물관식 지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오직 하나의 일관된 원리를 세워서 받아들인 학식과 견문은 예지(叡智)를 갖게 되어, 뛰어난 지혜라는 뜻으로 공자는 상지(上智)라 했으며, 바로 인을 '일이관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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