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밤을 맞이합니다. 늘 맞이하는 밤이기에 그 자체를 논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밤은 우리의 신체나 정신과 정서에 깊게 관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밤의 실상 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측면에서의 밤은 기억으로 상기될 범위를 넘어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음양 관계로서 예상된 심리 생리적 작용이나 대자연의 성(盛)하고 쇠(衰)하는 이치가 우리의 인체를 비롯하여 생활 전반에도 심대하게 영향을 미치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시간의 향수에서 인생의 의미를 아로새길 밤의 속성은 한층 속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린이의 무의식 작용의 근거가 될 태아 본능의 기억으로 추산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이란 속성에서 잠재된 생명이 원대한 지성을 갖추어가는 원형이라는 점에서도 밤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밤의 묘미가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밤은 새 생명이 발현되는 성스러운 터전이라는 측면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밤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과 또 다른 측면에서 밤이 주는 유훈이란 몸과 마음에 축적된 어제의 감정을 새롭게 전환하면서 욕망의 틈을 좁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익숙해진 지난 경험과의 결별이라 할까요. 아무리 돌이켜도 오지 않을 어제를 비교하여 ‘오늘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특유의 덕목으로 내심을 다진다면 삶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역량에서 관조해보면 밤의 가치는 인간의 성정을 진화하게 하는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을 잇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아마 그것은 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잠자는 동안만큼은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의 굴레에 동요됨이 없이 평온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은 밖으로 향하던 에고의 잔재를 안으로 수렴하는 가장 의미 있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처럼 24시 철야 성으로 밝힌 대소 도시의 불빛이나 소음을 보고 듣노라면 밤을 고요함에 젖어 들 시간이라고 평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쉰다는 의미로서 밤과 잠이 가지는 소중한 담론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만약 우리가 잠이 점점 없어져 가거나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는 사유를 적절히 밝히지 못한다면 문명의 틈새에서 가장 치명적인 고통으로 남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군다나 24시로 대변되는 생리 생태에 역행하는 밤 문화는 음주와 가무의 기운으로 퍼진 나머지 심리적인 허무감까지 파생하게 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또한, 소위 ‘벌이’로 연결되는 투 잡 (too job)의 집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삶의 기준을 잡아주는 역할에서 밤이나 잠이 상징하는 의미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이제 우리는 어떻게 밤을 보내야 하며 어떻게 자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인간의 정서를 새로이 정립한다는 차원에서 조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공도 시대 변화의 추이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시는 어르신의 덕담에서 들려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네에서 이른 아침 어르신을 만날 때면 “밤새 잘 잤는가?” “편안히 잘 주무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을 나눕니다. 밤잠을 잘 잤느냐고 문답하는 것을 엄밀히 관조해보면 어제와는 완연히 다른 오늘을 새롭게 맞이하라는 품격 높은 유훈이 담겨 있습니다. 잘 잠으로서 더욱 상쾌하고 가뿐한 몸으로 오늘을 다시 시작하라는 엄정한 가르침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잠과 깨어있음의 상반된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자는 행위에 대하여 여러 일반적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잠에 관한 내밀한 정서를 밝히는 데는 아무래도 자연한 이치에 맞게 풀어가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한 이치란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품성을 닮는 것입니다.

자연한 이치의 기로에서 완벽한 잠, 잘 잔 잠이란 사실 완벽한 활동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본다면 내 생각과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나의 마음을 순간의 경험과 일체감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잠에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비록 순간마다 엮어지는 대소 경험 하나가 나와 연결된 실체라는 점을 인정하는 과정이 복잡 미묘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을 다스리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숙면법입니다.
 그야말로 이날 이때 이 순간 완벽한 잠을 자기 위한 심오함으로 자신을 가꾸어 나갈 때 비로소 완전한 밤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맞이할 밤, 이제 그 진지한 숙면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가 내디뎌야 할 행보는 무엇인지 깊이 통찰해보는 것도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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