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역 부근 방송회관 10층에서 류지열 한국PD연합회 회장을 만났다. 류 회장은 남해군 서면 정포마을에서 태어나 남해제일고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1994년 KBS에 입사해 <추적60분>, <세계는 지금>, <역사스페셜>, <소비자리포트> 등을 연출했다. <KBS 스페셜-쌍용자동차 해고자 심리치유 8주의 기록 "함께 살자">(2011), <KBS 파노라마-카레이스키 150>(2014) 등을 연출해 한국PD대상, 휴스턴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금상,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했다.

-PD연합회는 어떤 조직이며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
“PD연합회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인 그해 9월5일 방송단체로는 최초로 결성된 유서 깊은 조직이고 방송노조의 시금석이 된다. 현재는 53개 회원사 3,000여명의 PD들이 가입되어 있는 한국 최고의 방송종사자 조직이다. 방송문화 창달과 국민의 알권리, 표현의 자유 실현을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달의 PD상, 한국PD대상, 한중일PD포럼, 그리고 다양한 심포지엄 및 세미나를 통해 한국 방송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월 취임사에서 ‘방송의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성과가 있나?
“방송이 이전 정권 10년간 너무 많이 망가지고 시청자의 신뢰를 잃었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회복되기는 어렵다. 지상파방송 3사를 중심으로 적폐를 청산하고 방송을 정상화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하다. 그동안 방송환경이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시청자의 눈높이를 따라잡으려면 PD들은 정말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PD연합회는 이런 변화하는 방송환경을 잘 수용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방송을 제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권력의 향배에 따라 부침이 많았다. 어떤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가?
“가장 시급한 것은 제도적으로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것도 결국은 정치권, 특히 국회가 결정한다. 지금처럼 여·야가 주요 방송사 이사를 모두 결정하고 이사회를 통해 사장을 좌지우지하는 방식으로는 갈등이 끊이지 않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가 입게 될 것이다. 공영방송 이사회를 국민을 대표하는 각 계층의 대표들로 구성해야 한다. 농민회총연맹이 농민대표를 내고, 노총이 노동자 대표를 내어야 하며, 국회도 국민을 대표하는 가장 큰 집단이니깐 여야가 이사를 추천할 수 있지만 적정 몫만 추천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공영방송 이사회가 명망가 중심이 아닌 진정한 국민대표기구가 되어야 시청자의 관점에서 방송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자본권력으로부터 방송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절실해지고 있다. 제작비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는 공영방송조차도 대자본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그동안 KBS PD로서 많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PD가 된 이후 25년 동안 PD연합회장을 하는 지금 외에는 줄 곧 역사·시사다큐멘터리 중심으로 제작을 해왔다. 특히 근현대사의 의병투쟁, 독립투쟁을 많이 제작했는데 한국독립투쟁사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1920년대 연해주 무장독립투쟁사를 다룬 <잊혀진 전쟁, 1907 대한제국을 사수하라>,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 장군>, <카레이스키 150 3부작> 등을 만들 때는 역사에서 지워진 좌파독립투사들에 대한 죄송함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소비자 리포트>라는 시사프로그램을 2년 넘게 제작한 적이 있다. 이 프로는 한국방송에서 대자본의 횡포를 고발할 수 있는 드문 방송이었다. 제작 당시 기업고발방송을 하면서도 기업로고를 가려주던 관행을 깨고 문제 있는 대기업은 무조건 상표를 공개해버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국가권력을 상대로 싸우는 것보다 자본권력과 싸우는 것이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작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가?
“여전히 한이 되는 프로그램은 2004년에 방송한 일요스페셜 <KAL858기의 비밀 2부작>이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기간에 북한공작원 김현희에 의해 폭파되었다고 하는 KAL 858기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였는데 안기부의 수사발표문과 김현희의 재판진술 내용을 바탕으로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정밀 검증한 작품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검증 결과 김현희의 진술, 안기부의 수사기록 모두가 진실이 아니었다. 김현희가 출발했다는 평양발 모스크 비행기는 아예 그 시간대에 그 노선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헝가리 비밀아지트는 공립유치원이었고 김현희 일행이 비행기서 내린 후 2박3일간 바레인 현지 호텔에 투숙하고 있을 때 현지 대사관 대한항공 직원이 찾아가고 전화를 해도 탈출하지도 않았다. 코미디는 폭파된 비행기 안에 있던 구명정속의 공기펌프가 폭약에 맞아 박살났다고 했는데 정작 펌프를 감싸고 있던 고무구명정이 흠집하나 없이 깨끗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이 구명보트와 나중에 발견된 기체의 잔해에 대한 국과수의 정밀 감정 보고서를 단독으로 입수하였는데 놀랍게도 이 보고서에는 폭파된 비행기 잔해들이 폭약에 의해 폭파된 흔적이 전혀 없다고 되어 있다. 당연히 이 보고서는 언론에 공개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수사결과로는 김현희는 절대 KAL858기 폭파범이 될 수가 없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PD생활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방송이었다.”

-남해에서는 언제까지 사셨나? 이력을 간단히 말씀해달라.
“남해에서 나서 1985년 남해제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할 때까지 자랐다.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남해에서 자랐기에 봄바람과 가을바람의 색깔, 아침공기와 저녁공기의 냄새가 어떻게 다른지, 등굣길 발등을 적시던 길섶 풀잎의 이슬촉감, 하굣길의 겨울파도, 여름햇살에 논에서 벼이삭 자라는 소리, 길쌈, 밭일 하던 어머니들, 쟁기질하던 아버지들의 근육과 소의 콧김이 진하게 제 몸속에 남아있다. 그런 고향의 풍경과 정서가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지금은 노령의 어머니와 서울서 같이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구사하는 남해 말을 배우고 연구하는 맛이 아주 재미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신음하는 남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남해는 꽃밭등 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데 지천에 꽃피고 풍경이 부드럽고 아름다우니 사람살기는 참 좋은 곳이다. 남해가 지금 대규모 공단이 들어설 가능성도 없고, 그럴 바에야 문화남해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다랭이마을, 독일마을, 남해스포츠파크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아주 바람직한 정책이며, 이성복 시인의 시 <남해금산>의 그 몽롱하고 설화적인 사랑느낌, 곽재구 시인의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의 첫 여행지인 미조포구, 미륵이 도운 포구라니! 얼마나 멋진가? 이처럼 남해는 감성을 돋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들 문학작품을 잘 활용하여 그리운 남해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남해유배문학관도 밋밋한 조선시대 자료 몇 점두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유배관련 자료와 인물들을 전시해서 세계적인 유배문화관으로 탈바꿈 하는 것도 생각해볼만 하다. 넬슨만델라 유배, 나폴레옹의 유배와 탈출, 시베리아 데카브리스트 유배역사, 김옥균의 일본유배 흔적, 영화 빠삐용까지 얼마든지 매력적인 남해유배관으로 바꿀 수 있다. 남부 내륙고속철도가 진주를 거쳐 통영 거제로 갈 예정이라던데 생각을 바꿔볼 수 있다. ‘KTX 타고 미조항으로’ 얼마나 멋진가? 한갓진 시골포구로 KTX가 들어오고 유라시아로 이어질 대륙열차를 타고 전 세계서 미조항 멸치회를 먹으러 오는 관광객들! 현재 호남으로 가는 KTX도 전주에서 분리되어 앞 차량은 목포로 가고 뒷 차량은 여수로 간다. 거제행 KTX 열차가 진주에서 몇 차량만 분리해서 남해로 오면 그야말로 은하철도 999! 멋진 보물섬 남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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