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년 만의 폭염도 절기 앞에선 맥없이 꼬리를 내리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 손에 책을 들게 하는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남해의 수려한 자연풍광은 전국에 많은 문인들을 배출했고, 고향은 글의 바탕을 이루는 훌륭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가을의 문턱에서 삼동면 출신 노옥분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작가는 2권의 시집과 1권의 산문집을 펴낸 수필가이며 시인으로서 부산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편집자 주)

▲ 작가님 작품세계의 배경이나 원천은 어디서 나오시는가요?
= 고향 그리고 바다가 글의 바탕입니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저는 고향이 남해라는 게 참 싫었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언니의 선물로 월간《여학생》을 쭉 구독했었어요. 눈만 뜨면 만나는 바다와 산과 황톳길은 책 속 도시와는 너무나 많이 달랐고 ‘나는 왜 하필 이런 깡촌에서 태어났을까’를 화두처럼 붙들며 시골 탈출을 꿈꾸며 자랐어요.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저를 책 속에 빠져들게 했던 것 같아요. 현실탈피를 도울 수 있는 건, 독서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짬만 나면 읽을거리를 들고 바닷가로 달려갔어요. 검정모래와 몽돌밭을 지나 고인돌처럼 들린 바위가 있었는데 그곳이 혼자만의 아지트였어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무렵부터 우리 마을(양화금)에는 부산가톨릭대 학생들이 해마다 농활을 나왔었고, 그때마다 세계명작과 한국고전 등 책 선물을 잔뜩 가져 왔으니 제겐 큰 행운이었지요. 아버지께서 마을의 일을 맡아 하셨기에 마을회관에 꽂힌 책은 모두 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때부터 문학의 싹이 발아되지 않았나 싶어요.
▲ 창작의 어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시와 수필 중 어느 분야가 더 와 닿습니까?
= 첫 작품집은 시집 『네가 없는 날이면 너를 만난다』(2009년)입니다. 수필(1995년)로 문단에 데뷔해 산문을 주로 썼었지만, 시집을 먼저 발간하게 되었어요. 수필 보다는 함축과 은유로 나를 감추기가 쉬워서 그랬을 겁니다. 문단에 입문하기 전, 모 FM방송 클래식 프로그램에 6개월 동안 매주 1회씩 콩트가 방송되기도 했었어요. 이름은 본명이 아닌 ‘예담’이었는데 제 이름이 촌스럽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현재 남해문인들의 친목단체인 <화전문학회> 사무국장을 비롯해 지역에서 많은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간단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 2008년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부산문인협회와 부산시인협회, 사하문협, 가톨릭문협 등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가입은 늦었으나 가는 곳마다 사무국장·편집국장 등을 맡기는 바람에…. 지금은 남해출신 문우들로 결성된 ‘화전문학회’ 사무국장을 연임하고 있으며, (사)봉생문화재단 소식지《봉생문화》,  부산광역시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발행하는《녹색도시 釜山》, 《사하문학》·《화전문학》 편집장 일을 맡고 있답니다. 편집과 교정을 거쳐 문화소식지와 문예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요.
▲ 작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거나 자부심을 가졌던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2010년부터 현재까지《봉생문화》誌에 ‘노옥분 시인의 감성데이트’ 가 연재되고 있어요.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인은 물론이요, 클라이머와 서퍼, 성직자와 장인(匠人) 등 40여 명을 만나 그들의 감성적 일상을 조명하는 일은 제 일생에 가장 소중하고 값진 순간입니다. 그들에게는 내적 열정과 겸손이라는 미덕이 늘 공존하지요. 2014년 발간한 산문집『깊은 나무 푸른 이끼』는 그동안 연재한 ‘감성데이트’를 엮은 책이구요, 내년쯤 제2집을 엮을 예정입니다.
▲ 근래의 기억 중 제일 선명하게 남은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 <봉생문화> 誌에 ‘여행’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많은 답사 중 2015년 다녀온 군함도와 지난 연말연시에 걸쳐 탐방한 중국 용정과 백두산 인문기행은 잊기 못할 시간들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주변국 강제징용의 아픔을 품고 있는 군함도(하시마)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직후의 답사라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답니다. 

반면에 지난 연말과 새해, 선물처럼 주어진 ‘윤동주탄생100주년기념’ 한중일 행사와 ‘백두산인문기행’은 참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의 초대로 우리나라 30명 중 제가 동행하는 영광을 누렸으니 그야말로 행운이었던 셈이지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의 길을 따라>-청년 동주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시인의 고향집이 있는 명동촌과 용정중, 묘소 참배를 마친 후에는 한중일 논객들의 ‘윤동주 그의 시대’ 토론과 작은 공연을 가졌어요. 여기에 삼대가 복을 지어야 만날 수 있다는 순백의 영산 백두산 천지의 위용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머잖은 날, 중국이 아닌 조국의 땅을 밟으며 그곳에 오를 날을 염원하며 5박 6일의 감동적인 일정을 마쳤답니다.
▲ 작가를 지망하고 있는 인생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나 조언 한 말씀해 주십시오. 
= 부끄럽습니다. 고향에 살면서 고향이 싫어 탈출을 꿈꾸었던 필자가 고향 후배들께 남길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말씀드리자면, 남해가 지닌 해안도로의 평화로운 풍광과 신록의 청안(淸安) 더불어 유배지 현인들의 족적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고향은 충만한 자부심입니다. 고향은 곧 시가 되고 삶의 위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곳을 탐방하면서 남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고장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쓰는 사람이 많은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작가로 먹고 살기는 힘들지만 작가가 되기는 쉬운 세상이지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만나는 나와의 감성데이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이든, 슬픈 것이든, 추하든, 아름답든 가리지 말고 적어보십시오. 시간 쌓이면 그것은, 나만의 자서전이 되고 자부심이 될테니까요. 무상으로 주어진 우리의 고향 ‘보물섬 남해’처럼 말입니다.  
부산역 모 카페에서 만난 노옥분 작가는 그동안 <감성데이트>를 연재하며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인, 성직자 등 여러 거목들을 취재해 온 편집장이라는 커리우먼의 분위기 보다 잘 알고 지낸 고향 이웃 언니처럼 따뜻하고 편안했다.
맡고 있는 직책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면 공부를 좀 더 하면서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던 그녀. 이 가을, 아직도 소녀의 수줍은 웃음을 간직한 그녀의 심상이 작품에 어떤 빛깔로 묻어나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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