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카바디 종목에서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건 남해군 출신 엄태덕(35) 선수가 아시안게임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한 뒤 지난 27일 고향을 찾았다. 
엄 선수는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된 장충남 군수와 만나기 전 잠시 짬이 난 시간을 이용해 남해실내체육관에 있는 남해군체육회 사무실에서 지역언론사 기자들에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할애했다. 
엄 선수의 표정은 밝고 당당했으며 미남이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운동복을 입은 상태에서도 몸매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3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카바디 남자대표팀(감독 조재호)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카바디 종주국이자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 번도 패권을 놓치지 않은 인도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엄 선수는 대표팀의 맏형이자 플레잉코치(코치이자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선전을 이끌었다. 이 일은 이번 아시안게임 초반전의 탑 뉴스거리로 전해졌다. 인도 국민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우리 국민들은 카바디 종목과 대표선수들을 새롭게 알아보기 시작했다. 
엄 선수는 “VIP인 대한체육회장과 선수촌장이 경기장을 찾아와 선수들에게 특별한 격려를 전하기도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대표팀은 그런 기운을 몰아 준결승에서도 세계 정상급인 파키스탄을 꺾었다. 안타깝게도 결승전에서 만난 이란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알려지게 된 카바디 대표팀의 스토리는 연일 언론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인도 프로리그팀에 진출해 뛰고 있는 이장군 선수의 경우 인도에서는 스타로 추앙받고 있는 이야기도 알게 됐다. 엄태덕 선수도 이번 대회를 통해 ‘장한 남해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남해군출신 1세대 카바디 국가대표였던 류홍섭 선수의 이름도 떠오른다.  엄 선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아직 변변한 실업팀 하나 없다고 한다. 그나마 5~6개의 대학팀이 만들어져 겨우 300명 정도의 선수층이 형성된 수준이라고 한다. 전용경기장 하나 없어 동아대체육관을 빌려 틈틈이 눈치를 보며 운동해온 국가대표팀이 종주국인 인도를 이길 수 있었다니! 
엄 선수는 남해읍 선소마을 엄승현·류완심 부부의 1남1녀 중 장남으로 남해초, 남해중, 남해제일고를 졸업했다. 대학생일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지만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군복무 후에는 카바디로 전환했다고. 엄 선수는 2009년 4월 카바디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된 뒤 지난 2010년 제2회 한국실내카바디경기대회와 2012년 제7회 한국카바디선수권대회에서 잇따라 우승을 차지하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대한민국 남자 카바디 대표팀의 간판선수로 활약해왔다. 엄 선수는 국가대표팀 소집이 없는 기간에는 남해에서 비타민휘트니스센터 하경태 관장의 도움을 받아 몸을 만들어온 이야기도 곁들어 들려주었다. 보디빌더 남해군 대표선수로 도민체전에 참가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다.   
엄 선수는 인터뷰 후 남해군청을 찾아 장충남 군수를 만났다. 장 군수는 “장한 남해의 아들이 왔다”고 따뜻하게 맞이하고 격려하면서 환담했다. 엄 선수는 이 자리에서 “군민 여러분과 체육회의 응원과 관심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도 남해인이라는 명예를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엄 선수는 카바디 종목에 대해 피구경기장에서 공 없이 하는 럭비경기를 연상하면 된다고 말한다. 술래잡기와 격투기의 특성을 섞은 스포츠로 7명씩으로 이뤄진 두 팀이 코트에서 공수를 주고받으며 겨루며 경기 내내 치열한 몸싸움을 벌인다는 것이다. ‘레이더’라 불리는 공격수가 상대 코트에 들어가 수비수를 터치하고 돌아오면 공격팀이 점수를 획득하는 반면 수비수가 상대 레이더를 제압하면 수비팀이 점수를 얻는 방식이다. 남자는 1990년, 여자는 2010년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이 됐고, 올림픽위원회도 곧 정식종목으로 채택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