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예술촌과 인접한 독일로 76에 빌라 콜로니아가 있다. 노란 외벽의 건물은 다른 곳과 달리 그 집만의 특징이 뚜렷이 보인다. 도로에서 보면 분명 넓고 네모진 2층 건물인데 아래에서 보면 쭉쭉 뻗은 성당처럼 날씬하게 보이는 3층 건물이다. 집을 들어서는 입구에는 이 집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독일 국기의 삼색을 테두리로 감싼 채 걸려 있다. 거기에는 유길자 대표가 걸어온 이력과 빌라 콜로니아에 대한 배경이 독일어와 한글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1966년 22세 때 순천간호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2개월을 조산원에서 트레이닝한 후 그해 4월부터 독일 쾰른 노트라인 베스트팔렌 하겐시 스포츠병원에서 근무를 했다. 그 당시 지금의 남편이 다리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을 하게 되었고 자주 대면하면서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 시작되어 24세 때 결혼을 했다. 독일 본 대학 학생이었던 헬무트 베르너 씨와 결혼을 하고 독일 쾰른 노트라인 베스트팔렌 쾰른대학병원으로 옮겨 심장전문 수간호원으로 계속 근무를 했다. 이곳에서 25년 동안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아 1991년 병원장으로부터 장기 근무 감사패도 받았다. 그녀의 나이 55세 때였던 1988년에는 할프락티카 자연요법(자연치유사=한의사)자격증을 취득하여 1991년 한의원을 개원하여 2005년까지 진료를 했다. 3년 동안 공부하여 만혼의 나이에 한의사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매스컴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자세히 보도되었다.  
독일에서 1남 1녀를 두고 시부모와함께 살면서 5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는 중에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사계절이 오십 한 번 바뀌는 동안 고국을 두 번 방문하게 되었는데, 1972년 아버지 환갑 때와 2002년 독일마을에 대지를 분양받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안목이 남달랐던지 전망이 좋은 곳에 우뚝 자리 잡고 있었고 집안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그 당시 땅을 사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나 직접 여기로 온 사람들은 모두 41명이었다. 2005년부터 5년 동안 독일에서 직접 공수해온 친환경자재로 집을 지으면서 힘든 점이 많았지만 독일마을이라는 취지에 어울리게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재부터 굵직한 건축자재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공을 들였다. 집을 짓기 위해 남해를 오가야 했기에 그동안 하던 의료업은 자연스럽게 접어야했다. 그녀가 한국에 온 것을 알고 모교인 순천청암대학(순천간호학교)에서는 명예간호학전공전문학이라는 학위를 수여했다. 집이 완공된 해인 2010년 제1회 첫 ‘옥토버페스트’축제가 개최되었고, 유 대표는 그해 12월말 빌라콜로니아에 입주를 했다.
현재 73세인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1966년의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머리에 하얀 캡을 쓰고 하얀 가운을 입은 귀엽고 앳된 그녀가 고국을 떠나면서 눈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반세기의 독일 생활이 몸에 배인 그녀의 몸짓에서 많은 언어와 이국의 향기가 간간이 전해졌다. 독일 커피와 비스킷이 놓인 테이블을 앞에 두고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중에 독일어를 삼키고 우리말을 뱅그르르 입안에서 만들어내는 모습을 읽고 있는데, 3년 전 KBS방송국에서 촬영을 왔을 때 한국말이 잘 안 나와 인터뷰할 때 애를 먹었음을 전했다. 이해가 되고도 남을 부분이었다. 독일 남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그녀는 조금도 빈틈이 없어보였고 어떤 직업정신으로 살아왔는지를 잘 알게 했다. “그동안 내가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어디에 찔린 듯 움찔했다. 자의든 타의든 고국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모든 것을 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을 그녀의 힘든 여정이 마치 연어가 태어난 모천으로 힘겹게 거슬러 오르는 과정과 겹쳐졌다.  
이곳에 처음 입주했을 때 독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바다를 볼 수 있어 아침에 눈만 뜨면 창너머로 바다를 열심히 음미했다. 사면으로 난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짙은 초록이고 배란다 쪽으로  난 창으로는 물건항 방파제가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환상의 바다풍경이 들어온다. 필자가 찾아간 날은 바다가 화창하지 않고 해무에 가려져 약간 먹빛이었지만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는 타국생활을 충분히 보상하고 품어주는 듯했다. 바다만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개운함이 있어 바다가 닳을 정도로 보고 또 봤다는 그녀의 표정에서 독일집의 넓은 정원은 싹 잊은 듯했다. 
고향은 순천이지만 남해를 사랑하게 된 그녀는 2014년 남해파독전시관 개관식 때 유물을 기증하였고 독일대사 롤프마파엘과 정현태 군수로부터 상장을 받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남해파독전시관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2018년 1월까지 노인 회장을 역임했다. 2018년 파독광부간호사 추모공원이 설립되어 모두 환영을 했던 일을 소중히 여기며 독일과 한국을 오가면서 양쪽문화를 교류하며 생활하고 있다. 실내는 독일 풍경을 담은 액자들이 곳곳에 걸려 있어 현지의 멋과 맛을 느끼며 그 나라의 문화를 매만지게 한다.
2010년에 독일마을에 건축된 빌라 콜로니아는 아름다운 독일 쾰른을 생각하며 지은 집이다.  오리지널 독일식 펜션에는 수건‧칫솔‧드라이기와 같은 생활용품들을 비치해두어 분실도 더러 됐지만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빌라 콜로니아에는 헬무트 베르너 씨와 베르너 유길자 씨가 집 안팎을 쓸고 다듬고 꾸미고 있어 언제나 손님들이 만족을 하며 찾는다. 펜션으로 완공하고 5년 동안 고객도 많이 생겼고 손님들이 남긴 인상 깊은 후기 글도 많이 모였다. 유난히 청결하고 빛이 나는 이 집을 보면 볼수록 계속 머물고 싶어진다.
주변을 산책하기 좋아하는 그녀는 독일마을행복공동체영농조합법인 회원으로 파독전시관 옆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소시지와 맥주를 팔고 있으며 4년 전 6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파독전시관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해설을 해주고 있다. 독일에 한글사전은 있었지만 한글을 배울 시간이 없었다는 그녀는 요즘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신기한데다 새로운 말들을 익히는 재미까지 더해져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지금 이 자리에까지 있게 해주셔서 고사이당크(하나님께 감사하다), 사이당케(감사하다)”라는 단어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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