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농산물(마늘‧양파)지키기운동본부를 창립하고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김 대표는 15일 동안 정해진 일정을 소화해 내기 위해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동분서주했다. 필자가 만나러 간 날은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황금 같은 시간을 뺏고 말았다. 
상석을 거부하고 마주앉은 김 대표는 차분한 어조로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지혜로우면 이 세상 어디에서든 잘 살 수 있다. 거기에 봉사와 희생을 더하면 더 좋아진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것은 책에서 얻은 형식적인 말이 아니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체득한 진리를 한 점도 빠뜨리지 않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힘 있는 말이었다.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을 하고 있는데 지난 7월 11일에 출범했던 우리농산물(마늘‧양파)지키기운동본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정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최고로 존중하고 보호를 해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모두 땅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먹고 산다. 질 좋은 농산물을 잘 지어 공급할 수 있도록 가격 폭락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올해는 마늘과 양파 작황이 좋고 물량이 많아 가격 폭락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조화로움이 중요하겠지만 농산물도 적절한 재배로 인한 황금비율이 절대 필요하다. 어떤 농산물을 생산해내도 농민의 노력에 부합하는 소득을 올리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과유불급이 되는 경우들이 많아 죄없는 농민들만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눈을 뜨면 농산물 생각부터 하는 김 대표는 이번에 마늘과 양파 가격을 적절히 조율하지 못하면 다른 농산물도 줄줄이 도미노현상을 겪게 되므로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는 파급력을 예로 들면서 농민들의 한숨소리를 더 이상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역을 이끌어가는 지자체장들이 농민들의 고민을 잘 숙지해야 하고 통관업을 하는 세관에서는 수입농산물의 수급조절을 위해 농작물에 대한 검역을 더 엄격하게 해서 농민을 위한 거름망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함도 강조했다. 
무엇이든 우리 삶의 뿌리인 농촌을 위해 절실한 부분이 있을 때는 앞장서서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 대표는 누가 뭐래도 농민의 자손이었고 농민의 대변자였다.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농민을 대하고 농민의 편에 서서 농민의 입장을 제일 먼저 고려한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도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고 과감하게 거절도 하는 경계가 뚜렷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조화로움을 중요시하며 너무 넘쳐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된다는 과유불급을 힘주어 언급을 한다. 봉사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는 그는 대체로 바깥 활동이 많아 남해에 머무는 시간보다 전국으로 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아침 5시에 기상을 하면 오전 9시까지 각 단체나 개인에게 전화를 하여 오늘의 동향을 살피고 정보를 공유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계획을 세운다. 기상하자마자 휴대폰을 붙잡고 몇 시간이나 통화를 한다는 것은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른 통화를 시작으로 사람을 만나고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김 대표의 일상은 거의 반복적이었지만 지치지 않고 또 새로운 힘을 생산해냈다. 
마늘주산지인 우리 남해가 옛날에는 전국에서 7%의 재배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요즘은 2%도 채 안 돼 걱정이라는 그는 현재의 재배 면적보다 10%정도는 더 늘려야 옛날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덧붙여 앞으로는 우량종자의 양도 늘리고 생산량도 높여 농심이 변치 않고 건강해지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살았던 그는 농민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다. 40대 때 농촌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농촌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미래에는 우리 농촌이 정말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농민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분명 농촌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김 대표는 농민과 농촌을 위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사)한국농산물냉장협회 회장 역임, 1996년부터 2018년 현재 남일영농조합설립 대표,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전국냉장협회마늘대책위원 역임,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전국 우리양파지키기 부위원장 역임, 2014년부터 현재, 우리농산물지키기운동본부공동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오로지 농촌과 농민을 위해 봉사하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하루에 15톤에서 17톤의 깐마늘을 전국으로 보내기 위해 식자재공급처에 냉동탑차 2대를 매일 가동시킨다. 사무실에 상주하는 직원과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남일영농조합법인의 한 가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종사하게 한다. 남해마늘연구소와도 블랙갈릭(흑마늘엑기스)을 연구하고 제품으로 생산하여 공동사업체를 이끌어가고 있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그는 용서를 받아주는 사람이 최고라는 말을 의미심장하게 들려준다. 
어디서나 농민과 친한 그는 농산지에서 직접 농민을 만나면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농산물을 좋은 가격에 줄 때는 기분이 좋은데 형편없이 내린 가격에 줄 때는 정말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어디에서나 살아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들렸다. 일례로 얼마 전에 있었던 우리농산물(마늘‧양파)지키기 운동본부가 결성된 것만 보아도 그 점을 잘 알 수 있었다. 정부의 농산물 가격 정책 원점재검토, 근본대책수립촉구와 우리농산물(마늘‧양파)을 지키기 위해 “식용수입마늘 종자로 사용하면 붉은불개미‧외국해충으로 우리 농토 멍든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우리농산물(마늘‧양파)지키기 운동본부를 출범시키는 역사의 결과물을 또 탄생시켰다.
‘정직‧신뢰‧화합’이라는 사훈과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돼야 하고 사원들의 행복 추구가 제일이다’는 경영이념을 365일 품고 사는 김 대표는 “어느 날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바보가 돼 보니 정말 좋았다”고 고백했다. 이 말 속에는 언제나 봉사와 희생이라는 단어를 놓지 못하고 열정적으로 살다가 어느 날 잠깐 그것을 내려놓았을 때 느낀 해방감을 표현한 말이라고 본다. 어떤 경우에도 본분을 다하는 김 대표의 삶이 대단히 크게 다가오고 존경스럽기까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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