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기위해서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는 것. 즉, 달을 보라고 했는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 끝을 본다는 비유이다. 다시 말하면 본질을 깨우쳤으면 번외(番外)의 것은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며, 허례허식이나 부정적인 저항감으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보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가락이 향한 곳에 따라 달을 보게 된다. 하지만 달을 보라고 달 쪽을 향해 손짓을 했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을 본다면,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 형식이나 수단만 보는 겪이다. 의도적이든 역량이 부족해서이든 정작 실상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언행을 일삼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보게 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본다'는 것은 목표를 주시하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이나 처지보다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알려주기도 하는데.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일의 '달'에 올인 하는 집중보다, 남의 일이 더 생각나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일이라는 '손가락'에 관심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견월망지'의 출전(出典)은 대승불교 경전 능가경(楞伽經)에서, '우자(愚者;어리석은 사람)처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손가락만 관찰하고 달을 보지 못하는 구나, 이름과 개념에 집착하여, 나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구나.' 쉬운듯하면서도 상당히 오묘한 뜻이 담긴 성어인 듯하다. 어느 시어머니가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밥을 먹을 때는 위생에 조심해야 되니 밥그릇을 항상 깨끗이 닦아야 한다." 그러면서 밥그릇에 조금이라도 얼룩이지면 야단을 쳤다. 며느리는 심성이 고왔으므로 어머니 말씀을 명심하고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밥상을 들고 방으로 갔는데, 밥그릇에 약간의 얼룩이 있었다. "아이 구! 어머니가 보시면 야단나겠다." 깜짝 놀란 며느리는 어머니기 보시기 전에 밥그릇의 얼룩을 닦으려고 했지만, 행주가 보이지 않자 마침 방 걸레가 있기에 그것으로 그릇을 닦았다. 며느리는 한 숨을 쉬면서 "휴 이제 깨끗해 졌네." 과연 그럴까, 시어머니는 청결을 강조했는데, 오히려 방 걸레에서 갖가지 병균이 오염시켜 가족의 건강을 헤칠 수 있는 것은 몰랐을까?  며느리는 실제적인 청결이 아닌 형식적인 청결을 찾다보니 오히려 오염이라는 큰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부처님 되는 길도 마찬가지다. 노(老)스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음을 닦기 위해 불경을 열심히 읽고 기도하라고 했더니, 제자는 마음을 닦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불경만 읽었다. 그때 노스님께서 외쳤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 끝만 보고 있나?" 부처가 되는 한 방법으로 불경을 읽고 염불을 하라고 했더니 부처의 길을 포기하고, 엉뚱한 형식을 따르며 미몽(迷夢)에 빠진 사람들에게 던진 교훈이다.  
 자신의 진심을 왜곡하고 다른 형식이나 요인을 들어 본질을 흐리게 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되는데, 문제는 자기 스스로 본질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시간과 노력, 비용을 날리고 있다면 심각한 상황일수밖에 없다. 자신의 결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둔하거나 어리석고 한심한 인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어디든 '견월망지'의 사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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