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일이나 이익보다 공익을 먼저 앞세우는 것'을 말하며, '공사(公事)를 먼저하고(先公), 개인적인 일을 뒤에 한다(後事)'는 '선공후사'는  공직자와 책임 있는 지도자의 당연한 자세이다. 이 성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고위관료나 정치인들이다. 이 정신에 투철한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대부분이라 믿지만, 국민들은 이것을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구두선(口頭禪;행동이 따르지 않는 실속 없는 말)이란 것을 알고 있다.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수시로 튀어나오는 부정비리, 자기들만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이익 다툼 등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선공후사'의 유래는 중국의 사기열전(史記列傳)의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공사(公事)를 먼저하고 사사(私事)를 뒤로 미룬다는 것으로, 전국시대(戰國時代)말기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시대 인상여라는 충신이 있었는데, 혜문왕과 진(秦)나라왕과의 목숨을 건 회동을 통해, 자신을 구해준 인상여를 재상에 임명하자,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이 잘린다 해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인 염파라는 명장이 있었다. 이에 염파장군은 인상여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데 불만을 표시하는데, "나는 장수로서 늘 목숨을 건 담보로 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는데, 인상여는 단지 혀와 입으로만, 나 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를 보면 반드시 모욕을 주겠다"고 공언을 한다. 이 소리를 전해들은 인상여는 마주치기 않기 위해 몸을 피해 다녔다. 이런 인상여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추종자들이 "우리가 나리를 섬기는 이유는 나리의 높은 절개와 강인한 충성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리는 염파장군보다 지위가 높음에도 거짓모함을 일삼은 염파를 피할 뿐입니다. 이는 부끄러운 일로 이제 우리는 나리 곁을 떠나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인상여는 "내가 진왕(秦王)을 욕보인 사람인데 염파장군을 두려 워 하겠는가? 막강한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파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싸운다면 진나라의 침략을 돕는 일이 될 것이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것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위해 피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죄를 청하며 깊이 사죄했고, 인상여와 염파와의 깊은 우정은 후세까지 이어지게 됐다. 
 세상을 살다보면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다. 먼저 할 일은 개인보다 여럿이나 모두를 위한 일이다. 개인을 앞세운다면 자신만의 욕망을 위할 뿐이다. 특히 정치가나 공직자는 선(先)․후(後) 할 일을 엄격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해서라도 자신의 영달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매우 패역(悖逆)하고 부도덕한 것이다. 여느 때보다 '선공후사'의 정신이 우리 정치에 필요한 시기이다. 작금의 철새정치와 개헌 정국 등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온통 당리당락만을 내세우는 선당후사(先黨後私), 선사후사(先私後私)뿐이다. 선공(先公)은 고사하고 후공(後公)조차 찾아볼 수 없다. 공(公)이 실종된 정치 상황 속에서 인상여같은 선공의 정치인을 고대하고 있다. 또한 '사욕을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써일한다'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을 공직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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