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백성에게 도움이 되어 백성이 기뻐하는 정책을 펴야한다'라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는 인의(仁義)와 덕(德)으로 다스리는 왕도(王道)정치를 주창하였는데, 그 바탕에는 백성을 정치적 행위의 주체로 보는 민본(民本)사상이 깔려 있다고 본다. 
여민동락은 중국 맹자(孟子) 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 하편(下篇)에 나오는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라는 내용에서 유래하였다. 같은 성어로 여민해락(與民偕樂)이 있다.
맹자는 양(梁)나라 혜왕(惠王)에게 아뢰기를 "지금 왕께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백성들이 그 종과 북, 피리소리를 듣고는 모두 골머리를 앓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우리왕은 음악을 즐기면서 어찌하여 우리를 이 지경에 까지 이르게 하여 부자(父子)가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고, 형제와 처자가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가 하고 불평하며 말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또한 왕께서 이곳에서 사냥을 하는데 백성들이 행차하는 거마(車馬)소리와 화려한 깃발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원망한다면, 이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맹자가 다시 반대로 '왕께서 여기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종소리 북소리 피리소리를 듣고 모두들 기뻐하며 희색을 띄고 반색을 하면서 '우리 왕께서 저렇게 음악을 잘하고, 사냥을 잘하는 것은 질병이 없고 건강하다는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그것은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곧 왕이 백성들에게는 고통을 주면서 자기만 즐긴다면 백성들이 반발하겠지만,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면 왕이 즐기는 것을 함께 기뻐할 것이라는 말이다.
 여민동락을 여민락(與民樂)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아악(雅樂)의 이름이기도 한데, 여민락은 본래 정치지도자가 여유 자원을 가지고 문화예술 활동을 벌이면서 백성들과 쾌락을 누린다는 뜻이다. 맹자의 사상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위의 내용과 같이 맹자는 양나라 혜왕, 그리고 제나라 선왕(宣王)과의 대화 속에 음악과 관련된 여민동락, 여민해락, 독락(獨樂)등이 나오는데, 여민동(해)락은 경제적 부(富)를 일군 백성과 함께 쾌락을 누리는데 쓰이며, 독락은 자원을 순전히 개인적 사치를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당연히 인민들은 여민동락의 지도자를 희망하고 독락의 지도자를 미워한다. 그래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 백성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는 여민동락을 추구할 것이다. 여민락은 세종대왕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바탕으로 창제(創製)한 음악과 노래, 춤, 등 종합공연예술 물(物)로, 궁중음악(宮中音樂)의 '봉래의(鳳來儀)' 가운데 한 곡(曲)이다. 맹자의 여민동락에서 유래하였지만 여민락도 세종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여민동락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편 지도자는 국민이 칭송하고 함께 즐거워하겠지만, 자기만 즐기고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지도자는 국민이 끌어 내리며 갈아치운다. 국민과 함께하지 못한 권력자의 최후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하고 기쁨을 함께하는 군주가 돼야 한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