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남편, 거동 불편 ‘사는 대로 살자’ 대털 인생
시어머니와 남편, 거동 불편 ‘사는 대로 살자’ 대털 인생
  • 박서정 기자
  • 승인 2018.05.0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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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번 나들이 현실 수용, 효행상·효부상 수상

2008년 10월 13일, 당시 57세였던 하옥례 씨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했다. 이장회의를 하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남편이 차와 부딪쳐 생사를 다투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가까운병원을 찾았지만 서울로 가라하여 아산병원중환자실로 바로 들어갔다. 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1년여를 옮겨 다니며 치료를 했지만 결국 정상적인 생활은 할 수 없었다. 
퇴원 후에는 부축을 받아 화장실 볼일을 보거나 겨우 기어서 해결을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한 발짝도 걸을 수 없게 되었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다. 항상 누운 상태로 몸을 뒤척이거나 천장만 바라보는 것이 남편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시어머니(102세)도 96세 때 허리시술 후에는 걷지 못하여 며느리인 그녀가 모든 것을 돌봐야했다.
필자가 남해대로 2431번길 66으로 갔을 때 그녀는 아들이 가져다 준 새조개를 까고 있었다. 어머니와 남편의 식사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중이었다. 어떤 요리를 할 것인지를 물었더니 아주 잘게 잘라서 국으로 끓이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드시게 할 생각이라고 한다. 오늘 저녁반찬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했더니 “조갯국 콩나물국 배추김치 취나물 김 어묵볶음”이라고 한다. 조개를 까면서도 웃음이 달린 얼굴을 보니 순간적으로 이 가정에는 평화로움만 가득하다는 착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96세 때 수술을 받기 전에는 집안일도 하고 농사일도 거들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지금은 100%남의 손에 의존해야 했다. 할머니의 기가 무척 셌지만 그녀의 지혜로움으로 잘못된 부분들이 차츰 개선되어나갔기에 집안에 시끄러운 일은 얼씬도 못했다. 그리고 남편이 65세 때 사고가 나기 전에는 활발하고 부지런하고 자상한 가장이었기에 그런대로 사는 데 애로사항이나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예전과 완전 딴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과거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은 없고 “사는 대로 살자”라는 생각뿐이었다.
마을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얼마나 속상할까”라는 생각으로 위로를 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여 마을 사람들이 오히려 더 당황했다고 한다. 마을회관에서도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웃음 지으니 “이 사람의 속은 과연 어떤 걸까”로 타인이 더 눈치를 살피게 된다. 친정이 삼동면인 그녀는 결혼하기 전까지 유복한 생활을 하며 부모님의 사랑 속에 자랐다. 친정어머니가 눈이 먼 할머니를 오랜 세월 동안 봉양하는 걸 보면서 자식이 어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밤인지도 모르는 할머니가 대문 밖을 나서면 친정어머니는 걱정이 되어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르곤 했다. 친할머니가 86세까지 사시는 동안 친정어머니가 효를 다하여 삼동면장으로부터 효부상과 스테인리스 식기세트를 부상으로 받았다고, 그 당시를 자랑스럽게 회상했다.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그녀가 지난 24일 “이동면 어르신위안잔치”때 이동면장으로부터 효부상을 받았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금석마을 김덕기 이장이 추천을 하여 수상을 하게 된 것인데, 4년 전에는 이미 남해군수로부터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두 사람을 돌보는 게 힘들다고 타인에게 말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일상생활처럼 받아들이며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정성을 쏟는다. 하루 세끼를 다 챙겨야했기에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하게 될 때는 가까이 사는 며느리에게 점심부탁 정도는 한두 번 했지만 어디를 나가서 일박을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 외출도 마을에서 관광을 가거나 마을에 있는 친구들 5명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잠깐 나가는 정도였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방에 누워 있던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이리저리 뒤척였고 할머니는 이상한 욕설을 했다. 치매가 있는 할머니는 “낯선 사람이 집에 물건을 훔치러 온 것으로 착각하고 그렇게 혼잣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어제 마을회관에서 풍선아트 수업을 하고 가져 온 길쭉한 풍선들이 하나로 뭉쳐 있다. 어떤 모양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물건이 신기한 할머니는 이리저리 만지면서 마치 어린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할머니 드리라고 먹는 것도 하나 더 챙겨주고 이번처럼 자기 풍선도 할머니 갖다드리라고 일부러 준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그녀는 빨간 옷을 입고 있다. 덧신도 빨간색이고 마루에 있는 모자도 붉으스럼하다. 그녀는 산뜻한 색을 좋아하기에 어느 날부터 빨간색이 좋아졌단다. “내가 빨간 색을 좋아하니까 자식들의 생활력이 강하다”고 하면서 무역회사를 다니는 딸, 크레인을 운전하는 큰아들, 마산에서 조그마한 대리점을 하는 작은아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주니 힘이 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귀여운 손자손녀들을 보는 재미가 마냥 좋다고도 한다. 
그녀의 하루일과는 대충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아침 5시 40분에 기상하면 시어머니와 남편을 먼저 챙기고 물을 떠와서 씻긴다. 집안일을 하다가 7시 30분에 아침 준비, 12시 정도에 점심 준비, 저녁은 7시에 하고 간간히 간식도 챙긴다. 국이 꼭 있어야 하기에 배추를 쏭쏭 썰어서 채식위주로 준비하고 생선도 되도록 빠뜨리지 않는다. 할머니는 편식을 안 하고 잘 드시기에 지금까지 병치레도 없었고, 당뇨도 없고 혈압도 정상이다. 작년 4월, 감기에 걸려 며칠 입원했던 적은 있었지만 다른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현재 약간의 치매가 있어 약을 복용하는 정도였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할머니와 남편을 돌보는 그녀는 정부로부터 약간의 급여를 받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두 사람이 장애 3등급을 받은 관계로 장애보상금이 조금 나오고 할머니와 남편의 노령연금, 국민연금으로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 금액으로는 풍족하지 않지만 생활에 도움은 되고 있다며 다행으로 여겼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대털’이라고 한다. 털털한 게 너무 지나치다는 말이란다. 얼마나 좋은 성격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털털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말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감당할 수 있는 그녀이니 이런 일들이 닥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에게 어느 날 이런 일이 불쑥 찾아왔다면 감당이나 됐을까. ‘사는 대로 살자’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그녀는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승자이고 거룩한 삶을 사는 주인공이다. 
꾸미는 것과 거리가 멀 것 같은 그녀의 약지에 얇은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다. 딸이 커플링으로 해줘서 하나씩 끼고 있다고 한다. 바른 소리를 좋아하는 그녀는 남들이 걱정을 해줘도 성가시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그야말로 현실 수용자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오늘 만나 저녁을 먹기로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는 읍으로 먼저 가 있을 테니 알아서 와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녀는 “저녁을 빨리 챙겨 드리고 나가야 된다”고 웃는다. 힘들게 사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보다 소설 속의 느긋한 인물을 만났다는 기분이 든다. 소설 같은 현실, 빨갛게 여물대로 여물어 0.1의 빈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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