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라이온스협회 355-E지구 류원찬 총재
국제라이온스협회 355-E지구 류원찬 총재
  • 김광석 기자
  • 승인 2018.04.2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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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남해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제21회 지구연차대회 “남해 50년 라이온스클럽 역사상 처음 있는 일”

국제라이온스협회 355-E(경남서부)지구 제21회 지구연차대회가 오는 21일(토) 오후 12시 30분부터 남해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가장 큰 대회인 지구라이온스클럽의 연차대회는 당해년도에 총재를 배출한 지역에서 열린다. 지구연차대회가 남해에서 열린다는 건 총재를 남해가 배출했다는 말이다. 이는 남해의 50년 라이온스클럽의 역사에 처음 있는 일로서 라이온스회원들은 이를 매우 영예롭게 여긴다.  
355-E지구의 총 클럽 수는 55개이며 회원 수는 2천명이 넘는다. 남해군은 5개 클럽(남해, 새남해, 동남해, 창선, 유자라이온스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지구연차대회를 주재하는 제21대 류원찬(72) 총재는 동남해라이온스클럽 소속으로 지족에 있는 우리식당 대표다. 지난 1986년 1월 동남해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해 33년간 봉사활동을 이어온 류원찬 총재는 지난해 지구연차대회에서 총재로 당선됐다. 임기는 작년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다. 
라이온스클럽은 단위클럽→지대(남해)→지역(남해하동)→지구(서부경남권역)로 이어지는 상향식 조직구조를 갖는다. 그 위로는 355복합지구(부산,울산,경남서부,경남중부,전남서부,전남동부,광주 7개지구연합회)→한국연합회→동남아시아연합회→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연합회로까지 이어진다. 
지구총재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단위클럽의 총무나 재무 등 실무경력을 쌓은 다음→제3부회장→제2부회장→제1부회장→회장을 거쳐야 하는 건 기본이고, 지대위원장이나 지역부총재 등 지역임원을 맡은 다음에야 지구임원으로 올라설 수 있다. 총재는 여기서 또다시 제2부총재→제1부총재로서 총재역할수업을 받아야 하므로 최소 3년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길고 긴 과정과 단계를 거쳐야 오를 수 있다. 그런 만큼 영예로운 자리다. 남해의 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50년 만의 총재 배출”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영예롭게 여기고 환호를 보낸 이유가 여기에 있고, 지구연차대회가 남해에서 처음 열린다는 것에 들뜬 것도 이 때문이다.   

류원찬 총재 배출 어떻게 가능했나 

남해대표관광음식점 ‘우리식당’의 성공 이끈 이순심 여사의 내조 
동남해라이온스클럽을 비롯한 남해의 5개 클럽의 뒷받침이 힘   

국제봉사단체의 한 지구의 총재가 된다는 것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들어가는 정신적, 시간적 노력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결심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경제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류원찬 총재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남해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총재가 되면 지구 내 모든 클럽의 회장 이·취임식은 물론 각 클럽이 요청하는 ‘총재 방문의 날’에 방문해야 한다. 대외 활동으로는 각 지구총재의 이·취임식에 참석해야 하며 국내 복합지구대회를 넘어 동남아시아대회와 세계대회에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지구 의무봉사금도, 국제 의무봉사금도 만만찮다. 여기에 들이는 비용은 어림잡아도 2억원이 훌쩍 넘는다.
류원찬 총재가 총재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건 3년 전 제2부총재로 추천을 받으면서다. 제2부총재직을 수락하는 건 앞으로 제1부총재를 거쳐 총재가 되겠다는 것이므로. 2013-2014년도엔 남해하동지역부총재를 역임한 마당이었고 그 후 2년간은 총재자문역을 맡고 있었다.   
제2부총재를 수락했던 3년 전 그날, 지구임원들이 우리식당으로 들이닥쳤다. 연령적으로 보면 이미 70세를 앞두고 있었으므로 설마 자신에게 제2부총재를 제안해올 줄은 몰랐다고 한다. 대개 60대 초반이 총재를 맡아왔던 것에 비추어보면 자신은 이미 그런 제안을 받을 나이를 지났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구임원들은 무릎을 꿇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날도 밀려드는 손님을 받느라 바빴던 와중에 얼핏얼핏 이 장면을 보았던 우리식당 안주인 이순심 여사는 남편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날부터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고 한다. 돈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식당은 주말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멸치쌈밥을 먹어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이미 남해맛집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총재 역 활동비야 얼마든 감당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총재 그 자리가 어떤 자린가! 비단옷을 입는 자리가 아닌가! 우리에게 맞는 옷은 아니지 않은가! 이순심 여사는 몇 날을 생각하고 생각해도 감당하기 힘든 옷이라는 생각을 했다. 눈물만이 이 여사의 내적 갈등을 대신했다.
이순심 여사의 가슴엔 잘못 건드리면 언제든 눈물로 터져 나올 샘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가방끈 콤플렉스다. 47년생 동갑내기인 류원찬 이순심 씨 부부는 중매쟁이를 통해 23세에 결혼을 했다. 남편은 이동 초양, 아내는 읍 외금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두 집 모두 찢어지게 가난해서 중학교로 진학시킬 엄두를 낼 처지가 못 됐다. 당시엔 십중육칠의 동년배들이 다 그랬다. 
원찬 청년이나 순심 처자는 원이 될 법한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어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해냈다. 두 사람 모두 야무지고 부지런하다는 평은 동네를 넘어 고을로 퍼져나갔다. 
원찬 청년은 ‘먹일 소(송아지를 얻어 키우면서 길을 들이고 그 소가 큰 소가 되어 송아지를 낳으면 어미 소는 되돌려주고 송아지는 가지게 되는 방식의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협약) 청년’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순심 처자는 다른 사람이 해내는 일의 몇 배를 해냈다. 중매쟁이는 야무지기로 소문난 두 사람을 엮어주었다. 69년이었던가. 두 사람의 혼례에 주례를 섰던 고 김정기 전 남해중교장은 주례사에 “이 처자는 비렁 우에(벼량  위에) 올려놔도 살아날 처자”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실제로 부부는 지난 세월을 그 말 그대로 살았다. 78년 지족에 식탁이 하나뿐인 중화요리집인 우리식당을 개업한 뒤 오늘의 우리식당이 되기까지 40년을 한 결 같이 살았다. 손님이 많을 때는 네 아이를 비가 오는 처마 밑에 세워둘 때도 많았고, 저 멀리 하동 갈사의 공사현장에까지 밥을 해다 나르기도 했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는 건설현장 인부들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지었다. 오늘도 신선한 멸치, 신선한 갈치만을 고집하는 멸치쌈밥과 멸치회, 갈치조림과 구이는 처음에는 그런 건설현장의 인부들을 위한 것이었다. 
97년 아이엠에프 때는 보증 빚을 갚아내느라 눈물깨나 흘렸다. 2003년 봄 창선삼천포연륙교가 개통되기 전 조선일보의 오태진 기자가 우리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본 소감을 기사로 내보냈다. 이른바 맛집기행의 원조격이었다. 창선삼천포연륙교의 개통과 함께 우리식당의 멸치쌈밥은 대박을 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길게 늘어선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식당의 멸치쌈밥의 인기는 단 한 차례도 하향곡선을 그린 적이 없었다. 우리식당이 쉬는 날은 오직 이순심 여사가 공식행사 참여로 직접 조리를 담당할 수 없을 때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식당의 벽면에 소감을 남기고 갔다. 그렇게 멸치쌈밥은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만큼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그러한데…, 혹여나 누군가 초등학교밖에 못나온 사람이 총재를 한다고 비꼬기나 한다면, 남편이 혹여 작은 실수라도 해서 가방끈이 짧아서 그렇다는 말이 나오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을까? 밀려드는 두려움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몸을 누이면 그 막연한 두려움이 자꾸만 몰려와 몸서리를 치게 했다. 눈물샘은 그렇게 두 달 동안이나 작동했다.
하지만 이순심 여사는 마침내 그 두려움을 털어냈다. 동남해라이온스크럽 회원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총재님이 되시면 잘 보좌하겠노라 하는 다짐을 보여줬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면 역대 어느 총재 부럽지 않게 더 잘해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마음먹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부부의 칠순잔치비용을 아껴 남해초교 축구부 후원금으로 500만원을 선뜻 쾌척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즈음이었다.  
지난해 지구연차대회에서 보람·희망·감동(Worth, Hope, Emotion)을 주제로 내세우면서 당선총재로 취임한 류원찬 총재는 부인 이순심 여사의 바람대로 역대 어느 총재보다 훌륭하게 355-E지구 라이온스협회를 이끌었다. 사무총장 등 지구사무실 상근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안다. 어느 총재도 못한 55개 소속클럽 모두를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1억원이 넘는 총재 의무봉사금을 비롯한 각종 봉사금도, 총재활동비도 부인 이순심 여사는 단 하루도 어김없이 지원했다.  류 총재는 아내가 전적으로 밀어줄 것이라는 믿음 없이는 총재직을 수행할 수 있었겠느냐며 웃는다. 이순심 여사는 동남해라이온스클럽 박완규 회장을 비롯해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해준 공으로 돌린다. 오는 21일 제21회 지구연차대회를 잘 치러내고 복합지구대회, 미국 본부에서 치러질 세계대회만 참석하고 오면 임기도 마무리하게 된다. 남해의 라이온스클럽 역사가 처음으로 배출한 지구총재라는 류 총재의 타이틀은 다른 사람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영원한 타이틀이 된다.    
류원찬 총재 부부는 내년이면 결혼 50주년도 맞이하게 된다. 두 아들과 두 딸을 합쳐 네 명의 자녀도 잘 키워냈다. 두 며느리도 시부모님들의 삶을 알기에 시댁에 오는 날이면 아예 일복차림으로 와서 주방에 먼저 뛰어들어 설거지를 거든다.
멸치쌈밥을 남해대표음식으로 만든, 40년 동안 한 번도 변함이 없었던 그 자리의 그 이름 우리식당, 평일에도 쉬는 테이블이 없는 남해대표관광음식점 우리식당, 류원찬 총재와 총재부인 이순심 여사를 만든 우리식당, 그 이름과 명예가 영원히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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