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산청군 단성면 목화로 170번길 57에 위치한 국립산청호국원 원장으로 근무하는 김해식(60) 향우를 찾아갔다. 이날 서부경남에는 3년 만에 많은 눈이 내렸다. 시외버스에서 내리자 김 원장이 마중을 나왔다. 먼저 동의보감촌을 구경시켜주었다. 남해군도 아름답지만 산청군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복국으로 점심을 먹고 호국원에 들어갔다. 호국 영령 앞에 예를 갖춰 참배도 했다. 그리고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김 원장은 “조상을 잘 모시면 복을 받는다고 어르신들이 그랬는데 나는 이천호국원에 근무했고 산청호국원에 근무하니 두 번이나 영령들을 모시고 있어 큰 복을 받고 있다”며 싱긋 웃었다.
김 원장은 남해군 이동면에서 고(故) 김봉삼‧박분순 부모님의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내 문해연씨와 사이에 아들 훈규(현대해상화재보험)씨와 딸 민혜양을 두었다. 그는 이동중, 남해종고, 명지고를 졸업하고 1979년 11월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해 조달청 부산사무소에 임용되었다. 공무원 근무중 한국방송대(경제학과)를 졸업하는 등 학업에도 최선을 다하였다. 조달청,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보훈처 국립이천호국원 관리과장, 국가보훈처 제대군인지원과, 부산지방보훈청 총무과장(서기관), 서울지방보훈청 총무과장을 거쳐 2017년 8월부터 국립 산청호국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국립산청호국원은 어떤 곳인가?

“2015년 4월에 개원한 국립묘지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희생 공헌하신 국가유공자, 참전유공자, 장기복무 제대 군인들이 돌아가시면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을 기리고자 설립됐다. 산청호국원에서는 안장에 있어 최고의 예우를 다하기 위해 의전단을 통한 안장식을 거행한다. 또한 유가족 편의를 위해 365일 연중 휴무 없이 안장 업무를 실시한다.
산청호국원은 안장뿐만 아니라 각종 현충선양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학생, 군인,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행사를 통해 모든 국민들이 오고 싶은 호국공원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현충일과 추석, 설날에는 안장자 유가족의 방문에 대비하여 추념식을 비롯하여 유가족 편의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국립묘지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산청호국원은 명당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국립묘지이다. 호국원 뒤로는 지리산 천왕봉을 등지고 있으며, 앞으로는 진양호를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호국원의 각고의 노력에 힘입어 많은 국가유공자들이 산청호국원에 안장되시기를 선호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9개에 국립묘지가 있다. 산청호국원은 총부지 17만평에 5만위 안장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호국원과 현충원의 차이는 무엇인가?

“현재 현충원은 국방부가 관리하고 있는 서울현충원과 국가보훈처가 관리하고 있는 대전현충원 2개소가 있다. 호국원은 산청 호국원을 포함해서 임실, 영천, 이천 4개소가 있다. 현충원과 호국원의 가장 큰 차이는 안장자격의 차이가 있다. 호국원의 경우 10년 이상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경우 안장자격이 되며, 현충원은 20년 이상의 장기복무 제대군인이 자격이 된다. 그 외에도 전몰‧순직 군경 또는 공상‧상이 군경 자격이 있으신 분은 현충원과 호국원 모두에 안장되실 수 있다. 참전유공자이신 경우에는 호국원에 안장되실 수 있다. 안장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현충원은 화장 후 유골함을 땅에 묻고 비석을 세우는 평장으로 안장하게 된다. 호국원은 유골함을 봉안담에 안치하는 방식으로 안장을 하고 있다”

▲호국원 안장 현황은 어떤가?

“현재 산청호국원은 1만8기의 영현을 안치할 수 있으며, 2018년 3월 21일 기준으로 3,790위의 영현을 모시고 있다. 향후 추가 묘역 조성을 통해 최종적으로 5만기의 영현을 모실 수 있는 부지를 갖추고 있다.”

▲원장으로 근무하며 보훈이란?

“내가 하는 일이 나라를 위해 희생 공헌한 분 및 그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매사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6년의 일제치하와 6·25전쟁 등 큰 어려움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었음을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6·25전쟁에 참전한 분, 전쟁 중 상처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 받고 계신 분들이 전국적으로 약 90만명이 계신다.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제는 나라를 책임지고 나아갔으면 한다.” 

▲공직 생활 중 보람된 일은?

“고교 졸업 후 바로 1979년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조달청,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 국가보훈처에 근무했다. 조달청 근무 시 나의 첫 업무는 모두들 어려워하는 군부대, 대학교, 연구소, 의료기관 등의 공공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외국산 물자를 통관 및 하역하는 업무였다. 조기통관을 통하여 외국산 장비를 필요로 하는 공공기관에 적기에 공급해 줌으로써 국방산업, 의료산업 및 각종 연구소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한국전쟁에서 참전한 국가유공자의 잘못된 묘역을 찾아 새로운 비석을 설치해준 사실, 또한 전사하신 분이 그 당시까지도 서울현충원에 묘역이 없어 위패안치를 한 일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현재하고 있는 국가보훈처에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국가유공자의 잘못된 예우와 보상을 개정하고, 유공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가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국립묘지 업무가 2006년도 이관됨으로써 호국원을 최초로 조성된 곳이 국립이천호국원이다. 그곳은 제가 직접 설계 시공해 조성한 곳이다.” 

김원장의 집무실에는 ‘보훈(報勳),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로 시작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는 국립 산청호국원에 안장된 호국 영령들에게 추모의 글을 남길 수 있는 ‘하늘나라 편지’ 영상시스템을 구축하여 하늘나라 추모 편지를 송출하고 있다. 또한 국립묘지 안장증서를 제작하여 따뜻한 보훈을 실천하는 한편 지역인 및 보훈단체와의 호국문화 탐방을 추진하고 있다. 
6월 퇴임을 앞둔 그는 “산청에 9경이 있는데 국립산청 호국원을 제10경으로 만들고 싶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참전하신 고향의 국가유공자 분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고자 전적지순례 행사를 금년 5월에 실시할 계획이다. 이 행사는 고향 남해에 계신 고령 국가유공자들이 서부경남 전적지 순례와 국립산청호국원을 참배하는 행사로 올해 특별기획하여 실시되는 행사이다.
김 원장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특정 정권이 아닌 국가에 헌신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열정을 가지고 일해 왔다”며 공직자로서 지켜온 원칙을 강조했다. 첫째는 청렴해야 한다(남의 돈은 절대 먹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예산은 내 돈 같이 아껴 쓴다는 것이며, 셋째는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김 원장은 1994년 경제기획원장관 표창, 1995년 국무총리 표창(모범공무원),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표창,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국민신문고상) 표창, 2017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고, 『변화를 선택할 자유』(2017)라는 책을 출간하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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