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우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장이 지난 1일 타계했다. 남해군은 ‘남해군 군장·군민장 등에 관한 조례’에 의거, 고인의 장례의 격을 ‘남해군청장’으로 예우했다. 조례상 남해군청장은 ‘현직 남해군 소속 공무원으로서 공무수행과 관련하여 사망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군수가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고인의 영결식은 5일(목) 오전 9시30분 남해군청마당에서 엄수됐다. 
본지가 고인의 타계를 오늘 칼럼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고인의 못다 이룬 꿈’을 군민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올해는 탈공연예술촌이 개관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탈공연예술촌은 2008년 5월 15일 개관했다. 고인은 탈공연예술촌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것을 기념해 지난 1월 중순 ‘붓다의 길’이라는 희곡선집을 발간했었다. 그때 고인을 인터뷰했던 본지는 ‘아직 못다 이룬 고인의 몇 가지 꿈’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었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우리나라 공연예술 100년사에 관한 둘도 없는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예술촌의 제1기능은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자료를 구하고자 할 때 그 자료를 제공하는 자료은행으로서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료들을 디지털파일로 만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는데 비용이 모자라 현재 50%밖에 진척되지 못했다.  하루빨리 이 일을 완료할 수 있으면 좋겠다”
“탈공연예술촌을 공연예술박물관으로 공인받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우선 예술촌 소극장이 무등록 상태인데 이를 등록소극장으로 만들고, 이 일뿐만 아니라 도서관과 자료전시관 등 탈공연예술촌 전체를 질 높게 운영할 수 있는 전문학예사를 확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지역민의 자발성으로 구성되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연극단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나는 이제 여생을 희곡작가와 공연예술인을 양성하는데 바치고 싶다” 
이처럼 고인이 이루고 싶었던 몇 가지 바람들은 평생을 희곡작가로서, 공연기획자로서, 공연예술역사자료수집가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원천적이고 궁극적이고 순수한 것이었다. 
좀 더 깊이 고인을 들여다보자면 이 지면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인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남해의 예칭(화전) 그대로 남해전역을 꽃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꿈으로 예술촌에 꽃씨를 뿌리고 잘 자라도록 잡초를 늘 직접 뽑았다. 예술촌이 들어앉은 다초지구 전역을 공연예술마을로 만들고자 했다. 금석마을회관을 극단 신협의 역사관으로 꾸민 것이 그 구체적인 사례다.   
또한 고인은 탈공연예술촌 개관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5월에는 어린이공연예술제, 8월에는 섬공연예술제, 연말에는 송년공연예술제를 개최했다. 작은영화관이 생기기 전에는 각종 주제영화제를 개최했다. 언젠가는 보물섬 남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예술의 메카가 되기를 꿈꿨다. 
고인은 늘 지역의 문예인들, 문화관광해설사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 격려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고인을 정신적 멘토로 삼는 이가 한 둘이 아니다. 
예고 없는 촌장 부재 상황에 직면하게 된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의 앞날! 그 흥망의 열쇠는 이제 우리군민 전체의 문화역량에 쥐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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